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로 떠난 가을 부부여행>

변산 가을 정취와 여유를 가슴에 담다

지역내일 2012-10-25

고등학생 아들의 수학여행을 틈타 오랜만에 오붓한 부부여행을 시도했다. 하늘의 시샘인지 아침부터 바람이 제법 거세고, 비까지 주룩주룩. 들뜸과 귀찮음으로 뒤섞인 마음은 코스모스가 반갑게 맞아주는 변산반도로 들어서며 날씨와 함께 활짝 개었다. 내변산의 산과 외변산의 바다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룬 변산반도 곳곳을 둘러보며 우리 부부는 한적한 가을 정취와 여유를 가슴에 담았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 변산의 레이크 루이즈 직소보·직소폭포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 안도현의 ‘간격’ 중에서
우리가 첫 코스로 정한 곳은 산과 물이 절경을 이루는 내변산의 직소보와 직소폭포. 산 어귀의 담장 없는 농가에는 농익은 감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들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한다. 내변산 탐방지원센터(063-584-7807)에 들러 직소폭포까지 2.2km 코스(도보로 왕복 1시간 40분)임을 확인하자, 가벼운 산책 차림이었던 우리는 코스가 무난하기만을 바랐다.
산책길은 제법 거센 가을바람이 숲을 쓸어대다가도 협곡으로 접어들면 어느 순간 바람은 멎고 정겨운 계곡물 소리를 흘려보낸다.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간격을 두고 반복됨이 신비스럽다. 설익은 단풍 속에 띄엄띄엄 바위를 박아놓은 산세는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그려낸다. 산 중턱에서 직소보를 내려다보자 남편은 “레이크 루이즈 갈 필요 없네”라고 한다. 직소보의 풍경은 캐나다 로키의 레이크 루이즈와 닮아 있었다.
부부만의 고적한 산길에 동행이 생겼다. 단체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하는 단체 등산객은 전주해성고 교사들.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라 일찍 끝나서 야유회를 왔다고 한다. 대치동 교육의 한복판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연에 묻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선생님들이라니 부부는 피식 웃음이 난다. 폭포 전망대에 이르자 폭포의 물줄기는 사람과의 간격이 멀어 외경심마저 든다.


# 천년고찰 내소사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조지훈의 ‘고사(古寺)’ 중에서
직소폭포에서 내려와 발길을 옮긴 곳은 내변산의 익히 알려진 명소, 천년고찰 내소사(來蘇寺). 내소사는 백제 무왕(633년) 때 창건된 고찰로 목조건물인 대웅보전의 기품과 고즈넉함은 부석사 무량수전에 못지않다. 연꽃을 가득 수놓은 화사한 문살은 법당 안에서 보면 꽃문양은 사라지고 단정한 마름모 창살 그림자만 비춘다. 화려하지만 고요하고, 장중함보다는 다정함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사찰 입구인 일주문에서 대웅전 초입까지 이어진 600m 전나무숲길은 또 다른 볼거리다. 하늘을 가린 700여 그루의 숲길로 들어서자 맑은 솔향기가 몸속에 청량감을 불어넣는다. 남편은 도시에서 마신 오염된 공기를 정화라도 시키려는 듯 연거푸 심호흡을 한다. 이내 따라 해보니 맑은 공기가 몸속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지친 심신을 소생시킨다. 사찰 이름이 왜 내소사(來蘇-이곳에 오는 모든 것이 소생한다)인지 알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름드리 고목 주위에 빼곡하게 걸린 알록달록한 연등과 대웅보전 앞의 커다란 철제 구조물이다. 산 속 약수터에 놓인 빨간 바가지처럼 밉살스럽기 짝이 없는 ‘옥에 티’이다. 일몰시간에 맞춰 낙조를 보기 위해 구미가 당기는 사찰 입구의 파전과 동동주를 뒤로한 채 ‘솔섬’으로 향했다.


# 불타는 구름, ‘솔섬’ 낙조
‘해는 기울고요- 울던 물새도 잠자코 있습니다. ~ 해는 기울고요- 끝없는 바닷가에 해는 기울어집니다. 오! 내가 미술가였다면 기우는 저 해를 어여쁘게 그릴 것을!’ - 신석정의 ‘기우는 해’ 중에서
이날 일몰시간은 5시 55분. 10분전에 변산 모항 근처의 솔섬에 도착했다. 솔섬은 변산에서도 특히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다. 비온 후의 맑은 하늘 때문인지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바닷가에는 사진 마니아들이 일찍부터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선점하고 있었다. 한 사진작가(?)에게 “이런 날씨에도 사진 찍으러 많이 오시네요?”라고 남편이 묻자, “구름 낀 맑은 날의 낙조가 보는 맛이 더하죠. 이런 날을 며칠 동안 기다렸어요”라고 답하며 셔터를 연이어 누른다.
듣고 보니 하늘에 떠있는 구름 하나하나가 석양을 받아 불타고 있었다. 서서히 떨어지는 해는 구름 뒤로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빛의 예술을 연출했다. 우리 부부는 1분도 기다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장관을 바라보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자그마한 섬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우는 해를 마지막까지 배웅하고 있었다.


