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가족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관심 가져야죠”

SJM 직장폐쇄 50일, 조합원 가족들의 유쾌 상쾌 통쾌한 투쟁이야기

지역내일 2012-09-19

반월공단 내 건실한 업체로 손꼽히는 SJM에서 지난여름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용역직원을 동원해 노동조합원을 공장에서 끌어 낸 회사는 직장폐쇄를 선언하고 조합원들의 공장출입을 금지했다. SJM 노동조합원 250명이 공장 밖에서 회사 측과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직장 폐쇄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족들의 고통도 커져만 간다. 공단 배후 도시인 안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겪는 고통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남편 직장을 지키기 위해 ‘내조의 여왕’을 자처하고 나선 SJM노동조합 가족대책위원들. 지난 10일 중앙동 한 커피숍에서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녀들의 일상을 바꿔놓은 유쾌 상쾌 통쾌한 투쟁이야기를 들어봤다.


리포터 _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홍미경 _ 너무 바빠요. 일주일에 한번 씩 가족대책위원회 소식지 만들어 조합원들 가정에 보내주고 틈틈이 모여 문화제에서 보여 줄 율동도 연습하죠. 비가 오면 농성장에서 남편들 먹을 부침개도 부치고 오늘처럼 인터뷰도 하고 정말 바쁘게 살고 있어요.
이영주 _ 맞아요. 예전엔 우리 식구 4명 먹을 밥만 하면 됐는데 요즘은 뭘 해도 200인분이 기본이에요. 덕분에 손만 커졌어요. (웃음)


리포터 _ 큰 폭력사건도 겪었는데 다들 표정이 밝으시네요.
이은정 _ 처음엔 다친 사람도 있고, 너무 어이없는 일을 당해서 만날 때마다 울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고 처음 겪는 일이라 다들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만나면 즐거워요. 우리 남편들이 잘 못 한 게 없다는 걸 아니까요. 회사도 불법으로 용역업체와 계약한 것 때문에 책임자가 구속됐고 단체협상도 다시 시작됐어요. 어려워도 언젠가 끝날 거라는 걸 믿으니까 이왕 시작한 일 다들 즐겁게 하고 있어요.


리포터 _ 회사 폭력사태 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뭔가요?
권지혜 _ 아이들이 “경찰은 왜 안 지켜 줬냐?”고 물어요. 나쁜 사람들이 와서 아빠를 때렸는데 경찰은 뭐했냐는 거죠. 7살 아이는 나쁜 사람이 나타나면 경찰이 지켜줄 거라 믿고 있는데 그런 믿음이 없어졌으니 혼란스럽겠죠. 엄마 아빠가 지켜 줄 거라 말하지만 늘 불안해 하니까 안쓰럽죠.
홍미경 _ 난 오히려 회사에 고마운 것도 있어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부부관계가 더 좋아졌어요. 옛날엔 남편이 술 마시고 들어오면 ‘어이구 저 웬수 또 술 먹었네’ 하며 화를 냈다면 요즘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술을 마셨을까’ 그 마음이 이해가 되요.
권지혜 _ 맞아. 남편이랑 대화도 정말 많이 해요. 밤에 잠들 때까지 대화하는 것 같아요.


이은정 _ 그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회사가 왜 이런 일까지 벌여서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하는지 알고 나니까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가 단지 월급 더 받게 해 달라고 싸우는 게 아니에요. 회사가 성장한 만큼 노동자들의 노력을 인정해 달라는 건데 회사는 꼼수를 부려 적자가 나는 회사로 만들어 놓고 적자니까 너희들 나가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부리기 쉬운 비정규직으로 직원을 뽑겠죠. 다들 20년 이상 청춘을 바친 회사에요. 공단 안에 다른 사업장에서 우리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해요.
권지혜 _ 전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실 우리 아이도 노동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노동자가 이런 대접을 받는데 누가 노동자가 되고 싶겠어요. 요즘 아이들이 너무 약아서 힘든 일은 안하려 한다지만 이런 세상에서 누가 노동자가 되고 싶겠어요. 깡패 동원해서 때리고 이건 정말 아니에요.
이영주 _ 전 조금 후회되는 일도 있어요. 몇 년 전 쌍용자동차 사건 일어나고 그랬을 때 관심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내가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무관심이 무서워요. 이제는 정말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일에도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그 때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무관심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싶어요.
홍미경 _ 아마 회사는 우리가 월급도 못 받고 집에서 울고 있을 거라 예상할 테지만 우린 절대 안 그래요. 우리 못하는 거 없어요. 글 쓰고 춤추고 요즘은 남들 앞에서 말도 잘해요. 그야말로 예능인 다 됐어요. 다만 사람들이 조금만 응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야지”라는 이야기만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매일 땀에 젖은 투쟁조끼를 빨래하면서, 남편의 점심도시락도 챙기면서 변화된 일상을 마주하는 그녀들. 불안에 떠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걱정하는 부모님을 안심시켜야 하는 일도 그녀들의 몫이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의 싸움이 결국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임을 알기 때문에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 그 꿈의 위해 ‘가족과 함께 먹는 저녁’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천막 농성장으로 출근하는 남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될 것을 다짐한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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