새로운 배움의 즐거움

“내재된 나를 표현하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지역내일 2012-11-26 (수정 2012-11-26 오후 12:05:30)

전쟁을 치른 폐허처럼 낙엽이 뒹구는 계절. 생명의 푸른 색채가 쫓기듯 안녕을 고하면, 문득 스스로를 정리하고픈 시간이 찾아온다. 삶에 있어 거추장스러운 장식은 잠시 떼어내고 정리의 달인이 되어 오롯이 나와 만나는 열혈주부들이 있다. 뮤지컬을 부르며, 시를 낭송하며, 소금(小芩)의 운치에 취하며 새로운 배움으로 자신을 채워가는 이들, 지금 만나러 간다.


■나를 벗어나 타인의 삶 속으로 떠나는 멋진 여행 
수원시평생학습관 - 이훈의 ‘뮤지컬교실’   
 
뮤지컬교실의 발성연습시간,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음색이 귀를 사로잡는다. 뒤이어지는 것은 뮤지컬 ‘정조대왕’에서의 혜경궁 홍씨의 곡, ‘하늘이여’. 10여 명의 수강생들은 이미 애끓는 모정으로 가슴 한 구석을 후벼 파고 있다. 노래 중간에 이어지는 대사에서는 마치 그가 된 듯 감정에 몰입한다.
수원에서 유일하게 뮤지컬을 배울 수 있는 이 강좌는 유명 뮤지컬에서 곡들을 골라 연습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연기·노래·춤이 모두 들어 있는 뮤지컬은 종합예술이다. 이를 배움으로써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내재돼 있던 표현의 욕구를 끄집어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이훈 강사는 뮤지컬 수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공연이 목적이 아니기에 자기를 계발하며 즐거움과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다고.
뮤지컬을 처음 접하는 수강생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한미연 씨는 현실적인 것을 떠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뮤지컬의 노래는 다양한 인물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인물의 상황 속에 몰입하다보면 그 시대를 살며, 세상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 감성도 살리고 인문학적 소양도 쌓고 이래저래 유익하다는 미연 씨다. 평소에 노래를 좋아하고 뮤지컬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차미정 씨. 드라마나, 뮤지컬을 보면 감정을 이입해서 인물의 연기를 보는 버릇이 새로 생겼다.
노래를 잘 해야만 뮤지컬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이주현 씨와 박신영 씨는 스스로 노래에 소질이 없고, 심지어 ‘고음불가’라고 소개할 정도. 하지만 발성연습으로 소리를 끄집어내고, 가슴에 있는 걸 뿜어내다 보니 희열을 느낀다. 연극과 음악을 아우르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 기쁨이 함께하는 건 당연지사. 조영숙 씨는 노래와 춤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왔다 자신의 순서가 오면 떨기만 했던 지난 시간을 털어 놓는다. “하얀 도화지에 아무거나 그릴 수 있듯 백지상태여서 더 잘 흡수가 된 것 같다. 꾸준히 노력하며 힘든 요소들을 극복할 것이다”고 각오를 다진다.
어느새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나이가 됐다면 ‘딱’ 이라는 강성신 씨. 여태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진솔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열심히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뮤지컬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덤으로 따라왔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 속으로 녹아 들 수 있는 뮤지컬. 그 속에 또 다른 내가 있음을 발견하는 기쁨은 경험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아름다운 시 한 편이 가져다준 아름다운 인생
수원시여성가족회관 - 시낭송아카데미
 
