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비단실로 짓는 전통의 멋에 끌리다

지역내일 2012-10-19

   ‘나의 작업실’은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프로페셔널한 작가의 아틀리에 뿐 아니라 작업실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공간이지만 남다른 감각과 솜씨가 배어있는 공간까지...공간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나만의 공간, 나만의 작업실에서 창작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나의 작업실
‘   강우경 전통자수 공방’ 강우경 작가
   한 땀 한 땀 비단실로 짓는 전통의 멋에 끌리다!


 
요즘 학생들에겐 ‘수예’라는 단어가 낯설겠지만, 7080세대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예’ 시간이 있었습니다. 모양새는 그럴 듯했던 수틀에 비단을 팽팽히 잡아당겨 끼운 후 오색실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다보면 어느 사이 제법 꽃이 되고 나비가 날아다니던 기억. 서툰 그 작품(?)을 엄마는 액자에 끼워 안방에 오랫동안 걸어두었었지요.
마두동 우방상가에 위치한 ‘강우경 전통자수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오래 전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수예 시간에 만지작거렸던 수틀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수틀이 놓인 그의 작업실엔 우리 ‘전통자수’의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자수를 처음 만난 후, 지금까지 자수와 사랑에 빠져 산다는 강우경 작가. 그는 오늘도 한 땀 한 땀 전통의 혼을 이어가고 있는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중학교 때 맺은 자수와의 인연
강우경 작가는 1990년 20대의 나이에 기능올림픽대회 수 자수 금메달을 딴 이후 2005년 신사임당 예능대회와 2010년 행주공예디자인대전 등 수많은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최고의 자수 명인이 되기 위해 전통자수 명인 4명과 이화여대 섬유예술과 교수로 부터 전통과 현대자수 교육을 받았으며, 한국과학기술대학교 (구 서울산업대학교)산업대학원 전통공예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하는 등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를 놓지 않고 있다. 또 지난 3월에는 효자동 사랑방이라 불리던 청와대 사랑채에서 우리 전통 자수와 매듭, 도자, 한지, 민화 등 60여 점을 선보인 특별전에서 ‘비상을 꿈꾸는 독수리’를 선보여 국내외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전시회 요청 등이 많다보니 그동안 밀린 작업이 많다”는 강 작가. 30여 년 뒤돌아보지 않고 자수 장인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도 처음부터 자수의 길로 들어서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향 완도에서 병원과 약국을 운영하던 부친이 읍내 쪽으로 옮겨오면서 중학교 입학 접수기간을 놓쳐 그 해 입학을 못하게 됐지요. 친구들은 모두 학교로 가고 혼자 외톨이가 되어 우울해 있을 때 자수를 하던 사촌언니를 따라 서울로 오게 됐어요.” 사촌언니 옆에서 처음 바늘을 잡아봤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언니의 스승으로부터 그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그가 꿈꾸던 일이 아니었기에 귀에 담아 두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자수와 인연을 맺은 후 그는 2년 만에 어렵다는 산수화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발휘했다. 이후 부모 밑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원하던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열대여섯 나이에 접했던 자수의 매력을 잊을 수 없었다. 그 길로 그는 “자수를 한 번 제대로 배워봐야겠다”고 작정하고 자수의 대가들을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이화여대 전통자수 교수, 인간문화재 한상수 자수장 등에게 사사를 받으며 기술을 전수받은 그는 20대 후반에 대한민국 기능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후 박물관을 창건 중인 모 사찰의 실존인물 전신 모습 작업을 위해 3년간 대가없이 사찰에 머물면서 작업을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전통자수에 정진, 작가로서의 입지를 착실히 다져왔다.
30년 수틀 앞에 앉았지만 아직도 바늘을 잡으면 열정이 솟구친다는 강우경 작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할 때 ‘수를 놓은 듯’이라는 비유를 쓰지 않던가. 그가 인고와 열정으로 빚어낸 손끝의 솜씨를 들여다보면 이런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할까. 그의 작품 앞에서 마음의 정화가 절로 되는 것 같다. 다라니경, 가을 독수리, 봄의 경작, 모란도, 쌍학흉배 등 주로 대작을 만들고 있는 그는 요즘 후대에 남겨줄 3미터가량의 자수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곱고 섬세한 것이 전통자수? 완성도 높이려면 섬세함에 대범함도 갖춰야
우리나라의 전통자수는 크게 궁중자수와 민간자수로 나뉜다. 왕실에서 제작하고 사용했던 수를 궁중자수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궁내에서 왕족의 복식 및 기타 용품에서 장식을 전담했던 공방을 수방이라 하며 궁수는 구방에서 수방나인들이 생산했다. 민간자수와 비교하면 수법은 같지만 더 섬세하며 문양은 민간과 구별되는 매우 우아한 기품이 있다. 특히 금사를 많이 사용했고 2올의 금사 징금수는 민수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반면 생활자수에 사용되던 문양들은 동식물 같은 사실적 문양과 기하학적 문양 등이 사용됐고 부귀영화 다복 다남 장수 등을 염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자수 하면 얌전한 규방처녀를 떠올리듯, 전통자수 또한 곱고 섬세한 것이 작품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곱고 섬세한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꼭 고운 수가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붓끝이 다 다르듯 손끝의 맵시도 저마다 다르거든요. 전통자수도 때로는 과감하고 대범해야해요. 땀의 강약조절이 잘 조화를 이뤘을 때 좋은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를 놓다보면 한 땀이 작품의 질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는 그. 그래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작품이라도 한 땀이 잘못됐다 싶으면 과감하게 그 작품을 포기한다고 한다.
그는 전통자수만 고집하지 않고 현대자수와의 접목, 직접 도안을 그리기 위한 그림 작업, 염색작업 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해 현대에 맞는 자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세월이 흐르면 색상이 변하고 바라는 자수의 보존을 위한 연구까지, 전통의 혼을 이어가기 위한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들인 자수가 아닌 기계자수로 빨리빨리 생산되는 기성제품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 이마저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들여오는 자수에 밀려 ‘전통자수’의 맥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그이. 또 손수를 놓는다 해도 분업화되어 한 작품에 여러 사람의 손길로 수를 놓아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이 싫어 그는 아무리 큰 대작도 혼자 수를 놓는다고. 자수를 놓는다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누군가는 그 맥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롭고 힘든 작업이지만 그의 공방 문을 두드리며 “수를 배워보겠다”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 힘이 난다는 강우경 작가. 지금도 여기저기 그를 찾는 이들이 많지만 “나의 작업실에서 조용히 수만 놓고 싶다”는 그의 꿈은 열심히 정진해서 자수명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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