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추어탕을 먹는데 그냥 먹기에는 너무 짰다. 음식을 가져다 준 종업원에게 간을 하지 않은 국물을 좀 달라고 하려고 불렀다. 종업원에게 “탕이 너무 짠데……” 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아가씨가 “제가 안 했어요.” 하고 답을 했다. 주방에서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묻더니 국물을 가져다 줬다. 간을 맞춰 맛있게 먹고 왔지만 지금도 그 종업원의 말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고 지구 여러 곳에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피해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우리 지역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던 기후변화의 현상들을 몇 년 전부터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당의 종업원처럼 ‘내가 안 했어요.’라고 한다.
과연 우리 모두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증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급격한 온실가스의 증가는 화석연료 사용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사용은 우리를 편리한 생활로 이끌었다. 운송수단의 발달, 주거생활의 변화, 통신수단의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소비하는 생활로 안내했다. 또 기계화 자동화된 산업은 우리의 식생활도 바꿔 놓았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인스턴트식품들은 전 세계로 배송되어 사람들의 입맛을 획일화시켰고 육류 섭취를 증가시키고 있다.
작은 차보다는 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멋져 보이고 차를 바꿀 때는 지금 타는 차보다 큰 차로 바꾸거나 외제차로 바꾸고 싶어 한다. 주거 공간도 가족의 생활상에 맞춰 결정하기보다는 무조건 큰 아파트에 살기를 꿈꾼다. 또한 해마다 유행에 따라 옷을 새로 사 입고 유행에 맞춰 살지 않는 사람은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식생활은 또 어떤가. 바쁜 생활을 핑계로 간편한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외국에서 수입되어 온 과일을 즐겨 먹는다. 그러면서 지구온난화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우리들은 말하고 있다.
모악산에 올랐다가 담배를 피우는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했다가 오히려 혼이 났다. 그 어르신 곁에는 일곱 살 정도의 아이가 있었다. 손자인 듯했다. 그 아이가 어르신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산불 나니까 그러지요? 할아버지, 산불 나니까 그러는 거예요.”
아이가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그 어르신은 산에서 내 맘대로 담배 피우는 걸 왜 뭐라고 하느냐고 하며 담배를 끄지 않았다. 어린이들도 알고 있는 것을 어른들은 왜 모르는 걸까? 자신의 편안함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처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 나만 편하면 된다는 삶의 방식이 우리의 지구환경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지구환경의 변화는 다시 우리에게 재앙이 되어 경고하는데도 우리는 언제까지 ‘내가 안 했어요.’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가 희망을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환경교육도 에너지절약도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안 했어요.’가 아닌 ‘내가 했어요.’ 하는 마음으로 친환경적 삶을 살아간다면 내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모두가 되어서 아름다운 지구환경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문필가 샤토브리앙(Chateraubriand)의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라는 부끄러운 말 뒤에 ‘사막이 다시 숲이 되었다’라는 말을 우리 세대에서 이어주기를 바란다.
전라북도자연환경연수원 환경교육강사 유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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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고 지구 여러 곳에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피해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우리 지역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던 기후변화의 현상들을 몇 년 전부터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당의 종업원처럼 ‘내가 안 했어요.’라고 한다.
과연 우리 모두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증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급격한 온실가스의 증가는 화석연료 사용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사용은 우리를 편리한 생활로 이끌었다. 운송수단의 발달, 주거생활의 변화, 통신수단의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소비하는 생활로 안내했다. 또 기계화 자동화된 산업은 우리의 식생활도 바꿔 놓았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인스턴트식품들은 전 세계로 배송되어 사람들의 입맛을 획일화시켰고 육류 섭취를 증가시키고 있다.
작은 차보다는 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멋져 보이고 차를 바꿀 때는 지금 타는 차보다 큰 차로 바꾸거나 외제차로 바꾸고 싶어 한다. 주거 공간도 가족의 생활상에 맞춰 결정하기보다는 무조건 큰 아파트에 살기를 꿈꾼다. 또한 해마다 유행에 따라 옷을 새로 사 입고 유행에 맞춰 살지 않는 사람은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식생활은 또 어떤가. 바쁜 생활을 핑계로 간편한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외국에서 수입되어 온 과일을 즐겨 먹는다. 그러면서 지구온난화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우리들은 말하고 있다.
모악산에 올랐다가 담배를 피우는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했다가 오히려 혼이 났다. 그 어르신 곁에는 일곱 살 정도의 아이가 있었다. 손자인 듯했다. 그 아이가 어르신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산불 나니까 그러지요? 할아버지, 산불 나니까 그러는 거예요.”
아이가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그 어르신은 산에서 내 맘대로 담배 피우는 걸 왜 뭐라고 하느냐고 하며 담배를 끄지 않았다. 어린이들도 알고 있는 것을 어른들은 왜 모르는 걸까? 자신의 편안함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처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 나만 편하면 된다는 삶의 방식이 우리의 지구환경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지구환경의 변화는 다시 우리에게 재앙이 되어 경고하는데도 우리는 언제까지 ‘내가 안 했어요.’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가 희망을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환경교육도 에너지절약도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안 했어요.’가 아닌 ‘내가 했어요.’ 하는 마음으로 친환경적 삶을 살아간다면 내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모두가 되어서 아름다운 지구환경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문필가 샤토브리앙(Chateraubriand)의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라는 부끄러운 말 뒤에 ‘사막이 다시 숲이 되었다’라는 말을 우리 세대에서 이어주기를 바란다.
전라북도자연환경연수원 환경교육강사 유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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