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고 즐기는 문학시대 열렸으면 좋겠어요
클릭 한번으로 원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에서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며 느리게 읽어야 하는 시는 속도전쟁에 패배한 것처럼 보인다. 문자메세지로 SNS로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소통하면서 정보를 주고받기에 바쁜 청소년들에게 시는 까다로운 입시공부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시를 읽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흐름과는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학생이 있다. ‘낙생고 시인’이라 불린다는 류시영 학생이다. 전국적으로 내로라 백일장 대회에 출전했다하면 대상을 거머쥐면서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시 쓰는 낭만 청소년 류시영 군을 만났다.
어사박문수 백일장 대회 대상수상 상금 500만원 받아
류 군은 ‘가을 하늘’이라는 시로 우리나라 문예부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어사박문수 백일장 대회에서 대상인 경기도지사상을 수상 부상으로 5백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사진을 찍다’라는 작품으로 새얼전국학생어머니 백일장 대회 1등, ‘애국가’로 세종날 글짓기 대회에서 1등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도 받았다.
“어려서부터 시 읽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시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기를 즐겼고, 멋진 표현들을 만나면 메모하고 모방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편 두 편 쓰기 시작한 시가 수 십편이나 된답니다. 저는 시 쓰기가 좋은데 그냥 끄적거리는 수준인지 아니면 정말 재능이 있는 것인지 검증받아 보고 싶은 마음에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게 됐어요.”
재능은 타고나는 면도 있지만 어떤 계기로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측면이 더 강하다. 류 군의 경우 시인이던 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시인이신 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늘 시를 가까이했던 것 같아요. 큰 아버지가 쓰신 시라서 더 의미있게 느꼈을까요? 똑같은 사물을 어떻게 저렇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고 감탄했어요. 자연스럽게 시를 화두로 큰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시의 맛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큰 아버지의 가르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좋은 시 읽으며 표현기법 연구 내 것으로 만들어
‘부신 달을 보려고 손을 들었는데/손톱에도 열 개의 달이 그믐처럼 돋아있어/손꼽아 세어보던 유년이 떠올랐다.’ 류 군의 고1때 작품인 ‘낮달’의 일부분이다. 이 대목이 큰 아버지가 크게 칭찬하신 부분이라고.
“부신 달을 손톱의 반달에 빗댄 표현이 절묘하다면서 무척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재능은 그렇게 길러지는 것 같아요. 좋아하고 즐기는 어떤 것에 마음껏 빠질 수 있는 여유와 잘하는 것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칭찬의 힘 같은 것으로요.”
시인 고은이 심사해 대상을 안겨줬다는 어사박문수 백일장 대상 작품 ‘가을하늘’을 함께 읽어보았다. 여섯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시 어디에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표현이 숨어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추녀가 낚은 풍경이/가을하늘을 물고 있다/ 바람은 저 하늘의 우점종/새들은 무성한 바람을 딛고 군락을 이루어 피고 진다’...후략.
“놓치기 싫은 표현이나 어휘들을 메모장에 적는 습관이 있어요. 이런 표현들은 마음속에 새기고 적용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보기도 하죠. 이 시는 가을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 낸 회화성이 강한 시인데, 여기서 백미는 ‘우점종’이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이 말은 언젠가 큰 아버지의 시 속에서 만난 어휘인데 만나는 순간 제 것으로 만들었어요. 어사박문수 백일장 대회에서 ‘가을’이라는 시제가 주어졌고 바람으로 가득 찬 가을하늘을 표현하려는 문득 떠오른 표현입니다.”
흘려버리지 않고 내 것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직관력이 생기고 독창적인 표현력이 만들어진다. 백일장은 대부분 시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요구하는 주제와 기준에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 류 군의 설명이다.
“시제가 주어지고 시간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시제를 받아드는 순간 어떻게 그려나갈지 밑그림을 그려야 해요. 때론 정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한참동안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끝까지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기도 해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표현 즐겨
자주 쓰는 표현기법 있는지 물었다. 대표적인 두 가지를 들자면 ‘자각’과 ‘연상’기법이라고 류 군은 말한다. 현재 존재하는 사물이나 대상을 감각에 의존해 표현하는 것을 자각이라 하고 하나의 대상이나 관념에 대해 꼬리물기식으로 생각을 넓혀가는 것이 연상기법이란다.
“언어예술의 꽃이라 불리는 시는 어떤 글보다 직관적이면서 상상력에 의존하지만 반면 시어는 고도의 함축성이 있는 만큼 철저하게 계산된 논리성도 갖추고 있어요. 다양한 시의 이론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의 눈은 달라야 합니다. 사물을 남들과 다르게 보고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의 생명이니까요.”
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법들은 시를 어렵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류 군은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 시의 기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은 쉽게 읽히지만 곧 잊혀지게 되고 감각적 구체적 실체는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류 군 작품 경향은 사물이나 상황을 추상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관념화 하도록 유도한다. 세종날 글짓대 대회 대상 작품 ‘애국가’가 그렇다.
“애국가라는 시제가 주어졌는데 이는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소지가 강한 소재에요. 저는 애국가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자는 그림을 그렸죠. 관념을 제거하고 보여주는 시를 쓰려는 취지였어요.”
시인과 독자 연결해주는 문학평론가 되고 싶어
시가 대중과 많이 멀어진 것이 류 군은 무엇보다 안타깝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시를 읽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 류 군의 꿈이다. 시인의 언어를 독자들에게 풀어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문학평론가가 되려는 것도 그 때문.
“시가 대중과 많이 멀어진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로 시를 읽어야 하는 것 말고는, 시를 읽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시를 읽을 시간에 주식동향을 살피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는 일상적인 언어와는 다르게 인간의 마음을 순화하고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도에 정보의 양에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느리게 살기’를 흐름도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시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읽고 천천히 음미하며 노래하는 문학의 시대가 열렸으면 하는 것이 시 쓰는 청소년 류 군의 간절한 소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도 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류 군은 말했다.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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