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은 음식 맛의 기본이니까, 정성이 깃 들어야 해요. 요즘도 정월에 길일을 택해 장을 담아요. 특히 오랜 동안 간수를 빼고 장을 담궈서 쓴맛이 없어요.”
손맛 맵기로 유명한 안동 김씨 예의소승공파 맏며느리이자, 외며느리인 최명희씨(52세)가 말하는 시어머니로부터 익힌 안동김씨 종가집 장맛의 비결이다.
최명희씨네 장맛은 안동김씨 집안에서 인정받은 것은 물론 작년에는 농림부로부터 된장·간장(농림 전통 제168호, 162호), 고추장·쌈장(농림전통 제167호), 청국장(농림 전통 제165호)에 대해 각각 품질인증을 받았다. 이와 함께 지난 13일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메주에 대해서도 농림부의 품질인증을 받았다.
이것이 화제가 되어 최명희씨네 종가집 장맛이 ‘입 소문’을 타자 요즘 하루에도 수십 통의 주문전화가 줄을 잇는다.
장맛은 물, 공기, 볕이 기본
제비원전통식품은 제비원 연미사를 지나 햇볕이 따스하고 산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와 통풍이 잘 되는 서후면 저전동의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수십 개의 장독대가 줄을 이어 서서 겨울 속의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장독대를 지나면 메주가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고 커다란 무쇠가마솥 11개가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다. 바로 구수한 메주콩(대두)이 가마솥에서 뜸을 들이고 있는 풍경.
최명희씨는 대뜸 메주콩을 한 그릇 퍼담아서는 “맛을 보라”고 건네며 집안으로 이끌었다. 현대식 양옥 건물인 집안에는 메주냄새가 가득하다. 마치 메주가 익어 가는 고향 할아버지댁 안방에 들어선 것처럼.
4년 전 본격적으로 장 담그는 일을 업으로 하기 위해 위치를 고르던 중 풍수지리에 눈이 밝은 한 도인이 이곳을 일러줬다고 한다. 장맛은 물, 공기, 볕이 좋아야 하기에 지하 150m의 암반수가 나올 뿐만 아니라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된장공장으로서는 천혜의 위치라 할 수 있다.
전통방식의 생산공정 고수
요즘 시중에 유통되는 장은 전통방식의 생산공정과는 거리가 있다. 최명희씨는 콩을 삶는 일에서부터 장 담그는 모든 공정을 힘이 들더라도 전통적인 방식의 생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콩은 경북북부지방에서 생산되는 콩을 주로 사용해서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로 콩을 삶는다. 무쇠 가마솥에 삶아 뜸을 들여야 메주고 무르고 질이 좋아진다. 만들어진 메주를 하룻밤을 재워 볏집으로 매달아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자연 건조시키게 되는데, 볏집을 사용해야 하지만 바실러스-서브틸리스(효인성 균)라는 곰팡이가 생성된다고 한다.
장 담그는 시기도 입춘부터 삼월 삼짓날 이전까지 정월만 고집한다. 음력 정월에 담아야만 알맞은 염도가 조절되기 때문.
또 전통적으로 장을 담글 때는 금기사항이 있었듯이 상가집에 출입한 사람이나 월경을 하는 여인들은 요즘도 장독으로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장 담그는 용기도 자연에서 얻어지는 무공해 옹기를 써서 발효시킨다. 숨쉬는 항아리 속에서 숙성시킨 장이라야만, 전통 장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맛도 기술, 끊임없는 연구
장 만드는 공정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되 과학적인 방식도 일부 도입하고 있다. 그것은 주부로서의 당연한 책임. 아이들에게 식물성 단백질음식을 많이 먹이려다 보니 다른 장보다 콩이 많이 들어가는 청국장이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국장 특유의 냄새 때문에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청국장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랜 실험 끝에 냄새가 적게 나며 맛과 영양이 뛰어난 청국장을 개발한 것이다.
