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한의원 칼럼

화병, 착한 사람들의 병

지역내일 2012-07-12
글 : 서연한의원 최상범 원장

주로 어깨가 결린다며 한의원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처음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것 같다고 말을 꺼내십니다. 하지만 증상을 이야기하다보면, 어깨가 결린다. 머리가 무겁다. 눈이 뻑뻑하다. 입이 마른다. 목에 뭔가 걸린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된다. 하면서 증상이 뒷목에서 시작해 머리 가슴을 거쳐 복부까지 이어집니다. 제가 “누가 괴롭히는 사람 있습니까?” 하면 그제야 여러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이는 한의학에서 진단되는 전형적인 ‘간기울결’ 증상입니다. 쉽게 말해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입니다. 대개 이런 증상을 갖고 계신 분들은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화나고 분한일이 있어도 표현하기 보다는 참고 속으로 삭입니다. 

간기울결이라는 것은 간의 기운이 울체되고 맺혀서 병이 되는 것인데, 간의 기운은 오행 중 목에 배속되어 뻗치고 흩어지는 기운입니다. 이것이 스트레스, 울화, 걱정, 고민 등으로 맺히고 뭉치면 병이 됩니다. 착한 마음을 강요받은 봉건시대 며느리들의 한스러운 병이라서, 동의보감 부인문에는 많은 사례와 처방이 있습니다.

여전히 고부간의 갈등은 존재하지만, 이외에도 사회나 직장에서 겪는 각종 인간관계, 금전적 고민 등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강요된 착한 마음보다는 천성이 착하고, 반듯하고 모범적인 성향을 갖고 있거나 배려심이 많은 사람들은 화병에 걸리기 더 쉽습니다.

서양의학에서는 최근에야 화병을 정의하고 있지만, 동양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기운이 뭉쳐 생기는 질병에 대하여 정의하고 치료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쌓이다 보면 어느 날 덩어리가 되어 있듯이 보이지 않는 기도 막히고 맺히면 신체의 기질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쌓인 먼지 덩어리야 닦아내면 그만이지만 몸에 쌓인 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억눌리고 몸이 막히던 악순환을 몸이 순환되고 마음이 해소되는 선순환으로 바꾸는 것이 한의학적 치료입니다. 일단 몸과 마음의 선순환으로 들어서게 되면 회복에 가속이 붙고 치료가 쉬워집니다.

질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방입니다. 특히 ''착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은 평소에 너무 참거나 감정을 가슴에 묻어 두지 말고, 가끔은 화도 내고 소리 내어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친한 사람에게라도 한번쯤은 억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단, 원래 외향적으로 자기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거나 화를 잘 내는 분들은 반대로 자꾸 참아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화병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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