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고군분투기

아들, 도를 닦는 심정으로 키운다!

지역내일 2012-06-11

 아들 둔 엄마들의 모임은 아이들 성적 차이와 상관없이 오래 간다는 말이 있다. 엄마들 입장에서 보면 아들은 딸과는 달리 상하위권을 막론하고 ‘개념 없는 놈’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대는 아들과 투쟁하며, 교육 1번지 강남에서 대학 입시를 치러낸 엄마들과 치러야 할 엄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고등학생 아들 엄마들에게 먼저 도를 닦은 선배 엄마들이 위로와 격려를 담은 조언을 쏟아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들 자녀 구성
A. 대학교 2학년 아들, 고1 딸
B. 외국인학교 졸업생 아들, 10학년 딸
C. 대학원생, 대학생 딸 둘 & 미국 대학 1학년 아들
D. 대학교 1학년 딸, 고1 아들
E. 대학교 1학년 아들, 중3 딸
F. 대학교 3학년 딸, 고3 아들


화성에서 온 아들, 금성에서 온 엄마?

- 중2 아들을 키우는 올케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마음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한다고 하소연한다. 이미 도를 닦다 못해 득도의 경지에 오른 나로서는 그저 “엄마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라는 말 밖에 해줄 수가 없다.

- 고3인 아들이 엄마한테만 아직도 혀 짧은 소리를 해가며 느닷없이 뽀뽀를 할 정도로 애교가 9단이다. 키가 1미터80센티미터가 넘는 녀석이 그럴 때마다 징그럽다가도 예쁜 건 어쩔 수가 없다. 물론 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하면 엄마고 뭐고 한 대 치기라도 할 기세로 덤비지만.
아들 가방에서 처음으로 담배를 발견했을 때 지퍼백에 넣어 아무 말 없이 식탁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걸 본 아들의 반응은 정말 가관이었다. “엄마 걱정 마. 나는 질 나쁜 담배는 안 피울 테니까.”

- 딸은 혼내면 혼내는 대로 듣고 있는다. 그런데 아들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어도 조금만 잔소리가 길어지면 “알았다고,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라며 눈을 부라린다. 다 알아서 한다는 녀석이 30점짜리 수행평가 과제를 마감일 아침에야 알려줘 이성을 잃게 만든다. 방과 후에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운동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 쏟고 정작 학원 갈 시간에는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린다. 이런 한심한 일들이 일상이니 참고 또 참느라 명(命)이 단축되는 느낌이다. 존 그레이의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남편만 화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아들까지 화성에서 왔으니 금성에서 온 엄마가 어찌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 아들과 남편, 두 남자의 공통점은 바로 여자들이 왜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당연히 화를 풀어주는 방법도 모를 수밖에. 의사전달력도 떨어지고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들과 남편에게 내 감정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 세상에 그럴 남자는 ‘제비’밖에 없고 그마저도 그런 척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아들의 발목을 잡는 운동, 게임

- 아들이 초등학생 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다며 레벨을 올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해서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고 게임하는 아들을 이해하는 엄마가 됐다. 게임을 직접 해보니 밥하기가 싫어서 피자를 시켜 먹은 적도 있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그보다 몇 배의 중독성이 있을 테니 오죽하겠는가.
게임에 빠진 고교생 아들을 구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몸짱 만들기에 도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물 좋은 헬스장에 등록해 개인 트레이닝을 받게 하라.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가도 멈추지 못하는 게 게임이니 그 정도는 돼야 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 얼마 전 한 신문에 ‘수능 ‘3大 브레이커’가 남학생들 노린다’라는 기사가 났다. 유로2012와 런던 올림픽, 디아블로3이 수능을 앞둔 남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3대 악(惡)이라는 말이다. 남자 아이들은 원래 육체적인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앉아서 공부에만 매달려야 성적으로 인정받는 세상이니 억눌린 남성성을 게임 세계에서 때리고 죽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래저래 공부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불쌍하기도 하다. 

