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가 바라본 세상>

5년간의 학부모 시험 감독을 돌아보며

지역내일 2012-07-23

7월초,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 학교의 기말고사 학부모 시험 감독을 다녀왔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해마다 빠짐없이 한두 차례 시험 감독을 했으니 벌써 5년차 감독이다. 해마다 하다보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을 것 같지만 시험 감독일의 두세 시간 동안의 느낌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달라지는 아이들의 긴장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을 지켜보며 조금씩이나마 성숙해가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학부모 감독 대기실
시험시작 30분전 당일 시험 감독을 맡은 학부모들이 서서히 대기실로 모여든다. 시험 4일차여서인지 엄마들의 모습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시험 감독을 하는 엄마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를 두고 먼저 잠드는 엄마는 드물다. 아이가 공부 마칠 때까지 그냥 조용히 있어주기, 부담 없는 식사와 간식 만들어 주며 격려의 말 건네기, 졸거나 잠든 아이 깨워주기, 심지어는 문제집 채점이나 학습자료 정리 등 학습 도우미 역할까지 시험기간에 해야 하는 엄마들의 역할은 머리만 덜 쓸 뿐 공부하는 아이 못지않게 많다.
피곤함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 시험에 함께 긴장한 탓인지 대기실엔 선뜻 먼저 말을 건네는 엄마가 없다. 한 반에 감독이 한 명씩이다 보니 친분 있는 엄마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2년 전 중학교의 감독 대기실에서는 미리 준비된 간단한 다과를 나누며 초면이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고등학교 대기실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간단한 차가 준비되어 있지만 그마저도 외면하는 엄마들이 많다. 용기를 내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엄마에게 “몇 반이세요?”, “이번 수학시험 어떻대요?” 정도로 가볍게 먼저 말을 걸어본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 엄마의 말꼬가 트인다. 긴장을 풀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 시험 시작 전 
시험 10분전 예비종이 울리고 교실로 향한다. 교실에는 감독교사가 벌써 입실해 이것저것 점검하고 있다. 조용히 들어가 교실 뒤쪽에 자리 잡는다. 교실 맨 뒤 가운데에 학부모 감독을 위한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지만 선뜻 자리에 앉지 못한다. 시험시간 내내 앞에 서서 감독하시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마주보며 가운데 떡 하니 앉아 있는 것이 왠지 감독관 위의 감독관 같아 바늘방석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자리에 앉기를 권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는 없다. ‘50분 내내 거의 부동자세로 서서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픈 것보다는 바늘방석이 낫지’하는 생각으로 감사히 앉는다. 사실 중학교 때까지는 거의 2~3시간을 서서 감독했는데, 움직이면 시험 보는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었다.
학생들의 좌석배치는 두 개 학년을 섞어 한 줄씩 번갈아 앉는 형태여서 시험 도중 옆을 보더라도 선배나 후배가 앉아 있을 뿐이다. 예전에 비해 학생 수가 적어 좌석이 띄엄띄엄 있어 커닝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조금이라도 비뚤어진 책상은 시험 직전에 바로 잡으라는 감독교사의 지적을 받는다. 어떤 학교는 책상 속의 교과서나 자료를 보고 싶은 충동을 없애기 위해 책상을 180도 돌려놓기도 한다니, 보지 않아도 삼엄한 시험 분위기가 전달된다.

# 시험 중
앞에는 선생님, 뒤에는 학부모의 감독을 받으며 시험에 몰입하는 학생들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1980년대 중·고등학교의 시험 교실은 선생님이 다른 곳을 보는 사이에 간혹 쪽지를 주고받는 학생도 있었고, 옆이나 앞자리의 답지를 커닝하는 학생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고교 교실에서 커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 시험시간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국어, 영어의 경우 엄청난 지문 길이로 속도와 싸워야 한다. 시험지만 10쪽이 넘기도 하니 50분이라는 시간 내에 다 풀어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수학시험 시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 한 번 들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최상위권이 겨우 다 풀 수 있을 만한 난이도와 문제의 양으로 출제하다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몇 문제씩 손도 못 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등학교 시험은 대학입시에 바로 반영되므로 교실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긴장감이 중학교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내 아이의 학교는 2개 학년이 자율고 학생이 되다 보니 시험 분위기는 더 엄숙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포기하고 잠을 청하는 학생이 띄엄띄엄 있었는데 올해는 엎드린 학생이 없다. 지나친 긴장으로 OMR 카드 마킹을 수차례 잘못하는 학생, 1~2분을 남기고 떨리는 손으로 OMR 카드를 한 칸 한 칸 채우는 학생, 서술형 문제는 한 자라도 더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학생. 교실 맨 뒤에서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자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문득 칠판 위에 걸린 급훈이 눈에 들어온다. 급훈은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에게 ‘105%’를 하라고, ‘대학만이 살길’이라고, ‘오늘 땀 흘린 자가 내일 웃는다’고 말하고 있다.

# 시험이 끝나고
학부모 시험 감독은 학교와 학부모간의 소통, 성적평가 과정의 공개, 학생들의 시험태도 변화, 교사들의 시험감독 부담 완화 등 교육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부모 감독을 경험함으로써 엄마들이 얻는 가장 큰 효과는 ‘아이들에 대한 이해’이다. 1년에 한두 번 시험 감독을 경험하면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공부를 열심히 했든 미흡했든 그 순간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험 감독 학부모 중에는 2~3시간을 꼼짝없이 서 있어서, 혹은 앉아 있어서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1년이면 20여일을 극도의 긴장 속에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노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 시험감독 경험이 없는 학부모라면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한 번쯤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험보고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 시험은 잘 봤니?”라고 물었던 질문이 “시험 보느라 고생 많았어”라는 격려의 말로 바뀔 것이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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