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물상의 덧없는 죽음

“대책없는 철거, 죽음 불렀다”

지역내일 2002-01-16
정부의 대책없는 철거정책이 한 생명을 앗아갔다.
지난 14일 새벽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경로당 앞에서 동대문자활근로대원 김용만(45)씨가 죽은 채 발견됐다.
김씨가 속한 동대문자활근로대는 예전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만들어진 ‘재건대’의 후신이다. 세칭 ‘넝마주이’로 불리던 사람들을 집단 거주시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위험요소를 줄이자는 방편에서 출발한 것. 이들은 시유지나 국유지를 무상임대 받고 고물을 모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 이들에게 무상임대한 땅을 환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대문구 신설동 92-4번지에 거주하던 동대문자활근로대도 마찬가지였다. 2년 전부터 철거를 종용하던 동대문구청은 지난해 6월 11일, 강제철거를 단행했다. 이 곳에 주차장을 지어 구청 수입을 늘리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때까지 동대문자활근로대원으로 남아있던 사람은 30여명. 14일 죽은 김씨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동대문구청은 이들에게 이주비용으로 520만원을 제시했고 그나마 주소지를 이곳에 두지 않았던 10여명에게는 이 돈마저 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520만원을 들고 나가라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김씨를 비롯한 10여명은 강제철거를 끝까지 반대했고 철거 이후에는 천막을 치고 ‘고물 수집’을 계속했다.
지난 11일 동대문구청은 다시 철거를 강행해 그동안 이들이 모아둔 유일한 재산, ‘고물’마저 실어갔다. 김씨는 남은 겨우살이를 걱정하며 비관해오다 결국 14일 새벽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동대문자활근로대 서창석 위원장은 “정부가 노숙자를 위해서도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7년 전부터 잘 살고 있는 우리를 왜 거리로 내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동대문구청이 막무가내 철거를 고집한다면 남은 사람들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하소연했다.
이들에게는 동대문구청으로부터 두 차례 철거비용 7000만원과 불법하천사용범칙금 5000만원 등 1억2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상태다. 주머니에 단돈 만원도 없는 가난한 사람을 보살필 정부정책은 정말 없는 것인지 이들은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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