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맨 알코올중독자

지역내일 2012-07-06

알코올중독자라면 으레 집도 돈도 없이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수염이 길게 자란 지저분한 외모의 타락한 밑바닥 인생의 사람들을 연상한다. 그렇지만 번듯한 직장에 경제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고,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 외모 또한 반듯하게 양복입고 넥타이 맨 알코올중독자들도 많다. 누가 보아도 잘 나가는 것 같지만, 술과 관련해서만큼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 공무원, 의사, 공기업 직원 같은 안정적 직장인들 중에 흔하다.


그들은 과음했다고 해서 지각을 하거나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책임감이 강하여 과음한 다음날에도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여 부지런히 영리하게 일 처리하여 성과를 낸다. 당연히 동료나 윗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신망이 높다. 친구들 사이에서 유머도 잘 하고 인심도 좋아 인기가 높다. 이런 모습은 확실히 그의 인생이 성공적인 듯이 보인다. 배우자나 함께 사는 식구들을 제외하면, 누가 보아도 슈퍼정상이다.


그런데도 정신과를 찾게 되는 것은 결국 과음에 따라 궁극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무언가 부정적인 결과 때문이다. 대개는 상상 밖의 엄청난 사건에 부닥친 후인 수가 대부분이다. 중풍이 호전하자마자 이내 다시 과음한 후에 본격적인 반신불수를 겪고 나서야, 음주 운전으로 인한 인명 사고로 구속이 되고 공직 생활이 위태로워져서야, 마지못해 도움을 찾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이렇듯 과음의 대가로 겪는 고통과 난처함이 최악으로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음주 문제를 인정한다. 과음을 자주 하면서도, 그동안 일을 잘 해 해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음주 문제를 인정하기가 더 어렵다. 소위 기능적 알코올중독자이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마시고도 만취의 증상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타고난 체력이 강하다거나 의지력이 강해 술이 세다고 치켜세우지만, 사실 이는 오랜 과음으로 그만큼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는 뜻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문제는 증상이 드러나지 않고 겉보기에 모든 것이 완벽할수록 도움을 받아들이고 단주할 동기가 더 없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더 오랜 세월에 걸쳐 더 많은 알코올을 섭취한 셈이라, 신체 조직에 손상이 더 크다.


특히 뇌의 손상으로 인한 인지 장애 때문에 얼마간 술을 끊어도 자신과 자신의 현실을 섬세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단지 눈앞에 사안만으로 매사를 완고하게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도와주려는 사람들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쉽게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아직은 진정한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그런대로 기능을 잘 해온 넥타이 맨 알코올중독자들일수록 일반적으로 단주를 더 늦게 시작한다. 워낙 완강하여 회복의 과정에는 대립과 뻗댐이 더 많고, 굴곡이 더 심하다. 단주가 꽤 오래 되었으나 원만한 단주생활을 위한 변화가 미흡한 수가 흔하다. 그러는 동안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삶도 퍽 팍팍하고 고단한 수가 많다. 본인은 물론 가족도 꾸준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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