밖에선 레크레이션 강사, 안에선 몸빼 아줌마
은행원이었던 최명희씨는 74년 결혼이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시어머니로부터 가사 일을 배웠다. 그때 익힌 장 담그는 비법이 오늘의 제비원전통식품 대표 최명희씨를 있게 했다.
십여 년 전 세상을 등진 그녀의 시어머니 조정순씨는 홀로 남편을 키우며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사시면서 효부상을 3번이나 받을 정도로 안동에서 이름난 효부였다고 했다.
“우리 시어머니, 참 좋은 분이셨어요. 나를 딸같이 생각하면서 부족한 면이 있어도 꾸중하기보다는 몸소 보여주는 스타일이셨고, 우리 아이들 셋을 다 키워주셨어요.”
아들 셋이 학교에 들어가자,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최명희씨에게도 여유가 생긴 것. 그래서 다시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데, 학창시절 때 응원단장하던 활달한 성격을 살려 레크레이션 강사로 나서게 됐고, 현재 여성회관에서 만남의 시간을 담당하고 있다.
옛날 장맛 그리는 이들을 위해
“우리 것을 찾는 젊은 여성들이 점점 늘고있어요. 아무리 인스턴트 음식에 젖어있다고 하더라도 옛 맛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남아는 것 같아요.”
젊은 여성들에게 믿을 수 있는 장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제비원전통식품을 차리게 된 최명희씨. 밖에 나가면 미니스커트 입는 멋쟁이 레크레이션 강사로 통하지만 그래도 일할 때는 ‘몸빼 입고’ 억척스럽게 일한다. 겨울철인 요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일을 설계하고 장독대 뚜껑 여는 일부터 시작해 뚜껑을 닫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고 한다.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등 안동지역의 전통음식이 전국적으로 상품화의 길을 걷고 있는 추세다. 이런 추세에 맞춰 시어머니가 물려준 장맛을 고집스레 이어가는 신세대 여성 최명희씨의 안동의 종가집 장맛도 세상에 인정받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이향미 리포터 icebahpool@orgio.net
손맛 맵기로 유명한 안동 김씨 예의소승공파 맏며느리이자, 외며느리인 최명희씨(52세)가 말하는 시어머니로부터 익힌 안동김씨 종가집 장맛의 비결이다.
최명희씨네 장맛은 안동김씨 집안에서 인정받은 것은 물론 작년에는 농림부로부터 된장·간장(농림 전통 제168호, 162호), 고추장·쌈장(농림전통 제167호), 청국장(농림 전통 제165호)에 대해 각각 품질인증을 받았다. 이와 함께 지난 13일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메주에 대해서도 농림부의 품질인증을 받았다.
이것이 화제가 되어 최명희씨네 종가집 장맛이 ‘입 소문’을 타자 요즘 하루에도 수십 통의 주문전화가 줄을 잇는다.
장맛은 물, 공기, 볕이 기본
제비원전통식품은 제비원 연미사를 지나 햇볕이 따스하고 산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와 통풍이 잘 되는 서후면 저전동의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수십 개의 장독대가 줄을 이어 서서 겨울 속의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장독대를 지나면 메주가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고 커다란 무쇠가마솥 11개가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다. 바로 구수한 메주콩(대두)이 가마솥에서 뜸을 들이고 있는 풍경.
최명희씨는 대뜸 메주콩을 한 그릇 퍼담아서는 “맛을 보라”고 건네며 집안으로 이끌었다. 현대식 양옥 건물인 집안에는 메주냄새가 가득하다. 마치 메주가 익어 가는 고향 할아버지댁 안방에 들어선 것처럼.
4년 전 본격적으로 장 담그는 일을 업으로 하기 위해 위치를 고르던 중 풍수지리에 눈이 밝은 한 도인이 이곳을 일러줬다고 한다. 장맛은 물, 공기, 볕이 좋아야 하기에 지하 150m의 암반수가 나올 뿐만 아니라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된장공장으로서는 천혜의 위치라 할 수 있다.