- 한창 공부에만 몰입해도 부족할 시기인 고1 아들이 야구, 축구에 빠져 지방으로 원정 관람을 하러 갈 정도이니 걱정스럽기만 하다. 지난 중간고사가 끝난 날 밤부터 주말까지 사흘간 운동경기를 보러 잠실로 인천으로 날아다니더니 결국 몸살이 났다. 게다가 수시로 게임도 병행해야 하니 근본적으로 공부에 전념할 수가 없는 구조다.

- 대입 수시가 확대되면서 내신, 수능, 스펙 등 아이들이 해내야 할 부분이 더 많아진 셈이다. 남자 아이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려도 내신이 발목을 잡아서 역전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대입 학력고사가 부활돼 그런 남학생들이 막판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들은 무사히 고교 졸업시키기도 쉽지 않아

- 지난달에 있었던 외국인학교 졸업식장에서 아들 엄마들끼리 “아들 고졸 만드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며 서로 껴안고 감격스러워했다. 학부모들 중에는 아들 둘을 둔 정신과 전문의 아버지도 있었다. “아들 키워서 대학까지 보내고 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엄마들이 많다.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미리 병원으로 찾아오라”는 그의 말에 주변 학부모들이 모두 공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날 밤에 남편과 함께 자축하는 의미에서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날 남편이 “당신은 지금까지 아들을 위해 멀티플레이어로 뛰었다. 바른 길로 인도하는 교관이자 운전기사, 학습 컨설턴트, 대입 지원 에세이 지도까지 정말 수고가 많았다”라며 등을 토닥였다. 그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남편에게 “그동안 당신도 돈 벌어오랴 아빠 노릇하랴 고생이 많았다”라고 한마디 했더니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내가 더 열심히 일할게”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들이나 남편이나 두 남자를 다루는 방식은 이렇게 의외로 단순하다. 적절한 칭찬과 격려만 잘 활용하면 된다.


제대로 밥벌이 할 만큼 키우는 게 미션

- 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최종 목표다. 군 입대 문제가 걸리지도 않으니 유학을 가든 도중에 진로를 변경하든 뭘 해도 훨씬 더 여유가 있다. 하지만 아들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밥벌이가 되는 일인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인지부터 따지게 돼 타협이 쉽지 않다.

- 아들은 나중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제대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만큼 키워야 한다는 게 미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소한 생활 문제 하나도 사회성으로까지 연계시켜 매사에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고도 부모로서 뭘 더 해줘야 하나 늘 고민이다. 그런 기대가 아들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 미국 대학 진학을 앞 둔 아들에게 “네가 떠나는 순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빼서 이사를 갈 작정이다. 누구를 만나서 결혼하든 나를 찾지 말고 우리 서로 가능한 멀리 떨어져서 살자”라 고 통보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에 이젠 정말 털어내고 싶다는 말이었는데 그런 의도를 이해나 했는지 의문이다. 아들은 엄마가 30여년 공들여 키워 놓으면 30분 만에 좋아하는 여자한테 ‘훅’ 갈 수 있다는데 어찌됐든 부모한테 더 이상 기대지 않고 제대로 살기만 바랄뿐이다.


밉지만 그래도 보듬고 가야할 아들

- 남편한테 아들 훈계를 부탁하면 엄마인 나보다 더 감정이 앞서서 결국 부자간 싸움으로 번진다. 그러다가 한번은 순간적으로 남편이 이성을 잃고 옆에 있던 나무 막대기를 휘둘렀고 아들이 피하다가 결국 몸에 상처가 났다. 분해서 씩씩거리는 아들을 데리고 나가서 같이 울었다. 남편도 우발적인 사고에 놀라 곧 후회를 했지만 아들은 지금도 그때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물론 그 사고를 유발하게 만든 자신의 잘못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 아빠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리 사춘기라지만 아들이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손한 말투나 태도를 보일 때 가장 화가 난다. 아들이 고3 때 뒤늦게 사춘기가 왔는지,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그랬는지 갑자기 심하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딸들은 그런 적이 없었는데 셋째인 아들이 엄마를 1년 내내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니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때 그동안 마냥 예뻐하기만 했던 아들한테 배신감을 느껴 어느 정도 정을 뗐다.
최근에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이 처음으로 술에 취해 새벽에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평소 말을 안 하니 아무 생각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군 생활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제야 고3 때 불손하게 굴었던 행동들도 스트레스를 표출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미처 헤아려주지 못하고 미워했던 게 미안했다.


