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에 햇살 가득 맞으며 걷기 좋은 계절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가 사는 동네, 수원 곳곳에는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들고 가을을 맞이하러 길을 나서자. 번잡한 도심의 안쪽에도 미처 알지 못했던 휴식처가 기다리고 있다.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1. 예술 공간과 작품, 자연이 만났다 - 효원공원~인계예술공원
인계동을 자주 오갔지만 스쳐 지나갈 뿐,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는 효원공원과 인계예술공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두 공원은 1시간 남짓이면 걸을 수 있다.
효원공원의 북쪽 끝인 월화원에서 걷기 시작했다. 월화원은 수원시와 중국 광동성의 우호교류를 위해서 지어 놓은 중국식 정원. 중국 음악이 은은히 흘러나오는 월화원은 공원 내의 정원이라 그리 크지는 않지만 이국적인 정취를 맛보게 한다. 중국양식의 정자, 물고기가 어지러이 노는 연못, 아담한 크기로 분재들이 자라는 분재원 등을 돌아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얼마 전 방송됐던 각시탈과 더킹투하츠 등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월화원을 나와 공원을 바라본다. 시원시원하게 뻗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바로 옆이 큰 길임을 잊게 만든다. 자매도시 제주도를 상징하는 조각상들도 곳곳에 보인다. 공원 안을 가로지르는 길도 있지만 공원가로 오솔길이 있어 그 길로 들어섰다.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가다 만나는 곳은 경기도문화의전당. 그 앞으로 또 다른 예술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곳곳에 놓인 조각품들도 돌아보고, 지금 전시중인 토이정크 앞에도 섰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붙잡힐 곳이다.
길 하나 건너로 수원제1야외음악당이 보인다. 예술에 취한 사람들은 육교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전망대를 갖춘 흔치 않은 육교를 지나 음악당을 들러 싸고 있는 인계예술공원에 들어섰다. 음악당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된 언덕에는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안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넓은 잔디밭에서 자유로이 쉴 수 있는 자유,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던가? 음악당답게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가을을 맞아 옷 갈아입을 채비에 나선 나무들, 갖가지 조각상들과 분수 위로 퍼져 나간다.
이색적인 예술 공간, 예술작품들이 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길들은 볼거리를 톡톡히 주면서 걷기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tip 들러 봐요-나혜석 거리
효원공원 서쪽으로 나혜석거리가 있다. 한복을 입고 얌전하게 앉은 그의 조각상이 나혜석거리임을 알려준다. 길 좌우로 벤치와 카페·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고, 가게의 출입문이나 담에서 나혜석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조명과 음향시설을 갖춘 광장과 분수대 등도 있고, 음악공연과 전시회·행위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문화와 만남이 함께하는 거리다.
■2. 함성은 뒤로 하고 법고(法鼓)소리를 따라 - 월드컵경기장 조각공원~봉녕사
수원은 유별난 축구 사랑의 도시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뜨거운 함성소리로 뒤덮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축구장 뒤편으로는 법고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통사찰 봉녕사가 있다.
월드컵경기장에서 봉녕사까지 이어지는 2km의 길은 가을이 은은히 번져나고 있었다. 먼저 월드컵조각공원에서 인간·정신·힘을 테마로 하는 조각품들을 감상해 본다. 축구경기장의 이미지와 조화되는 역동적인 모습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주경기장을 거쳐 인조잔디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와 조각상이 어우러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베어마우틴(레스토랑) 정원 앞에 다다른다.
그 옆으로 난 완만한 숲길은 봉녕사로 인도해 주는 길. 저길 끝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설렌다. 작은 문을 통과해야 봉녕사로 들어설 수 있었다. 보통 절의 일주문 등을 지나면서 속세의 근심을 털어내곤 했는데 이상하게 이 작은 문도 그 역할을 해 준다. 봉녕사로 한걸음씩 내딛으며 어느새 마음은 비워지고 있었다.
절로 통하는 오솔길의 끝에 서니 봉녕사 경내가 한 눈에 들어선다. 비구니 스님들의 손길로 잘 가꾸어진 조경과 연못, 석조물들에서 고즈넉함과 섬세함이 전해온다. 봉녕사엔 고려시대의 불상 석조 삼존불과 배열과 채색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약사전의 신중탱화와 현왕탱화를 만나볼 수 있다.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스님들의 법고소리도 경내를 휘감아 돈다. 한참을 사념에 빠져있다 봉녕사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일주문까지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이 하나 나온다. 양쪽으로 우거진 나무는 낙엽들을 땅에 남겨 두려 하고 있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길은 도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되돌아섰다. 마치 속세로 향하는 마음을 다잡기라도 하 듯.
