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힘. 그 힘의 위대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상록수 역 근처 최용신 기념관을 찾아가 보자. 안산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성호이익, 단원 김홍도, 최용신을 손꼽는다. 세 분이 남긴 삶의 흔적은 우리나라 학술, 문화, 교육분야에 큰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안산의 정신문화 유산으로 남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그러나 유난히 외지인이 많은 이 도시의 특성상 안산에 이런 분이 계셨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거의 매일 ‘상록수역’을 지나치면서도 왜 유명한 소설 제목이 이 역의 이름이 되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상록수역’은 1935년 발표한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인 최용신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샘골강습소가 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탄생한 역명이다. 그의 제자들이 힘을 모아 2007년 샘골강습소가 있었던 자리에 선생의 뜻을 기리는 ‘최용신 기념관’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개화기 서구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원산에서 태어난 최용신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대 말 1930년대는 독립을 위해 인구의 80%인 농민들의 빈곤과 문맹퇴치가 가장 큰 사회적 과제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농촌 계몽운동을 고민하던 최용신 선생은 1931 기독교 여성단체인 YWCA 농촌지도사로 발령받아 샘골로 들어왔다. 바닷가지만 유난히 우물물이 많고 또 그 물 맛이 좋아 샘골로 불렸던 이 동네는 일찍부터 교회가 선교활동을 진행하던 동네였다.
샘골 강습소에서 최용신 선생이 보여준 열정은 지역사람들과 제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스물을 갓 넘긴 여자가 강습소를 짓는데 지역 유지들이 땅을 내놓고 목재를 서슴없이 기부할 정도였다. 또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샘골강습소를 지켜왔다. 1980년대 안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샘골 강습소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지역주민과 제자들이 샘골강습소 지키기 운동을 펼쳤고 선생의 제자 홍석필씨는 자신이 살던 집을 팔아 강습소 부지를 구입해 기념관 건립의 초석을 마련했다.
최용신 기념관 이세나 학예사는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기념관 중에서 자신이 직접 활동하던 장소에 기념관을 설립한 경우는 최용신기념관이 유일하다. 그만큼 오랜 세월동안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 지역주민들과 제자들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최용신 기념관은 1층 전시관과 2층 체험 전시실로 만들어져 있다. 1층 상설전시관은 샘골마을 사람들과 제자들이 그리운 선생님께 바치는 한 송이 카네이션과 같은 공간으로 ‘그리운 선생님께’라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된다. 2층엔 최용신 선생이 가르쳤던 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관람을 마치고 가을 단풍이 곱게 내려앉은 샘골강습소 앞 마당에 서자 최용신 선생이 직접 심은 향나무 다섯 그루가 눈길을 끈다. 같은 시기 심겨진 나무지만 어떤 향나무는 바르고 곧게 키가 쑥 자란 반면 어떤 나무는 아예 나지막히 옆으로 가지를 키운 나무도 있다. 제각각인 나무들을 보며 교육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떠올려 본다. 모든 강제와 억압을 뚫고 제 생김대로 자랄 수 있게 돕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제자들이 가난한 농촌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식민지 조국이라는 장벽을 뚫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맘껏 펼치길 바랬던 최용신. 그 방법으로 그녀가 선택했던 것은 아낌없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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