아들과의 대화는 단문으로 짧고 명료하게

- 아들과 대화를 할 때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용건만 간단히, 3분 이내에 세 마디 말 이내로.’ 이 원칙은 남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원래 남자들은 조곤조곤 길게 말하면 짜증부터 내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단문으로 묻고 지시해야 한다.

- 아들에게 반어법이나 은유법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명시적이고 일관된 것만 직접적으로 요구해야 먹힌다. 

- 아들을 야단치고 나서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아들한테 아무 의미 없는 잔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은 나 자신이 싫어진다. ‘쿨’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아들은 확실히 딸에 비해 생활면에서 사소한 잔소리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 특히 아들한테는 엄마가 잔소리를 줄여야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 아무리 못 마땅해도 입을 다물고 ‘엄마는 너를 믿는다’라는 메시지가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바탕이 있어야 잘못된 길로 빠졌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 지켜야 할 규칙도 어차피 부모가 정한 것이기 때문에 아들 입장에서는 어겨도 잘못이 아니라고 여긴다. 아이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집안 규칙을 정해 “부모 밑에서 살려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아들의 경우 규칙은 최대한 적게 하고 적당히 풀어놓되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않도록 막는 울타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들의 인생을 바꿔줄 멘토를 찾아라!

- 아들은 11학년 때까지 공부에 큰 뜻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외삼촌과 속 깊은 얘기를 할 기회를 가진 후 12학년 때부터 마음을 잡았다. 그 외삼촌은 바로 고3 때 PC방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을 정도로 게임에 미쳤다가 지금은 촉망받는 박사가 돼 인생을 역전시킨 내 막내 동생이다. 자신의 생생한 사례를 들려주며 “20대에 놓친 부분을 메우려고 30대 때 2~3배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너만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란다”라고 당부한 게 제대로 먹힌 것이다. 아들에게는 이렇게 부모 외에 멘토가 돼 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 부모가 아들에게 의도적으로 멘토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쇠도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고 꼭 필요한 시점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 과외를 시킬 때에도 실력보다 아들과 말이 잘 통할 교사를 찾는데 중점을 두었다. 남학생들은 학원 강사의 인생관 등이 자신에게 와 닿으면 그 강사를 정신적인 멘토로 삼기도 한다.


개념 없는 아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 유학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들과 함께 미국 대학 지원 준비를 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다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됐다. 아들의 속 얘기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겉으로 보인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아들이 제도권 교육에 들어선 직후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심성은 착한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부지런해야 폭넓게 맺을 수 있는데 아들은 워낙 게을러서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공부는 버겁고, 엄마는 자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꼼짝도 못하게 잔소리를 해댔으니 내심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라면서 저절로 대인관계가 원만해져 내 아들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아들을 조급하게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 딸은 말로 표현하며 자신이 가진 것을 거의 다 보여주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없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마치 빙산처럼 수면 아래에 더 큰 것이 감춰져 있을 수 있으며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은 비록 부모가 기대하는 수준에 못 미치더라도 지켜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고 변할 때가 온다. 물론 그때까지는 아들이 옆길로 너무 새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한다.


아빠의 중재, 엄마의 선택과 집중이 중요

- 사춘기 아들과의 전쟁에서 남편의 중재가 큰 역할을 했다. 물론 남편도 다른 아빠들처럼 도저히 참지 못해 야구방망이를 든 적도 있다. 하지만 항상 나와 아들 사이를 오가며 험악한 집안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썼다. 특히 가급적이면 온 가족이 아침, 저녁 식사를 함께한 것이 아이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 비결이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항상 자신이 찾은 ‘오늘의 유머’를 들려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아이들이 우리 집 식탁은 ‘시트콤 식탁’이라고 할 정도였다.

