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해 수학 실력을 탄탄하게 다져온 학생들이 많다보니 강남지역 자율고는 물론 일반고에서도 수학 내신 1등급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수학 선행학습을 어떻게 시켜야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난 1학기 시험을 통해 그동안의 수학 선행학습에 대한 결과를 어느 정도 확인한 고1 학부모들로부터 중학생 시기 수학 학습의 허와 실에 대해 들어보았다. 선배 학부모들의 생생한 사례에서 내 아이를 위한 최적의 수학 학습 방향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하며.
# 적절한 선행 시키지 않은 게 후회스러워(일반고 여학생)
큰아이가 중학교 때 수학 선행을 많이 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그래서 작은아이 역시 지나친 선행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심화학습 위주로 공부하게 했다. 그래도 중학교 내신 수학 성적은 줄곧 상위권을 지켰기에 선행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아이들은 제 학년 심화와 선행을 병행해 우리 아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나가고 있었다. 중3이 돼서야 요즘 선행 정도가 큰아이 때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급한 마음에 학원을 찾아 상담을 했더니 내신 수학성적이 좋은 것만 보고 고등 수학 상, 하를 속진과정으로 끝내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아무리 선행이 늦었어도 고등 수학의 첫 단계를 그렇게 서둘러서 마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갔다. 불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일반고에 진학한 후 수학 내신 1등급을 받고서야 속진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아이가 원래 이과에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선행 부족으로 인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서 문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아이의 실력이나 목표를 고려해 적절한 선행을 시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 게다가 1학기까지는 내신을 잘 지켰지만 과연 2학기에도 1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 자율고 이과 목표라면 수학 실력 확실하게 다져야(자율고 남학생)
자율고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과에는 수학에 자신이 있는 아이들이 주로 모인다. 따라서 수학 내신 등급을 잘 받기가 아주 어렵다. 너나없이 공부에 매달리는 분위기이므로 수학 시험을 볼 때 조금만 방심하거나 실수를 하면 등급이 곤두박질치고 만다.
최상위권 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학생들 대부분은 성적의 기복이 심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니 나름대로 선행을 하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이 안 나와 불안하기만 하다. 학교 시험이 어려워 평소에도 늘 내신 대비를 하느라 학기 중에는 선행을 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시험 기간에도 수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과목을 챙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자율고 이과를 선택할 거라면 중학생 시기에 수학 실력 다지기와 선행학습을 확실하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자신감을 갖고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실수 없이 꼼꼼하게 푸는 연습도 중요해(일반고 남학생)
수학을 워낙 좋아해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 학원 경시 대비반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경시에서 좋은 성적을 낼만큼의 실력은 아닌 것 같아 경시 위주의 학원을 그만 두고 선행을 시작했다. 경시에 대한 미련이 남았지만 일반고 이과 수학 1등급을 목표로 계속 진도를 나갔다.
1년 반 정도 경시 준비를 한 덕분에 고교 진학 후 내신 수학은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경시 대비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문제 풀이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던 아이가 내신 시험에서는 조금씩 허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신 대비는 많은 양의 문제를 꼼꼼하게 다뤄보면서 정해진 시간 내에 실수 없이 완벽하게 푸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이해한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답답해했다. 결국 내신 시험 객관식 문제에서 1~2개 정도는 틀리고 서술형에서 감점을 당하기도 했다.
경시 대비를 통해 어떤 문제가 나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만족스럽다. 하지만 고교 내신 1등급을 유지하려면 진득하게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면서 실수를 줄이는 연습도 병행해야 한다.
# 1년 정도 선행하면서 기본기 쌓기에 주력(일반고 여학생)
너무 진도 나가기에만 급급한 선행은 원하지 않았기에 약 1년 정도 선행을 한 상태에서 중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시험 문제가 어려운 편이었고 가끔 경시 수준의 문제도 출제됐지만 선행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중학교 3년간 수학의 기본기를 다지는데 주력했다. 난이도가 높은 한 두 문제 때문에 좌절하기보다 소신껏 내 아이에게 맞는 수학공부를 계속 시켰다.
