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풀문화제에서 만난 특별한 사람들

우리 전통을 찾아? 우리 전통에 빠져!

지역내일 2012-11-01 (수정 2012-11-01 오후 11:36:58)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아산 외암민속마을 일대에서 열린 짚풀문화제는 전국 각지서 몰린 관람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축제는 다양한 볼거리와 흥미로운 체험거리로 명실상부 전통문화 체험의 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든 사람들이 눈길을 끌었다.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을 전통혼례로 치른 노부부, 전통주에 매력에 푹 빠진 외국인들을 만나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 전통혼례로 금혼식 치른 부부
“평생 잊지 못할 금혼식, 가슴에 안고 떠나요!” 



* 박유문 안경자씨 부부가 전통혼례를 치르는 모습

미국에 건너가 40년 째 살던 박유문(84) 안경자(72)씨 부부는 한국에서 전통혼례로 금혼식을 치르는 뜻 깊은 추억을 만들었다. 박씨 부부는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자식들이 보내준다는 유럽여행을 뿌리치고 꿈에 그리던 한국을 찾았다. 박씨 부부가 전통혼례를 치른 외암마을 내 상류층 가옥은 짚풀문화제를 찾아온 관람객들이 하객이 되어 초만원을 이뤘다.
박씨 부부는 지난 9월 서울 땅을 밟았다. 셋째 딸과 인연이 있던 아산 해비타트교회 박성식 목사가 이 사실을 알고 박씨 부부를 아산으로 초청했다. 금혼식 기념으로 한국에 온 것을 알게 된 박 목사가 때마침 짚풀문화제 기간에 전통혼례로 금혼식을 해 볼 것을 권유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박유문씨는 1974년 미국으로 떠날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유신정권하에서 나라가 어수선할 때였어요. 한국에서 밝은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웠고 미련 없이 미국으로 떠났죠.”
친척들 모두 말린 미국행. 그렇게 떠난 타향살이는 녹록치 않았다. 무슨 일이건 닥치는 대로 했다. “이때 미국 온 사람들은 정말 고생이 심했어요. 찡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많았죠.” 박씨 부부는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고 향수 젖은 세월을 접어가며 열심히 살았다. 부부는 “지금 생각해도 그 때는 고생이란 생각할 틈 없이 열심히 살았던 것 같고, 살기 바빠 신경 못 쓴 네 딸이 모두 반듯하게 커 줘 정말 고맙다”고 회상했다.
안경자씨는 “허리 펴고 세월을 돌아보니 어느덧 50년이 흘렀어요. 금혼식을 올리는 것도 감회가 새로운데 한국에서 그것도 전통혼례로 하게 되다니 이런 좋은 기회를 가져 꿈만 같아요”라고 행복해했다.
그림에 재능이 많았던 박유문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표구하는 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미국엔 표구하는 곳이 없어요. 미국에 돌아가면 내 작품을 직접 표구할 생각입니다.”
부부는 부모의 갑작스런 전통혼례 소식에도 미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딸들과 기쁨을 나눴다. 박씨 부부는 관람객들의 축하 속에 전통혼례를 치렀던 한국을 절대 잊지 못할 거라며 활짝 웃었다.
박씨 부부가 금혼식을 전통혼례로 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준 박성식 목사는 말했다.
“두 분의 삶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해마다 이혼율이 상승하고 있는 우리네 가정을 보면 매우 안타까워요. 50년이 넘도록 해로하는 두 분을 보며 결혼의 의미와 부부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전통주를 사랑하는 외국인들
“영어로 막걸리에 대해 쓴 책 펴낼 거예요!” 



* 관람객들이 다양한 전통주를 시음하며 맛을 평가하고 있다.

한류열풍의 확산으로 최근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를 찾는 외국인들이 급증했다. 이번 짚풀문화제는 외국인들이 우리의 전통주를 알리는 이색적인 체험장을 열어 관람객들의 크나큰 호응을 받았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우리 술을 만들었다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외국인들이 만든 우리 술을 관람객들이 시음해보고 어떤 술이 가장 좋은 맛인지 인기순위를 가렸다. 시음코너를 진행한 레베카 볼드윈(28)씨와 대니얼 레나헨(30)씨는 미국에서 온 원어민 교사로, 우리 전통주에 흠뻑 빠져 6년째 헤어나지 못하는 외국인 부부다.
마지막 날 인기투표에서 방문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술은 단연 레베카 볼드윈씨가 만든 전통주였다. 막걸리 원주에 감과 계피 등을 넣어 향긋한 풍미를 증진시킨 그의 술은 한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레베카는 “내가 만든 술을 대중에게 소개할 기회가 생겨 기뻤다”며 “관람객들이 즐겁게 시음하는 것을 보며 전통주 제조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레베카는 막걸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국에 계속 살고자 영주권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막걸리에 대해 영어로 된 책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전통주에 대해 공부하며 막걸리에 대한 책을 영어로 펴내기로 결심, 현재 집필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에도 막걸리 양조장을 만들어 미국전역에 막걸리를 보급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날 체험장을 운영한 경기대 조효진 교수는 “전통주의 역사에 대해 토론할 때 대니얼이 “한국이 전통주를 잘 계승하지 못한 이유가 뭐냐”고 질문했다. 변명인 줄 알면서도 일제강점기 때문이라고 답하자 대니얼이 그건 '핑계’라고 일축해버렸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우리의 부실한 전통 계승 현실은 항상 일본 전통주인 사케와 비교하게 된다”며 “우리 술에 대한 노력은 아직 일본에 비할 수가 없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외국인이 한국 술의 세계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접근하기는 드문 일이라며 “레나헨 부부는 전통주에 대한 강의를 직접 할 정도로 우리 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 또한 조상들의 발효 지혜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양조법이 더해져야 세계에서 인정받는 전통주 개발이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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