- 아들이 느리고 게으른 편이라서 게임에 크게 빠지지도 않고 사춘기 갈등도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보니 한 번은 아빠와 심하게 부딪쳐 공부를 하던 교자상이 날아가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며 적절한 시기에 외국인학교로 전학을 시킨 것이 주효했다. 축구나 야구는 싫어하더니 크로스컨트리 팀에 가입해 학교생활을 안정적으로 해나갔다.

- 남자는 누군가를 돌봐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애완견을 키운 것이 아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큰 개를 두 마리나 키우면서 아들에게 산책과 훈련을 전담하도록 임무를 부여했다. 그동안 여동생에게 치이고 엄마한테 혼나느라 내심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아들이 개들을 산책시키고 훈련시키면서 위로를 받는 모습이 역력했다. 게다가 그 개들이 자신을 잘 따르니 집안에서의 위상도 높아진 셈이 됐다.


엄마의 인내와 믿음만이 아들을 지킬 수 있다

- 고2 때, 남들은 한창 공부하는데 아들은 PC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집밖으로 쫒아내기도 수차례, 그러면 아들은 엄마가 걱정할까봐 멀리 가지도 않고 아파트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결국 아들은 게임의 끝까지 가본 후에야 하산을 했다. 게다가 폭력사건에 연루되기까지 해 부모가 완전히 마음을 비우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뒤늦게 철이 들어 고3인 지금은 디아블로에 입문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내신 등급도 걱정할 정도가 됐다. 비록 공부는 안 했어도 “나쁜 짓을 할 놈은 아니다”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 남자 애들은 부모가 아무리 뜨겁다고 알려줘도 일단 한번 손을 대봐야 “아~ 뜨겁구나”하고 깨닫는다.

- 아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들이 원하면 사소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줌으로써 “역시 엄마는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한다”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랬더니 아들도 엄마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졌고 결국 바른 길로 가게 된 것 같다.

-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저절로 도를 닦게 된다. 멀쩡할 땐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처럼 굴다가도 뭔가 틀어지면 이젠 저보다 작아진 엄마를 내려다보며 잡아먹을 듯이 군다. 아들이 ‘욱’할 때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터득했기에 뒤돌아서서 믿지도 않는 ‘부처님’, ‘하느님’을 찾으며 혼자 가슴을 친다. 그렇게 해서 이제야 고1까지 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도를 닦아야 할지 갑갑하다.

- 부모 그늘 밑에서 어려운 것, 불편한 것, 부족한 것이라고는 느껴보지 못하고 자란 아들이 험한 세상으로 나가 혼자 힘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 정말 염려스럽다. 곧 대학생이 되니 이제 엄마로서 아들한테 손을 놓는 훈련이 필요한 시점인데 어디까지 조율해야 할지가 문제다. 유학생활이 시작되면 드디어 아들은 내 둥지를 떠난다. 그동안 부모가 자신에게 기울인 정성과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알 테니 어딜 가더라도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간담회 후기

아들은 사춘기를 지나 대학생이 된 후까지 여자인 엄마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해대는 존재입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1학년 아들 엄마부터 군 입대를 앞둔 아들 엄마들까지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감 지수가 100%였습니다. 서로의 고단함을 털어놓고, 진심으로 이해하며 격려하느라 6시간이 넘게 간담회가 이어졌을 정도입니다.

비록 다들 아들이 없는 자리에서 실컷 흉을 볼 수 있어서 속이 후련했지만 단지 성토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엄마 자신의 문제점까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엄마가 아들의 다름을 이해할 수 없다면 아들 역시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엄마들이 합의한 마지막 결론은 “아들이든 남편이든 끝까지 감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애증관계인 아들과 엄마, 그 갈등의 깊이만큼 사랑도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서 참석해주신 아들 엄마들께 감사드립니다.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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