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에만 올인했던 우리 교육이 점차 ‘진로’의 중요성에 눈 돌리고 있다. 얼마 전 열린 2012서울진로직업박람회장은 몰려드는 중고생들로 행사가 열린 4일 내내 북적였다. 대학생 멘토와의 만남, 여러 가지 직업 체험을 통해 각자의 진로 로드맵을 그리기 위해서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내실 있는 진로교육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올해 직업체험 중점학교로 선정된 송파구 잠실중학교의 색다른 진로 교육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중고교에 진로 전담 교사가 배치되는 등 공교육 현장에서 진로 교육의 중요성에 눈뜨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적성검사, 직업흥미도검사, 장래 희망 관련 보고서 쓰기에 국한되어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학교-지역사회 힘 모아 직업체험 교육 진행
올해 직업 체험 중점학교로 선정된 잠실중학교. 중2 학생을 대상으로 7월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차별화된 진로 체험 활동을 선보였다. 프로그램은 자기 탐색, 직업체험, 본인의 진로설계 등 3단계로 구성되었다.
“집, 학교만 오가는 학생들이라 다양한 직업을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때문에 이번 진로체험은 아이들이 일터에 직접 나가 현장을 눈으로 보고 일도 해볼 수 있도록 진행했습니다.” 교육을 총괄한 박정규 잠실중 교사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지역 기관과의 협조 체계는 필수.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180시간 전문 교육을 받은 직업체험강사 15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또한 지역 시민연대에서 수개월 전부터 송파, 강동구 일대 관광서와 개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직업 체험을 위한 일터 발굴에 나섰다.
이에 앞서 3월부터 진로상담교사가 정규 교과 시간에 진로수업을 진행하고 희망 학생의 1:1 진로 상담도 수시로 실시했다. “상담 신청 건수는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사춘기가 빨리 온 탓에 여학생들의 자기 탐색이 빠른 편입니다. 반면 남학생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와 안정적인 직업을 권하는 부모님 사이에 갈등을 겪는 사례가 여학생에 비해 많습니다.” 이창숙 진로상담교사의 설명이다.
진로 , 직업 정보에 어두운 학생들
잠실중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희망직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인과 아나운서?기자 등 방송인을 희망하는 학생이 가장 많았고 의사, 건축가, 패션디자이너, 운동선수, 교사 순으로 나타났다. 부모 세대가 선호하는 ‘고용이 안정적인 직업군’과 드라마 등 미디어 영향을 받은 ‘트렌드에 민감한 직업군’ 편중 현상이 엿보였다.
현장체험 전날 진행된 자기 탐색 시간.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 직업체험강사가 각 반마다 들어가 개인별로 나눠준 홀랜드 직업흥미도검사 결과지 해석 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의욕적인 학생은 본인의 검사 결과에 대해 궁금한 점을 추가 질문을 하는 등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라고 정기은 강사가 수업 분위기를 전한다.
동물병원, 카페, 백화점 등 63곳 일터로 출근한 학생들
둘째 날 진행된 일터 체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동물병원, 한의원, 지역케이블방송국, 소방서, 구의회, 변호사 사무실, 은행, 미용학원, 카페, 백화점, 어린이집 등 총 63곳의 현장으로 학생들이 팀을 짜서 방문했다.
송파동에 위치한 대형동물병원. 5명의 학생들이 의료 가운을 입은 뒤 수의사의 안내에 따라 수술실, 진료실, 입원실을 둘러보았다. 강아지 외과 수술을 위한 체혈, 검사 과정 등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동물 치료 과정, 애견 미용 등 동물병원에서 다루는 전반적인 내용을 골고루 보여주었습니다. 의료진과 학생이 1:1 짝을 지어 궁금한 사항은 상시 질문할 수 있도록 해 직업 체험의 밀도를 높이려 애썼습니다.” 윤성진 이리온 동물병원 원장의 설명이다.
“그동안 수의사란 직업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현장에 나오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수의학과에 진학하며 90% 이상 원서로 공부하기 때문에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소연양이 소감을 밝힌다. “강아지가 아프면 동물병원에 맡기기만 했지 내부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는 몰랐어요. 수술실, 입원실 등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다는 사실이 새롭습니다.” 이준호군이 현장에서 느낀 점을 들려준다.
미용에 관심 많은 학생들은 직업전문학교로 체험을 나가 전문 강사에게 머리 손질법과 메이크업 노하우를 직접 배웠다. “미용에 막연하게 관심이 있었는데 직접 실습해 볼 수 있어 유용했어요.”라며 신지수양이 만족감을 나타낸다. “기능올림픽대회 등 미용 관련 생소한 부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니 학생들의 호응이 높았습니다.” 이상억 국제미용예술전문학교 교장의 설명이다.
일터 개방한 사업장 적극적으로 체험 진행
잠실중학생들에게 일터를 개방한 63곳의 공공기관과 개인사업장은 기대 이상으로 호의적이었고 일부 일터는 자체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적극적인 분위기였다. “목공예 체험장에서는 디자인 도면 보는 법, 나무 종류와 특징을 설명해주고 학생들이 직접 필통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한방병원에서는 학생들이 물리치료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요. 사업장마다 직접 체험 멘토로서 지역 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호의가 읽혀졌습니다.” 학생들을 인솔한 정 강사가 현장의 분위기를 들려준다. 마지막 날은 일터 체험 내용과 느낀 소감을 보고서로 정리하며 3일에 걸친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다양한 체험일터 발굴이 풀어야 할 숙제
올해 잠실중에서 처음 도입한 직업체험은 교실이 아닌 현장에서 실무를 해보며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반면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한 ‘다양한 일터 발굴’이 개선 과제로 지적되었다. “외교관을 지망했는데 동물병원에 배치하는 등 마땅한 체험처를 찾지 못해 임의 배정한 사례가 절반 정도나 됐어요. 자신의 희망 진로와 연관이 없는 일터로 체험을 나간 학생 가운데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 교사가 어려움을 토로한다. “당초 100곳의 일터 발굴을 목표로 잡았는데 여의치 않아 63곳에서만 진행했습니다. 막판까지 체험처가 결정되지 않아 학생들 배치에 애를 먹었습니다. 양질의 직업체험 교육을 위해 참여한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지자체의 지원과 교육청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3일간의 체험 프로그램을 끝마친 박 교사의 제언이다.
이제 막 첫발을 뗀 현장 중심의 청소년 진로교육. 아직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많지만 학생들의 호응은 높았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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