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번역가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명성높은 사회주의자인 잭 런던(1876~1916)은 원래 겁이 많은 사나이였다. 살인적인 악조건의 공장 유아노동자, 부랑자로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열렬한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잭 런던은 독학으로 방대한 학문을 섭렵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주로 북극지대를 무대로 동물소설들을 썼다. 그러나 수많은 파업과 노동자들의 학살 현장을 겪은 잭 런던은 그런 체험과 독자적 통찰력, 사회과학적 분석력을 통해 수준 높은 사회소설들을 내놓았다. 그래도 '노동자들의 요구에 기관총으로 대답하고' 사회개혁자나 항거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을 강철 뒷굽으로 밟아 뭉개는' 독점자본-정치가들-파업파괴자들의 과두체제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1908년에 쓴 "강철군화(The Iron Heel)"은 그래선지 전세계를 강타한 수십년간의 베스트셀러 노동소설인데도 20세기초 노동운동에 목숨을 바친 혁명가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일생을 아내 에비스가 기록해둔 원고가 27세기에 발견된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현실적 탄압을 피해가려한 흔적이 보인다. 주인공의 투쟁 과정도 흥미롭지만 700년 뒤 지구전체가 하나의 평화국가로 통일된 '인류형제애시대' 역사가의 시선으로 20세기 노동탄압사를 '해설'한 각주들이 더 명물이다. 그 중 하나.
"파업파괴자들은 이름만 다르지 자본가들의 사병조직이었다. 철저하게 조직되고 훌륭하게 무장된 채 대기상태로 있다가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거나 고용주들에 의해 회사밖으로 축출된 곳에는 전국 어디든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 해괴한 시대에는 파알리라는 용병대장이 250명의 완전무장한 부대를 이끌고 특별열차편으로 전국을 휩쓸기도 했다"는 주석은 기업화된 전문 사설군사조직이 비무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투입된 정황을 설명한다. 웃기는 것은 '그런 행동은 그 나라 국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처사'라고 지적하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 자체가 사법부나 정부가 부호재벌계급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해설'하고 있는 점이다.
유혈진압 전문회사 등장한 한국
서기 2700년 인류형제애시대 사람이 아닌 우리 눈으로 보더라도, 2012년 한국의 안산에서 부분파업중인 SJM사 노조의 농성현장에 컨텍터스란 이름의 경비보안업체가 200여명을 투입해 곤봉을 휘두르고 쇳덩이 자동차 부품을 150명의 노조원들에게 던져 폭력진압한 사건은 '강철군화'의 가슴 떨리는 회귀가 아닐 수 없다.
부분파업 노동자들을 향해 무리한 직장폐쇄와 폭력적 용병부대 투입으로 맞선 회사측, 민간군사조직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서 특수차량과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파업파괴에 '출장 서비스'를 나가는 용역부대, 무차별 폭행에 대한 노조의 신고를 받고도 늑장을 부리며 움직이지 않은 경찰, 몽둥이와 쇳덩이에 맞아 치아와 두개골이 함몰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노동자들…
도대체 한국사회가 민주국가 맞긴 맞는 것인가. "경찰 공권력의 골칫거리를 대신 처리해주고 '노동조합의 마수'를 막아 기업이 안심하고 노사협상을 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이 회사가 현 정권들어 국내 최대 경비용역사로 급성장했다는 야당의원(추미애)의 지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살상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KKK단이나 기업형 조폭이 아니냐는 우려는 100년전 잭 런던의 소설장면들과 일치 한다.
게다가 이 회사는 파업현장 대체인력파견까지 맡고 있어 쟁의 사업장에 대체인력을 투입하지 못하게 하는 노조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폭력막는 것도 '민생'보호 첫걸음
소설에서도 '강철군화'에 대항해서 봉기한 가상의 '시카고 코뮌'이 처절한 학살극으로 끝난 다음 남루한 밑바닥 노동자들이 가득찬 열차들이 시카고를 향한다. 없어진 노동자들을 대신할, "시카고 재건을 위해 징발된 노예들"이다.
양극화와 실업사태, 가계부채에 짓눌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잠시 잊고 폭염과 싸우며 올림픽 중계방송에나 빠져있는 우리에게 강철군화의 용병부대와 딱 들어맞는 민간용역사의 등장은 등골이 오싹하는 악몽의 시작일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 되찾은 민주주의이고 어떻게 해서 얻은 권리인데, 현행법을 다 동원하고 모자라면 입법을 해서라도 '파시즘의 전조'(잭 런던)로 해석되는 무장폭력의 서비스업이 설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산업화과정에서 희생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예의이고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부르짖는 '민생'의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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