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하는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대세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생활고, 취업난, 조기은퇴 등으로 위로 받아야 하는 영혼이 많아진 탓이리라. 그런데 이 치유를 2005년부터 7년째 독서와 접목하여 꾸준히 운영해온 우리 이웃이 있다. 양천도서관 사서로 활동하면서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 봉사에 기여하고 있는 주상수(47) 사서를 만나보았다.
독서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독서치료의 시작은 표현에서부터입니다. 말로 표현이 힘든 이들에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돕는 일련의 활동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이끄는 독서치료도 책 속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포터가 주상수 사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 양천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여행’ 프로그램에서였다. 대여한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프로그램은 당일부터 모집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리포터가 들른 오전 11시 경에 이미 마감이 끝났다는 것이다. 독서토론이나 동네 나들이 프로그램 정도를 생각하고 호기심에 문의만 하려던 것이었는데 마감이라니. 완판상품은 더 구입하고 싶은 아줌마 정신이 발동하여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 주상수 사서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이다.
독서여행 프로그램은 독서토론도 책 속 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문화여행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추천 도서 속 인물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 갖게 된 원가족과의 고민을 나누는 마음치유의 과정이었다. 나아가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이들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법을 익히고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힐링 프로그램이다.
사추기에 찾아온 마음의 갈등을 내려놓다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한 주상수 사서는 본인 역시 마음의 갈등을 경험한 기억이 있기에 ‘독서치료’ 과정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마흔 즈음, 흔히 사추기라고 하는 시기에 뭔가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사서로서 정체성을 갖고 싶었고, 인간으로서 나를 찾고 싶었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그때 발견한 것이 ‘독서치료’였고 저에게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대학 시절 꿈은 도서관 사서가 아닌 언론사 기자였다고 한다. 첫 꿈을 포기하지 못한 탓에 사회 첫발을 내디딘 경남 삼천포공공도서관을 사직한 후 5년간 백수생활을 했는데 그 시간동안 마음고생이 컸었다고. 결국 자립을 위해 서울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다시 일을 하게 되었고, 한계 시점에 얻은 사서라는 직업을 새로이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며 지내기는 했지만 크고 작은 욕심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짐 모두를 내려놓지는 못했었단다. 하지만 독서치료 덕분에 회원들과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면서 사추기에 찾아온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도서관 중심의 치유공동체를 시작하다
주상수 사서는 이웃과 함께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를 나누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다친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여행’은 주상수 사서가 2005년에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7~8명의 지역주민을 모시고 독서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체험해 보니 무척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런 과정이 단발적으로 소규모로 운영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도서관에서 함께 운영하여 보다 많은 분들이 독서치료의 혜택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연합운영 독서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참여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현재는 1년에 2회 운영하는 상설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 어느새 ‘제11회 연합운영 독서여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 양천도서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여행’은 타지역 도서관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15명의 사서로 구성된 ‘연합운영 프로그램 개발 분과위원회’에서 1년에 2회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시한다. 2012년 상반기 ‘제10회 연합운영 독서여행’의 경우 22개 기관 38개 팀을 운영하였다.
행복한 독서치료사
“제 개인적인 치유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독서치료 프로그램 참가자들 역시 지금도 치유가 진행되고 있지 않을까요? 출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엄마 뱃속에서부터 태어나 자라고 살아오는 동안 실타래 같은 많은 관계 속에서 주고받은 상처들이 독서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금방 치유가 된다면 독서치료야말로 마법이지요. 독서동아리 같은 후속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서 나와 가족, 이웃의 감정과 느낌, 욕구들을 건강하게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삶 속에 숨겨진 행복을 맛볼 수 있을 듯합니다.”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여행’은 1년에 2회 강좌를 개설하는데 강좌 수료 후에는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함께 독서동아리를 조직하여 후속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회원들과 ‘강독서치료연구회’라는 지역연합독서동아리를 만들어서 함께 독서치료프로그램 개발, 자가치유서 토론, 후배 동아리회원 모임 진행, 지역사회의 어린이, 청소년, 성인, 소외계층 등을 찾아가는 독서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나 동아리 회원들은 자신의 치유체험을 다른 분들에게 봉사하는 활동을 통해 치유를 더욱 많이 경험합니다. ‘치유적 책읽기’를 하면서 관계 속에서 주고받은 상처들을 공감하고 격려하며 치유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 나갈 때 내 마음, 내 생활, 내 삶이 비로소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변화하리라고 믿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양천도서관에서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여행’ 야간 강좌를 운영하고, 수료생들의 후속모임으로 야간 독서동아리를 신설할 계획이란다. 독서동아리 회원 한마당 잔치, 초청 강연, 동아리 회원 재교육 같은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도서관이 중심이 되는 지역사회 독서 네트워크 구축이 목표라는 주상수 사서. 그녀는 현재 뜻을 함께하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독서치료사로 성장 중인 지금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석주혜 리포터 vietnam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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