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운/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과거사 인식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특히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그의 인식은 확고하며 섬뜩하기까지 하다. 유신독재체제로 회귀하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두개의 판결' 발언 파문에 대해 당 대변인이 12일 당내 의견을 수렴해 공식 사과하자 박 후보는 이를 모르는 일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여전히 유신독재 시절의 대법원 판결도 유효하다는 입장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 정치쇄신위원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마저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새누리당내의 충격과 혼선도 크다. 이날 새누리당 앞에서 "한번 죽이면 됐지, 두번 죽이려 하느냐"며 절규하는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이 가슴을 후벼 판다.
박 후보는 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역사의 객관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면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대법원에서 서로 다른 두가지 판결이 나왔으니 이 역시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박 후보는 11일에도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도 있었지만,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에도 여러 증언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해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그릇된 역사의식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박 후보가 말하는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은 박범진 전 의원과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다. 이들은 모두 1964년의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을 말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았거나 박 후보가 자기 입맛대로 인용하고 해석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유신 독재체제로 회귀하겠다는 의도
'인혁당재건위 사건' 또는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하기 위해 헌정질서를 파괴하면서까지 강행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며 '북한 지령을 받은 인혁당재건위가 배후세력'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했고, 법원은 이 가운데 8명에게 사형을, 15명에게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사형이 선고된 8명에게는 상고가 기각된 지 불과 20여시간 만에 형을 집행한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이다. 독재정권이 저지른 씻지 못할 역사적 범죄행위다.
증거도 없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민주화운동 진영의 생생한 증언과 항의가 잇따르자 결국 법원은 2005년 재심을 받아들였고 2007년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잘못된 법원 판결에 의해 죽어간 희생자들을 살릴 길은 없다. 그 이후 진행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시국사건 중 최대 액수인 637억여원을 국가가 지급했지만 이미 억겁의 한을 품고 이승을 떠난 그들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박 후보는 유신시대 대법원의 판결을 반성하고 재심을 통해 올바르게 바로잡은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두고 '두개의 판결' 운운하는 무지를 드러냈다. 여러 차례 유신시대 인혁당 사건 판결에 대해 사죄한 사법부 역시 '최종판결이 유효한 사법부의 최종판결'임을 확인하며 박 후보의 발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동장이 되려는 사람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느냐"며 통곡하는 유가족들의 항변이 훨씬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앞줄 사형, 뒷줄 무기, 셋째줄 20년형
당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풀려나 지난 2월 재심에서 38년 만에 무죄가 선고된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은 11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유 의원은 "수배 중 경북대생 여정남 선배 하숙집에서 숨어 있었다. 당시 사회 활동하던 선배들이 학생들에게 교통비 얼마씩 준 것이 인혁당 사건의 전말이다. 당시 비상고등군법회의는 앞줄 사형, 뒷줄 무기징역, 셋째 줄 20년형으로 거의 정찰제 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또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기 3일 전에 풀러지지 않는 일명 '미제수갑'을 24시간 채워 이미 사형집행에 착수했다고 한다. 여정남씨는 이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 중 한명이다. 유 의원은 그 때 형장으로 끌려가던 분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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