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 애 맡길 곳이 없다 - 직장보육시설, ''직장맘''들의 꿈

지역·직장보육시설 확충과 지역 단위 돌봄 센터 시급

지역내일 2012-10-08

대전 용전동 H 아파트, 오전 6시. 두 딸아이를 깨우는 김주영(가명·40)씨의 손길이 분주하다. 김 씨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수간호사다. 낮 근무는 오전 7시~오후 3시, 저녁 근무는 오후 3시~10시, 밤 근무는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7시까지다.
김 씨는 초등1학년인 다영이 아침을 식탁에 준비해 놓고 6살인 세영이를 차에 태운 후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아직 개원하지 않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김 씨는 병원으로 출근한다. 등교시간이 8시 30분인 큰 아이는 식은 아침을 혼자 먹고 학교에 간다.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영어 학원을 마친 다영이는 동생 세영이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이곳을 다영이는 작년까지 다녔다. 김 씨가 오후 10시까지 병원 근무를 하는 날이면 다영이는 동생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저녁을 먹고 엄마를 기다린다. 김 씨는 2년 전 남편 조 씨와 법정이혼을 했다. 경제력을 이유로 남편은 친권을 포기했다. 친정이 서울이라 김 씨 주변엔 아이를 맡길 친척도 없는 형편이다.
김 씨는 “15년을 근무한 직장을 육아 때문에 관두려고 했다”며 “맡길 사람이 없어 초등학생을 어린이집에 다시 보내는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김 씨는 “아이를 키우는 간호사들은 입을 모아 ‘우리는 백의의 천사가 아닌 전사’라는 농담을 할 정도”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대전에 있는 종합병원의 경우 한국병원(동구)과 대전선병원(중구) 두 곳만이 직장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상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인 사업장이라면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여건상 사업장이 보육시설을 설치할 수 없을 경우 여성근로자는 보육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지원하는 무상보육 수당과 중복 수당이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대전과 충남·북 등 충청권 내 직장보육시설의 설치 의무 사업장(2011년 기준)은 모두 83곳으로, 이 가운데 설치한 사업장은 36곳이다. 그 중 대전 내 직장보육시설 설치 사업장은 26곳(2012·대전보육정보센터)이며 이용율은 88.1%(대전여성가정정책센터)이다.
대전시내 5개 구청은 사정이 좀 낫다. 대덕구만 청사 내에 보육시설이 없다. 대학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대전지역 4년제 대학 중 직장보육시설을 설치·운영 중인 곳은 배재대가 유일하다. 국립대인 충남대와 한밭대마저도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고, 설립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우려해 시간 강사나 조교, 대학원생의 경우 출산을 미루는 일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강사 정 모(38·송촌동)씨는 “경력 관리를 위해 학기 중에 수업을 여러 곳 다녀야 해서 결혼 후 8년 동안 출산을 미뤘다”고 말했다. 
28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대덕산업단지관리공단의 경우 약 3000여명의 여성근로자가 근무하고 있지만 단지 내 직장보육시설을 갖춘 곳은 ‘유한킴벌리’ 한 곳 뿐이다.
유한킴벌리 관리팀에 근무하고 있는 정윤희씨는 “세 자녀와 함께 출근하며 아이와 정서적 유대감도 얻어 업무의 향상성도 함께 증대했다”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은선(QA팀·덕암동)씨는 “출산 후 복직을 앞두고 10개월도 안 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길 땐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며 “그러나 선배들의 조언과 확인 가능한 거리에 아이의 보육시설이 있다는 것이 나에겐 든든한 동아줄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여성근로자에게 직장 내 보육시설은 일과 가사의 양립에 중요한 영향을 주지만 직장 보육시설 확충에 대한 지자체의 계획은 불확실한 상황이다. 
대덕산업단지관리공단 정덕영 업무팀장은 “2010년 대전시와 대덕산업단지관리공단이 보육시설 조성사업을 추진했지만 현재는 답보상태”라고 전했다.


정부의 효율적 보육정책 시행 절실 = 
문화동에 사는 최송희(가명·37)씨는 ‘돌상대여 전문업체’에서 일을 한다. 업무 대부분이 주말에 있어 어린이집 이용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특히 일의 특성상 새벽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맡길 곳이 없다.
최 씨는 “전날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가 집으로 와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다음날 까지 아이를 봐준다”며 “아이가 두 살이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돈을 벌어야하는 형편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또한 최 씨는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나 급하게 일이 들어왔을 땐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충남대학교 박현숙 외래교수는 “직장보육시설이 없는 직장맘들을 위해 아이를 맡아주는 부모님께는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해 복지시설 이용에 혜택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자식 뒷바라지와 손주 육아까지 맡고도 불행한 노년을 보내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페이스북 오프라인 모임인 ‘얼숲’ 회원인 박지영(44·문화동)씨는 “워킹맘들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회원들과 자주 나눈다”며 “동마다 있는 주민센터에 보육교사를 배치해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과 부산, 천안에는 직장맘들이 채용부터 퇴직까지 지원 받을 수 있는 ‘직장맘지원센터’가 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달 13일 신수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업무 협약을 맺어 주민센터 내에 저녁시간 돌봄 센터를 마련했다. 아이의 저녁식사와 학습까지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광역시인 대전에도 직장맘지원센터가 있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여성정책과 김순재 사무관은 “단순히 ‘직장맘지원센터’만 여러 곳 개소하고 직장보육시설만 개선하는 것으로 직장맘들의 본질적인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정부의 효율적인 보육 정책과 직장보육 정책이 맞물려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전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 1.74% ‘전국 꼴찌’ =
여성정치네트워크 임정규 사무국장은 “직장보육시설 확충도 중요하지만 대전시 여성근로자의 근로형태가 계약직, 비정규직이 많으니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정치네트워크가 지난해 전국 직장여성 4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워킹맘을 위한 가장 필요한 정책’에 대한 답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직장문화 형성’(30%)를 꼽았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지역직장보육 시설 설립이 29%로 그 뒤를 이었다.
임정규 사무국장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어린이집이 아닌 지자체에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할 수 있는 시립·구립형 어린이집이 동별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조사에 따르면 대전지역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은 1.74%(28곳)로 전국 최하위이나 정원 충족률은 92.6%로 전국에서 5번째로 높았다. 특히 영·유아의 경우 국·공립 선호도가 61%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유한킴벌리 직장보육시설인 푸른숲 어린이집은 420㎡ 규모로, 총 33명의 영?유아를 수용할 수 있다.
원아는 1세부터 4세까지 연령에 따라 3개 반으로 나누어 7명의 전문 교사들이 지도하며, 주중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한다.
<사진 유한킴벌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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