선행과 제 학년 심화를 병행하는 소규모 학원을 선택한 것도 도움이 됐다. 아이가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서 수학 성적 변화 여부에 상관없이 꾸준히 보냈다. 고1인 지금도 이과를 선택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선행 정도가 부족한 편이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큰아이 친구들을 보면서 선행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록 1학기 수학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 외고 준비하느라 수학 놓친 게 너무 아쉬워(외고 여학생)
초등학교 4학년부터 1년간 조기유학을 다녀왔다. 미리 어느 정도 수학 선행을 하고 갔지만 귀국 후 수학 진도를 쫓아가느라 힘이 들었다. 개인과외를 하다가 6학년 때부터 소규모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이의 성격 자체가 꼼꼼해 개념부터 천천히 짚어주는 방식이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중학생이 된 후에도 수학 선행 정도가 빠르지 못했고 게다가 문과 성향을 보여 외고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중학교 내신 시험이 어렵지 않아 큰 문제는 없었지만 너무 한 학원에서만 공부한 탓인지 성적이 정체되는 것 같아 3학년 초에 대규모 학원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그동안 꼼꼼하게 기초를 다진 덕분에 수학성적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고 입시의 중요한 요소인 영어내신을 완벽하게 챙기느라 상대적으로 수학 공부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다.
외고에 진학하고 보니 수학 내신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영어도 잘하면서 수학실력까지 뛰어난 아이들이 많아서 결국 1등급을 놓치고 말았다. 만회를 하려고 해도 전공 외국어 자격시험 준비하랴, 대입에 필요한 스펙까지 관리하랴 도무지 수학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가 없다.
중학생 때 외고 입시 준비를 하더라도 이과에 지원할 학생들처럼 수학 선행과 심화까지 했더라면 고교 진학 후 훨씬 더 여유 있게 공부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 수학 공부에 재미 붙여 이과로 진로까지 바꿔(일반고 남학생)
중1 때까지만 해도 수학보다 영어에 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고교 진학 후 문과를 선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중2 때 다니던 학원 강사의 수업 방식이 수학에 재미를 붙이게 해 이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강사는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중학생 시기에 스스로 수학 공부를 하는 습관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복습보다 예습에 비중을 두고 지도했다. 여느 학원 수업처럼 개념 설명을 해준 후 문제풀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행 부분을 혼자 예습해보고 문제까지 풀어가는 것이 과제였다. 물론 처음에는 그동안 떠먹여주는 식의 수학 공부에 익숙해져 있던 아이가 적응하기 너무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수학 공부가 재미있어지고 실력까지 저절로 향상되는 효과를 봤다.
그런 식으로 꾸준히 선행을 하고 제 학년 심화학습까지 함께 하다 보니 고등학생이 돼서도 수학성적이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다.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미니 인터뷰 - 중동고 이지연 수학교사
Q. 고1 학생들이 첫 시험을 본 후 어떤 반응을 보이나
- 자율고처럼 수학 시험의 난이도가 높을 경우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90점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처음으로 60~70점대의 점수가 나와 충격을 받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감을 상실해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도 수학성적이 오르지 않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Q. 수학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왜 중요한가
- 자신감이 그대로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수학 문제는 상중하의 난이도로 구성되는데 일단 자신감을 잃은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 정도라면 당연히 맞춰야 하는 문제마저 지레 겁을 먹고 떨려서 놓치게 된다. 그런 상황이 다음 시험에까지 이어지면서 점점 더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자신감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성적이 향상되는 학생들도 있다.
Q. 수학 최상위권 학생들은 어떤 점이 다른가
- 중학교 시험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문제는 거의 출제되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무조건 기출문제만 많이 풀어보는 식으로 수학을 암기과목처럼 공부해온 학생들이 있다. 그렇게 하면 80점대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100점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에 적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위권이 최상위권으로 못 올라가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그동안 다뤄본 유형으로만 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접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풀려고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Q. 고등수학 선행, 어떻게 해야 하나
- 다들 선행을 하기 때문에 불안해서 시킬 수밖에 없다면 제대로 정확하게 시켜야 한다. 선행을 해서 정말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수업을 복습하는 기회라 여기고 집중한다. 하지만 어설프게 한 아이들일수록 다 안다고 착각해서 수업을 듣는 태도가 좋지 않다.
막상 제 학년 수학 성적은 잘 나오지도 않는데도 지나치게 선행에만 시간을 투자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차라리 제 학년 공부에 주력해 상위권 성적이 나오면 자신감을 갖게 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섣부른 선행을 한 아이들은 그 힘으로 고1, 2 모의고사 성적까지는 잘 나올지 몰라도 고3 3월부터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Q. 꾸준히 수학성적이 오르는 아이는 어떤 경우인가
- 현재 자신의 성적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꾸준히 공부하면 결국 성적을 올릴 수 있다. 고1 때 수학성적이 50~60점대였던 한 학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루 2시간씩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해서 고2 때 90점대로 올라섰고 결국 고3 때 1등급을 받았다.
중학생 시기에는 선행보다 수학 공부를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 수학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져 고교 진학 후 자연스럽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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