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섬진강기차마을
칙칙폭폭, 기차는 추억을 싣고 달린다
11월은 어딜 가든 뭘 하든 스산한 달이다. 공휴일 하루 없이 빼곡하게 검은색으로 도배된 달력은 아쉬움을 더한다. 늦가을 단풍의 황홀함마저 없었다면 어찌 견딜까 싶을 만큼 심심한 달. 이대로 11월을 보낼 수는 없지. 추위가 닥치기 전에 가족 여행으로 택한 곳은 곡성 섬진강기차마을이었다.
곡성은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여행지였다. 기차마을이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날씨가 야속한 여행이었다. 1박2일의 첫 날은 흐리디 흐린 날씨에 꽤나 쌀쌀했고 둘째 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 계획했던 놀이를 취소해야만 했다. 그래서 억울했냐고? 천만의 말씀. 여행은 떠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맛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함께 한 일행들은 설레임에 즐거움을 더한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구 곡성역
이번 여행은 세 가족이 함께였다. 몇 주 전부터 기차마을 레일펜션을 예약했더랬다. 성수기에는 감히 넘보기 힘든 펜션이었다. 묵을 곳이 정해지니 그 다음은 준비랄 것도 없었다. 테라스는 있으나 싱크대가 없어 거창하게 해먹을 수 있는 객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차나 섬진강 레일바이크는 시간 관계상 생략해야 했으므로 곡성을 찾긴 찾았으되 반쪽짜리 여행에 만족해야 했다.
세 가족이 야심차게 준비한 놀이는 여섯 아이들을 위한 런닝맨. 미리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옷을 준비하고 들떠있었다. 그 유명한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리포터 가족은 사전에 다시보기로 돌려보는 예습까지 마쳤다.
곡성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기차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곳은 옛 곡성역으로 1933년부터 1999년까지 익산과 여수를 잇는 전라선 열차가 지나가는 곳이었단다. 대합실의 모습은 30~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풍경 그대로다. 1933년 지어진 역사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서둘러 기차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대합실 하나 지났을 뿐인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과거다. 이제 곧 출발할 참인 증기 기관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일행은 기차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는 ‘기차마을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아이들은 서로 페달을 밟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5분쯤 지났을까. 처음의 패기는 오간데 없이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그러나 어쩌랴. 대신 밟아줄 사람이 없는 것을. 힘내라는 응원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기차마을 레일바이크
총 길이 2.4km. 열심히 달리면 20분 정도 소요된다. 경사가 있는 곳은 자동운행구간이라 힘이 덜 든다. 달리는 동안 기차마을의 전경이 천천히 스쳐지나 간다. 가을이라 장미가 얼마 피어있지 않은 장미원, 놀이기구 9종이 운행 중인 드림랜드, 한참 조성하고 있는 참여의 공간과 마을 밖 철로 위를 지나가는 진짜 기차들, 작은 동물농장, 우리가 묵을 레일 펜션 등. 그 중에서도 아이들이 열광한 곳은 다름 아닌 드림랜드. 바이킹을 꼭 타야겠다며 레일바이크에서 내려 쪼르륵 달려간다. 차가운 날씨에 얼굴이 벌게졌다. 어른들이 보기에 생뚱맞아 보이는 드림랜드지만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다.
증기기관차 실물 모형이 있는 기차마을은 촬영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비롯해 드라마 ‘경성스캔들’ 등 열차를 타는 장면이면 어김없이 기차마을의 증기기관차 ‘미카’가 등장한다.
색다른 공간 기차마을 레일펜션
새마을호 12량을 개조한 기차마을 레일펜션
온 가족이 기대했던 레일펜션. 새마을호 12량을 리모델링한 펜션이다. 누가 이런 깜찍한 아이디어를 냈을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신기해했다. 기차였기 때문에 펜션 역시 무척 길~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취사조리대가 없어 요리하기에 불편했다는 점. 대신 일을 벌이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주부들은 좋았다.
저녁부터 내리는 비는 가을밤의 운치를 더했다. 레일 위에서 하룻밤. 제 할 일을 다 마친 기차는 아늑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 “펜션이 밤새 조용히 움직여 아침이면 부산에 데려다놓을 것 같다”며 다들 즐거운 상상을 펼쳤다.
야심차게 준비한 런닝맨 놀이는 어찌됐냐고? 멈춰줄 생각이 없는 비 덕분에 옷 입고 사진 찍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기차마을에서 가정역까지 운행하는 증기기관차 미카
info.
기차마을 입장권
기차마을은 성수기(4~10월) 개인 3000원, 소인·경로 2500원, 비수기(11~3월) 개인 2000원, 소인·경로 1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레일펜션 객실 이용객들은 무료입장이다.
증기 기관차
기차마을에서 가정역까지 한 번에 300명이 이용 가능한 증기기관차는 인터넷 예매가 가능하다. 첫 차는 9시30분, 막차는 5시30분에 출발하며 성수기에는 하루 총 5회 운행한다. 비수기에는 운행시간표가 달라진다.
섬진강 레일바이크
아름다운 섬진강변을 달리는 레일바이크 역시 인터넷 예매가 가능하다. 거리는 5.1km로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운행시간표가 달라진다.
이수정 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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