tip 들러 봐요-월드컵경기장 내 축구박물관
수원 축구박물관은 아담하지만 다양한 축구사에 대한 전시로 재미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한국축구역사, 1954년 스위스 월드컵, 2002한일 월드컵을 알 수 있는 각종 전시품이 있고, 안정환의 골든볼 등 축구공도 전시돼 있다. 축구하면 생각나는 박지성 존과 태극전사와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프리존은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
■3. 신선한 공기마시며 호수 한 바퀴 돌기 - 서호생태수자원센터~서호공원일주
다시금 호수를 끼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해 준 곳, 바로 서호공원이었다. 걷기를 시작한 서호생태수자원센터 앞의 생태공원에서 서호공원까지는 하천을 따라 한참 이어졌다. 울긋불긋 변해가는 나뭇잎과 여물어가는 강아지풀이 가을의 문턱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드디어 서호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서호는 정조대왕이 수원을 신도시로 개발하면서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 아름답게 솟은 여기산(麗妓山)을 옆에 두고 펼쳐진 서호는 호수 한복판의 인공섬과 청둥오리·백로·왜가리 등의 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전경을 만들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길이는 2km. 농촌진흥청 담 아래 우레탄길이 걷기 편하도록 조성돼 있었다. 여기서부터 일주해 보기로 했다. 호수도 구경하고, 담장 안의 감나무도 구경하며 쉬엄쉬엄 가다보니 ‘항미정’이라는 정자가 눈에 띈다. 항미정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풍경은 손꼽히는 절경으로 수원8경으로 지정됐다. 해질 무렵이 아니라 낙조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해 아쉬움이 더해 왔다.
항미정 아래의 다리를 건너니, 부드러운 흙으로 덮인 둑길이 이어진다. 둑길을 따라 심어진 소나무의 쭉쭉 늘어진 가지는 오랜 역사를 대신 전해 주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뜻밖에 너른 평야(?)에 누렇게 익은 벼를 만난다. 도심 한복판에 어인 일일까 궁금했는데, 농촌진흥청에서 관리하는 논이란다.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춰 보여주는 논은 지금은 수확의 계절임을 어김없이 알려주는 듯했다.
흙길이 거의 끝날 무렵에는 나무와 운동기구, 쉼터 등이 있는 공원이 펼쳐진다. 박 터널 등 자연생태공간도 조성해 아이들에게 체험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호수가에서 자리를 펴고 담소를 나누거나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있으니 걷기에서 오는 고단함이 싹 가신다. 서호를 도는 것으로 이번 여정을 마쳤지만, 마음은 아래로 흐르는 서호천길과 바로 옆의 여기산길로 자꾸 걸어가고 있었다.
tip 들러 봐요-서호생태수자원센터 내 가족도서관
관리동 2층에 가족이 함께 책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인 가족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어린이 자료실에서는 어린이와 중고생들을 위한 책이 마련됐다. 북카페 ‘쉼’에서는 간단한 간식이나 음료도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책과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도 준비됐다. 그 외에 회의나 토론을 위한 독서토론실, 가족열람실 등이 있어 가족이 함께 하기에는 ‘딱’이다.
■숨은 길 찾아 걷기
▷효행공원~노송지대
의왕과 수원의 경계가 되는 작은 고개인 지지대고개에서 노송지대까지의 길은 역사와 의미가 깊은 길이다. 지지대라는 명칭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묘소인 현릉원을 오갈 때마다 이 고개를 넘으면 능이 보이지 않아 이곳에서 자주 지체해 붙여진 이름. 정조대왕 동상이 있는 효행공원에서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경수산업도로를 따라 5km 구간에는 노송(老松)이 이어진다.
하지만 효행공원에서 경수도로까지 나가는 길도 버스차고지가 있어 들고 나는 버스로 보행에는 어려움이 있다. 노송이 장관을 이루는 노송지대 역시 경치는 좋으나, 자동차의 행렬과 맞닿아야해 느긋하게 걷기에 몰두할 수 없었다.
시에서 화성행궁까지 가는 ‘효행길’을 2014년까지 조성 예정이라니 걷기 편한 곳으로 멋지게 변신할 날을 고대해본다.
▷수원여대입구~오목천교회
오목천동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를 끼고 도는 길은 도심 속 전원을 만끽할 수 있다. 수원여대입구에서 산림유전자원부까지는 도로 양 옆으로 키 작은 조경수와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즐비한 길이 펼쳐진다. 그 길의 끝자락에서는 산림유전자원부 담을 넘어 갖가지 임목과 유실수가 보인다. 담을 따라 걷다보면 조경수 품종 육성시험장에서 각 지역에서 온 소나무·은행나무 등을 볼 수 있다.
이 길의 또 다른 묘미는 시골풍경이 눈앞에 거짓말처럼 펼쳐진다는 것이다. 길옆의 논과 밭에는 수확을 앞둔 벼와 밭작물들이 자라고, 집 마당에는 빨간 고추와 노란 감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다. 한가함과 느림의 정취에 이곳이 도심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길은 근처의 칠보산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자연완상을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면 칠보산으로 향해보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