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하면 “역사에 맡기자”는 박근혜

지역내일 2012-09-12
인혁당사건으로 역사관 또 논란 … 사실관계도 틀려, 현대사 기본소양도 도마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역사관'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인혁당 사건'이다.

지난달엔 그의 '5·16과 유신 평가' 언급이 논란을 일으켰다. 여권에선 박 후보의 '소신 발언'이 정권재창출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역사관 논란으로 여당 취약지대인 젊은세대와 수도권 부동층 여론이 더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그의 통합행보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임을 반증한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박 후보가 역사적 인식은 그대로 둔 채 유신 피해자 유가족 등을 방문하는 이벤트로 면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준비된 대선후보'로 야권후보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새누리당으로선 당혹스런 국면이다. 새누리당 내에선 "박근혜 후보 대선행보의 최대난제는 자신의 소신과 역사관"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대선후보 자질론으로 확산? = 지난달엔 '5·16과 유신'에 대한 대선후보로서 역사적 견해가 문제가 됐다. 이번엔 여기에 박 후보의 법치주의에 대한 기본이해와 '인혁당 사건'에 대한 기초지식 문제까지 보태졌다. 박 후보 스스로 유권자들에게 과거사에 대한 단순한 입장 문제를 넘어 정치철학과 역사적 소양에 관한 물음표를 던진 셈이다.


<잘 안들리는="" 박근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5주년="" 농촌지도자대회에서="" 한="" 참석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뉴시스="" 박종민="" 기자="">

지난 10일 박 후보는 기자들로부터 인혁당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튿날 그는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에도 여러 증언을 하고 있어 다 감안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이어갔다.

◆법치주의와 배치 지적도 = 당장 박 후보는 1·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재심판결로 무죄가 확정된 사건은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재건사건)이다. 유신시대 사법살인으로 알려진 1974년 발생한 공안사건이다.

반면 '최근의 다른 여러 증언'이 나온 사건은 1차 인혁당 사건이다. 이는 10년 전인 1964년 사건이다.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이 "조작이 아니다"(박범진 전 신한국당 의원)거나 "자생적 공산혁명 조직이었다"(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증언을 한 바 있다. 박 후보가 2차 인혁당 사건을 10년 전 사건과 혼동해 생긴 혼란인 셈이다. 또 2차 인혁당 사건에선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이 아닌 '1개의 대법원 판결과 10년 뒤 확정된 재심 판결'이 있었다. 역사적 기초지식과 관련된 대목이란 비판이 나올만한 대목이다.

박 후보의 언급이 사실상 '법치주의'를 외면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판결이 두가지 …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박 후보의 언급 때문이다. 이는 33년전 판결에 대해 오판을 인정하고 바로잡은 재심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로도 읽힐 수 있다.

재심판결까지 확정된 사건을 "다른 증언이 있으므로 역사판단에 맡기자"는 그의 발언도 법치주의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 대법원 재심판결이 취소되지 않는 한 법정 밖의 어떠한 주장도 법정에서 내린 결론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국민이 30여년 민주화과정에서 피와 땀으로 정립한 '군사쿠데타 5·16'을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뒤집은 박 후보의 '역사적 고집'과도 같은 맥락이다. '아버지와 관련된 문제'만 나오면 "나는 다르게 생각하니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며 넘어가는 식이란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인혁당 사건은 = 1차 인민혁명당사건은 지난 1964년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국가변란을 획책한 지하조직 인민혁명당을 적발했다"며 발표한 사건이다. 관련자 57명 가운데 41명이 구속됐다.

2차 인민혁명당 사건은 74년 4월 당시 박정희정권이 유신반대 투쟁을 벌이던 민청학련을 수사하다 배후조종세력으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지목하며 발표한 공안사건이다. 연루된 180여명이 기소됐고 여정남 등 8명에겐 사형이 선고 된 뒤 곧바로 사형이 집행됐다.

이후 유족들은 의문사진상규명위 등의 조사자료를 근거로 2002년 재심을 청구해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법원은 국가에 유족들을 상대로 유족별 30억원대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또 당시 고문과 구타가 동원된 강압수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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