전통방식의 생산공정 고수
요즘 시중에 유통되는 장은 전통방식의 생산공정과는 거리가 있다. 최명희씨는 콩을 삶는 일에서부터 장 담그는 모든 공정을 힘이 들더라도 전통적인 방식의 생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콩은 경북북부지방에서 생산되는 콩을 주로 사용해서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로 콩을 삶는다. 무쇠 가마솥에 삶아 뜸을 들여야 메주고 무르고 질이 좋아진다. 만들어진 메주를 하룻밤을 재워 볏집으로 매달아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자연 건조시키게 되는데, 볏집을 사용해야 하지만 바실러스-서브틸리스(효인성 균)라는 곰팡이가 생성된다고 한다.
장 담그는 시기도 입춘부터 삼월 삼짓날 이전까지 정월만 고집한다. 음력 정월에 담아야만 알맞은 염도가 조절되기 때문.
또 전통적으로 장을 담글 때는 금기사항이 있었듯이 상가집에 출입한 사람이나 월경을 하는 여인들은 요즘도 장독으로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장 담그는 용기도 자연에서 얻어지는 무공해 옹기를 써서 발효시킨다. 숨쉬는 항아리 속에서 숙성시킨 장이라야만, 전통 장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맛도 기술, 끊임없는 연구
장 만드는 공정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되 과학적인 방식도 일부 도입하고 있다. 그것은 주부로서의 당연한 책임. 아이들에게 식물성 단백질음식을 많이 먹이려다 보니 다른 장보다 콩이 많이 들어가는 청국장이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국장 특유의 냄새 때문에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청국장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랜 실험 끝에 냄새가 적게 나며 맛과 영양이 뛰어난 청국장을 개발한 것이다.
밖에선 레크레이션 강사, 안에선 몸빼 아줌마
은행원이었던 최명희씨는 74년 결혼이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시어머니로부터 가사 일을 배웠다. 그때 익힌 장 담그는 비법이 오늘의 제비원전통식품 대표 최명희씨를 있게 했다.
십여 년 전 세상을 등진 그녀의 시어머니 조정순씨는 홀로 남편을 키우며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사시면서 효부상을 3번이나 받을 정도로 안동에서 이름난 효부였다고 했다.
“우리 시어머니, 참 좋은 분이셨어요. 나를 딸같이 생각하면서 부족한 면이 있어도 꾸중하기보다는 몸소 보여주는 스타일이셨고, 우리 아이들 셋을 다 키워주셨어요.”
아들 셋이 학교에 들어가자,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최명희씨에게도 여유가 생긴 것. 그래서 다시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데, 학창시절 때 응원단장하던 활달한 성격을 살려 레크레이션 강사로 나서게 됐고, 현재 여성회관에서 만남의 시간을 담당하고 있다.
옛날 장맛 그리는 이들을 위해
“우리 것을 찾는 젊은 여성들이 점점 늘고있어요. 아무리 인스턴트 음식에 젖어있다고 하더라도 옛 맛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남아는 것 같아요.”
젊은 여성들에게 믿을 수 있는 장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제비원전통식품을 차리게 된 최명희씨. 밖에 나가면 미니스커트 입는 멋쟁이 레크레이션 강사로 통하지만 그래도 일할 때는 ‘몸빼 입고’ 억척스럽게 일한다. 겨울철인 요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일을 설계하고 장독대 뚜껑 여는 일부터 시작해 뚜껑을 닫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고 한다.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등 안동지역의 전통음식이 전국적으로 상품화의 길을 걷고 있는 추세다. 이런 추세에 맞춰 시어머니가 물려준 장맛을 고집스레 이어가는 신세대 여성 최명희씨의 안동의 종가집 장맛도 세상에 인정받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이향미 리포터 icebahpool@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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