고요한 배경 음악이 흐르면 시 한 편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혀 내려간다. 겨울로 치닫고 있는 11월의 어느 하루, 그렇게 시는 누군가에게 설렘으로 다가왔다.
시낭송아카데미에서는 말 그대로 시 낭송하는 법을 배운다. 남기선 강사가 먼저 시를 낭송하면 수강생들은 함께 연습한 후, 개인적으로 낭송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냥 읽기만 해도 감정의 정화를 가져오는 시는 소리로 퍼지는 순간 살아 움직이게 된다. 가슴 한 쪽 응어리들을 삼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생명을 얻는다. “시를 낭송하며, 가정에서 억눌려 정체성을 찾지 못했던 주부들이 나를 표현하게 된다. 시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 내면서 치유가 된다”고 남 강사는 설명했다.
20 여명의 수강생들은 저마다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박신영 씨는 자신의 시를 스스로의 감정에 맞춰 표현하고 싶어 낭송아카데미를 찾았다. 낭독 봉사를 하고 있는 황혜숙 씨와 윤병선 씨는 봉사를 좀 더 잘 하고자 선택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감정이 많이 순화됐음을 얘기했다. 감정의 절제도 배우고 다른 이들의 낭독을 경청하면서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신으로 변해감에 감사하고 있다. 한 편의 시가 내게서 표현될 때 느끼는 성취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시를 낭송하다보면 뜻밖의 즐거움에 빠진다. 이숙희 씨는 평소의 시에 관심을 넘어 시를 분석하면서 낭송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삶을 그대로 조명해 주는 것이 시’라는 말처럼 시를 통해 내 삶을 반추할 수 있다”는 기쁨을 전했다. 친구 따라 우연히 오게 됐지만 누구보다 열렬하게 시와 만나고 있는 신외섭 씨. 아름다운 시어를 배우고 외우다보니 현실의 대화에서도 향기가 나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을 자랑했다. 김순천 씨는 치유를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변해가는 여성의 섬세한 감성을 치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매개체란다. 
시낭송을 배운 후 ‘수원시 울림낭송회’라는 동아리까지 결성했다. 황영자 회장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영혼이 맑다. 시를 배우고 낭송하면서 누구나 소녀로 돌아가고 있다”고 자랑이다. 학교방과후 수업으로 시낭송을 진행해 아이들의 메마른 감성에 따뜻함을 전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시낭송의 능력을 발휘해 치유가 치료한 곳을 찾아 봉사할 계획이다.
12월에는 자그마한 시낭송회 자리도 마련한다. 그들이 읽어 내는 아름다운 시 한 편에서 아름다운 인생이 눈부시게 펼쳐질 것이다.


■우리 정서에 맞는 소금(小芩) 소리에 취하다
경기도평생교육학습관- 젓대 연주
 
대금, 중금, 소금을 통칭하여 가로로 부는 피리류의 악기를 이르는 젓대. 그 중에서도 가장 높고 맑은 음색을 지닌 소금(小芩)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다. 전통국악, 가곡, 가요, 동요 등 모든 음악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는 소금은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을 선사한다.
큰 아이가 대금을 한 덕에 소금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는 홍옥희 씨.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선율을 멋들어지게 연주한다. 국악기이지만 소금의 청아한 소리는 가을을 떠올리는 그 곡과 맞아 떨어졌다. “부피가 커 들고 다니기에 불편한 대금에 비해 소금은 가방에 넣어 어디든지 들고 다닐 수 있다. 산에서 연주하면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와 동화돼 더할 수 없는 자연의 소리를 낸다”며 언제나 함께 하는 소금사랑을 얘기했다.
목진방 씨는 노래를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래 부르는 것이 어려웠다. 악기 하나를 잘 배워서 음성 대신 응용하려는 욕심에 시작했다고. 쉽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저리는 듯 한 소금 소리에 온갖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사물놀이 방과 후 교사이기도 한 김경옥 씨는 ‘소금홍보대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사물놀이나 모듬북 등은 함께 해야만 소리가 어우러진다. 혼자서 연주하는 악기를 배우고 싶어 소금을 선택했는데 곡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보람이 느껴진다.” 경옥 씨의 소망은 소금연주를 더 열심히 해서 아이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다는 것. 혼자 하는 연주에 흠뻑 빠진 것은 박정애 씨도 마찬가지다. 해질 무렵, 노을을 바라보며 소금을 연주하면 정서적으로 안정되면서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다.
소금을 전수하고 있는 김가이 강사는 소금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악기임을 강조했다. “천년을 이어온 우리 전통악기인 소금에는 세상의 모든 관악기의 기본이 들어있다. 소금만 확실히 연주할 수 있으면 다른 양악기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금교육이 소홀해져 버린 아픈 역사가 있는데, 근래 학교교육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니 반가웠다.
나이가 들수록 국악기의 음색의 아름다움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리네 정서와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3개월 정도의 기초를 배우면 연주가 가능한 매력 덩어리 전통악기 소금. 그를 만나 인생을 멋지게 꾸려가는 여유를 얻는 이들의 연주소리는 행복을 안고 퍼져나간다.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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