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를 치렀다. 이제 그 결과에 대한 일희일비만이 남았다. 기초학력미달율이 높은 학교에 대한 불명예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갖는 상실감은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09년 12%에 이르렀던 기초학력미달율을 0%(2011년)로 만든 우만초등학교(교장 강성환)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다. 단순한 학력신장만이 아닌 개개인의 심리상태와 환경 등을 고려한 맞춤형 개별학습 프로그램, 아이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선생님은 이전과는 다른 책임감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키워나가고 있다.
#1. 영어 수업시간. 예전 같았으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선생님 얘기가 요즘 진성이(가명, 초6)에겐 달콤한 속삭임처럼 귀에 쏙쏙 감긴다. 진성이에게는 담임선생님 외에 진성이만의 선생님이 또 한명 있다. 국*영*수 수업시간이면 어김없이 자신의 주변을 지키며, 진성이가 문제 푸는 걸 도와주거나 보충설명을 해준다. 왠지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해 우쭐한 기분이다. 학습보조를 맡고 있는 김선희 인턴교사는 “진성이는 수업에 집중도 잘 못하고, 듣기가 거의 안 되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다른 아이들보다 영어실력이 월등히 좋아지고 영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했다. 영어수업을 더 하자고 선생님을 조를 정도다.
방과 후에는 오늘 배웠던 단원의 개념을 짚어본다. 진성이를 비롯해 같은 반 학습부진 학생 4~5명을 관리하는 김 교사는 수업 중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체크해두었다가 일대일 지도를 한다. 선생님을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가운데, 공부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 진성이는 “이젠 발표도 잘 한다”며 씩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2. 화*목요일, 정수(가명, 초5)는 학력신장실의 엄마품멘토링 교실을 찾는다. 나른한 오후, 날은 덥고, 눈은 감기는 게 그냥 집으로 가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이유는 “예습, 복습도 시켜 주고, 엄마보다 잘 가르쳐주기 때문”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상담할 때 마음이 풀어지는 게 가장 좋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존심도 상해하고, 완강하게 안 하려던 정수가 이젠 제게 까불고, 불쑥불쑥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해요. 그냥 그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모양이에요.” 엄마품멘토링 이정호 교사는 그런 정수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봤다.
인턴교사-엄마품멘토링-대학생멘토링, 정확한 진단을 통한 맞춤형 개별학습
사람의 능력이 다른 만큼 교수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학습보조 인턴교사, 엄마품멘토링 등은 학생의 심리상태, 현재의 학력에 맞는 일대일 개별학습에 가장 근접하게 만들어졌다. 교사자격증이 있는 5명의 학습보조인턴교사가 6학년의 각 반을 맡아 학습부진 학생들의 학습태도를 관찰하는 등 개인교사 역할을 한다. 엄마품멘토링은 학습 뿐 아니라 정서적인 케어가 필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유아,상담 프로그램 과정을 이수하고, 육아 경험이 있는 엄마들을 선생님으로 선발했다. 미술심리치료, 직업상담사자격증을 가진 이정호 엄마품 교사는 “진도를 통해 개별적으로 막히는 부분을 가르쳐준다. 수업 외에도 미술치료나 다양한 만들기를 하면서 자유롭게 놀아주는데, 서로 알아가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대학생멘토링은 새터민이나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학습부진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검증된 표준화 도구를 만들었어요. 자체제작한 평가지에 의한 진단, 기초지능검사, 종합능력검사, 적성검사 등 기존의 전문검사도구를 활용한 진단, 학기 초 상담기록부 등 부모와의 면담을 통한 진단을 종합해 부진요인을 분석합니다. 성격특성, 흥미, 가정환경 등 다방면의 정보를 가지고, 맞춤형 개별학습을 하게 되죠.” 강은경 연구부장교사는 정서적인 우울감이 원인인 아이들은 Wee클래스에서의 상담만으로 학습부진을 개선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전 학년 배움중심 교육과정, 교사&학부모의 인식변화도 중요
실력 향상을 위한 또 다른 프로그램은 전 학년 대상의 배움 중심 교육과정에 있었다. 강 교사가 건넨 ‘우만배움노트’엔 이달의 목표에 대한 결심, 필수학습요소를 통해 알게 되거나 느낀 점들이 자유롭게 기록돼있었다. 단원별 평가점수가 기록된 국어?수학 학력향상 카드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적게 하고, 실수를 줄여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겐 담임교사가 든든한 지원자가 된다. 방과 후 개인관리를 통해 관심을 기울이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게 도와준다.
“전 교직원의 연구조직화와 연수강화로 예전에 비해 교사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어요.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도 보다 투철해졌죠. 담임교사-인턴교사간의 멘토-멘티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고요.” 교사의 이런 움직임과 더불어 맞춤형 개별학습 프로그램에 대한 학부모의 적극적인 동의, 학부모연수에 보내는 높은 관심은 우만초등학교를 기초학력미달율 ‘제로’로 만든 탄탄한 밑바탕이 됐다.
변화의 시작은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기, 멀리 바라보기
타 지역에 비해 열악한 주변 환경, 어려운 가정환경에 놓여있던 아이들에게 다방면에서의 관심은 그렇게 조금씩 변화를 가져왔다. 칭찬과 돌봐줌에 부응이라도 하듯 나쁜 일을 하는 횟수도, 수업 중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돌발행동도 줄었다. 강 교사가 당부한다.
“아이들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기초학력미달율이 높았던 저희 학교가 3~4년여의 시간을 거치며 학력향상형 중점학교로 타 학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듯 아이들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정호 교사는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으니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우만초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색으로 반짝반짝 빛날 그때를 꿈꾸고 있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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