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글쓰는 재주를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IMF 경제위기가 당시 백혈병을 앓는 제자를 위해 모금함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선생님. 제자를 위해 시집을 출간하고, 그 수익금을 병원비로 썼던 한 선생님이 다시 어려운 이를 위해 시집을 내놓아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양천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김형태 교사.
김 교사는 최근 시집 <물빛 안경처럼="" 나는="" 너의="" 창이고="" 싶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의 표지에는 ‘시인의 뜻에 따라 이 시집의 수익금은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집니다.’라는 특이한 문구가 적혀 있다.
김 교사는 이번 시집의 수익금을 오 모양(오 양이 이름이 알려지는 것에 민감해 하기 때문에 실명을 밝히지 못함)을 위해 쓰기로 했다. 오 양은 한국통신에 근무하다 병명도 정확히 모르는 질병과 3년째 싸우고 있다.
김 교사가 시집을 낸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첫 번째 시집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해 출간했던 연시집 <사랑일기>였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은 40대에 고인이 된 선친을 생각하며 출간한 <아부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였다.
특히 두 번째 시집 <아부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의 출간 배경에는 백혈병과 싸우다 사망한 한 제자가 있다. 지난 97년 김 교사는 강대현 군을 처음 만났다. 당시 양천고 1학년 3반 담이던 김 교사는 1번인 강 군과 반 학생 중 맨 처음 면담을 했단다.
중학교 때 태권도 선수였던 강 군은 누구보다도 건강했다. 그런 강 군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은 3월말이었다. 병원으로 급히 옮겨진 강 군의 병명은 ‘급성 인파구성 백혈병’으로 판명됐다.
강 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혈액공급이었다. 김 교사는 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호소했고, 많은 학생들이 동참했다.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3∼4명의 학생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문제는 엄청난 병원비. 김 교사의 기억으로는 병원비만도 2억원이 훨씬 넘었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 군 가족은 생계수단이었던 식당을 처분했다. 또 전세 보증금을 빼고 친척집에 얹혀 살았지만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김 교사와 학생들이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교내에서 시작된 모금운동은 인근학교와 지역사회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모금만으로는 병원비를 충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김 교사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버지를 위해 출간하기 위해 준비해온 시집을 출간하기로 했다. 밤을 세워 원고를 정리하고, 학부형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만들었다. 시집이 나오자 한 대형 서점이 김 교사의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고 도움을 줬다. 또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김 교사가 다니는 교회가 나섰다. 특히 학생들은 책을 들고 가두 판매에까지 나섰다.
김 교사와 학생들의 정성 덕에 강 군은 골수 이식수술에 성공하고, 잠시나마 학교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98년 4월 강 군에게 찾아온 감기가 폐렴으로 번졌다. 이미 면역력이 약해질 데로 약해진 강 군은 주변의 사랑을 뒤로하고 그해 7월 31일 사망했다.
강 군의 죽음을 지켜보며 김 교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글씨는 재주를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김 교사는 “대학 3학년 때 뇌종양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나와 가족의 충격을 엄청났다”며 “내 작은 힘이 난치병과 싸우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락처 : 학교 (02)692-3217, 011-9069-2528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아부지라는>아부지라는>사랑일기>물빛>
IMF 경제위기가 당시 백혈병을 앓는 제자를 위해 모금함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선생님. 제자를 위해 시집을 출간하고, 그 수익금을 병원비로 썼던 한 선생님이 다시 어려운 이를 위해 시집을 내놓아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양천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김형태 교사.
김 교사는 최근 시집 <물빛 안경처럼="" 나는="" 너의="" 창이고="" 싶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의 표지에는 ‘시인의 뜻에 따라 이 시집의 수익금은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집니다.’라는 특이한 문구가 적혀 있다.
김 교사는 이번 시집의 수익금을 오 모양(오 양이 이름이 알려지는 것에 민감해 하기 때문에 실명을 밝히지 못함)을 위해 쓰기로 했다. 오 양은 한국통신에 근무하다 병명도 정확히 모르는 질병과 3년째 싸우고 있다.
김 교사가 시집을 낸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첫 번째 시집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해 출간했던 연시집 <사랑일기>였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은 40대에 고인이 된 선친을 생각하며 출간한 <아부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였다.
특히 두 번째 시집 <아부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의 출간 배경에는 백혈병과 싸우다 사망한 한 제자가 있다. 지난 97년 김 교사는 강대현 군을 처음 만났다. 당시 양천고 1학년 3반 담이던 김 교사는 1번인 강 군과 반 학생 중 맨 처음 면담을 했단다.
중학교 때 태권도 선수였던 강 군은 누구보다도 건강했다. 그런 강 군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은 3월말이었다. 병원으로 급히 옮겨진 강 군의 병명은 ‘급성 인파구성 백혈병’으로 판명됐다.
강 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혈액공급이었다. 김 교사는 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호소했고, 많은 학생들이 동참했다.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3∼4명의 학생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문제는 엄청난 병원비. 김 교사의 기억으로는 병원비만도 2억원이 훨씬 넘었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 군 가족은 생계수단이었던 식당을 처분했다. 또 전세 보증금을 빼고 친척집에 얹혀 살았지만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김 교사와 학생들이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교내에서 시작된 모금운동은 인근학교와 지역사회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모금만으로는 병원비를 충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김 교사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버지를 위해 출간하기 위해 준비해온 시집을 출간하기로 했다. 밤을 세워 원고를 정리하고, 학부형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만들었다. 시집이 나오자 한 대형 서점이 김 교사의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고 도움을 줬다. 또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김 교사가 다니는 교회가 나섰다. 특히 학생들은 책을 들고 가두 판매에까지 나섰다.
김 교사와 학생들의 정성 덕에 강 군은 골수 이식수술에 성공하고, 잠시나마 학교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98년 4월 강 군에게 찾아온 감기가 폐렴으로 번졌다. 이미 면역력이 약해질 데로 약해진 강 군은 주변의 사랑을 뒤로하고 그해 7월 31일 사망했다.
강 군의 죽음을 지켜보며 김 교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글씨는 재주를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김 교사는 “대학 3학년 때 뇌종양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나와 가족의 충격을 엄청났다”며 “내 작은 힘이 난치병과 싸우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락처 : 학교 (02)692-3217, 011-9069-2528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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