# 균열과 침식의 아름다움 채석강
‘내 오십 사발의 물사발에 날이 갈수록 균열이 심하다. ~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물사발의 균열이 모질게도 아름답다’ - 서정춘의 ‘균열’ 중에서
외변산 제일의 경치를 자랑하는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은 강이 아니라 중국 당나라의 이태백이 즐겨 찾았던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것이다. 이날의 채석강 물때(간조)는 오전 10시 40분이어서 숙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우리는 변산의 특산물인 젓갈(바지락젓, 가리비젓, 청어알젓 등)을 사기위해 변산의 젓갈 명소 곰소젓갈 시장을 들렀다. 주섬주섬 젓갈 5종 세트를 주워 담는 나를 보며 남편은 “언제 다 먹으려고 그래?”하며 걱정스럽게 한 마디 한다. 매일 젓갈반찬만 줄 것 같아 불안한가보다. 
채석강에 도착하자 마침 물이 한참 빠져있었다. 채석강은 바닷물에 침식된 퇴적암의 층리가 수만 권의 책을 쌓아올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 바닷물을 맞으며 균열과 침식을 반복한 채석강은 시련과 아픔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그런데 여기에도 안타까운 풍광이 있었으니, 아름다운 층리의 한쪽 꼭대기에 웬 현대식 건물? 꼭 그 자리에 건물을 지어야만 했을까.


# 망향의 아픔을 담고 있는 부안댐
‘풍족한 젖줄 뒤에는 고향 잃은 수몰민의 이산의 슬픔이 주저리주저리 흐르고 있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 김민성의 ‘망향의 글’ 중에서
1996년에 준공한 부안댐은 부안, 고창 군민의 식수원이자 앞으로 새만금지구의 용수까지 책임지게 될 다목적댐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국립공원내에 건설된 부안댐은 주변의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등 산과 물의 어울림이 빼어나다.
댐의 정상에 오르면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힘들어도 꼭 올라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댐의 건설로 터전을 잃은 망향민의 아픔을 표현한 망향탑이 서 있다. 탑의 앞면에 새겨진 망향민들의 침울한 표정은 그들의 아픔을 잘 대변해준다. 또 탑의 뒷면에 새겨진 김민성 시인의 ‘망향의 글’은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망향탑 뒤로 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호젓한 오솔길이 보인다. 호기심 많은 남편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며 뒤따랐지만 이내 부안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숨은 명소로 이어졌다. 땀 흘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댐을 내려오면서 변산의 별미인 바지락죽 맛집을 찾았다. 서로가 원조임을 내세우는 맛집 중 남편이 선택한 곳은 주차장에 차가 많은 ‘명인 바지락죽’(063-584-7171)이다. 들어서니 제법 손님이 많다. 바지락죽, 바지락 회무침에 부안의 참뽕 막걸리까지 곁들이니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 고적한 개암사와 역사의 현장 우금암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 유치환의 ‘바위’ 중에서
여정의 막바지에 들른 곳은 개암사와 우금암. 개암사도 내소사와 마찬가지로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이지만 내소사에 비해 소박하고 한적해 친근하게 다가왔다. 개암사 북쪽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현장인 우금암(遇金巖, 또는 울음바위)과 우금산성이 60m 가량 뻗어 있다. 개암사 입구에서 보면 마친 대웅전이 바위를 이고 있는 형상이다.
개암사 입구 오른쪽에 우금암과 우금산성으로 오르는 좁은 등산로가 있다. 800m라고 쓰인 팻말을 보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오른 산길은 가파른 경사와 돌부리가 많아 결코 쉽지 않았다. 아마도 산세가 험해 백제부흥군이 최후의 항전지로 정했을 것이리라. 그래도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상쾌했다. 정상에서 가까이 바라본 우금암에는 백제 부흥운동 당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동굴이 역사의 현장을 담고 있었다. 


청·장년기를 부안에서 보낸 목가적 참여시인 신석정 시인의 시구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이번 여행으로 시인의 시가 어찌 자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지 알 수 있었다. 싱그러운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 부부는 다시 삶의 터전인 도시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아마도 몇 달쯤은 이 에너지로 도시의 오염을 버텨낼 수 있으리라.


<변산 여행 Tip>
* 변산반도 국립공원 홈페이지(http://byeonsan.knps.or.kr)에서 ‘나만의 맞춤여행’ 서비스를 통해 일정에 따라 추천 코스를 소개받으면 초행자도 알차게 여행할 수 있다.
* 솔섬 낙조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 일몰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20분전에는 도착하는 것이 좋다.
* 채석강 탐방 가능시간은 간조 시간 전후 2시간씩 총 4시간이므로 그날의 물때를 미리 알아본다.   
* 숙소와 음식점에 대한 정보는 부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www.buan.go.kr/02tour)에서 검색하면 된다. 참고로 변산반도는 바지락죽과 해물칼국수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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