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여행기> 역사 꼬리표 떼고, 시골 ‘부여’를 만나다

지역내일 2012-06-04

부여 여행기
역사 꼬리표 떼고, 시골 ‘부여’를 만나다


아이와 역사. 이 두 가지 꼬리표를 떼고 모처럼 부여 여행길에 올랐다. 부부가 단둘이 가는 여정이니 교육적 마인드는 과감히 벗어던지자. 대신 역사의 도시에서 감히 ‘역사를 뺀’ 시골을 만나자는 심산이었다. 걷는 족족 낭만이요, 보는 곳곳 수수함 일색이던 둘만의 부여 여행기를 시샘 나게 소개해볼 참이다. 종종 아이 없이 떠나는 부부 밀월여행을 강추하며.


Story1. 그림이 있는 풍경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기 위해 낙화암으로 향했다.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잠시 잊고 아름다운 금강을 구경할 작정이었다. 부소산성 산책로를 따라 30여 분을 오르니 낙화암 정자 뒤로 강줄기가 보인다. 순간 나룻배(라기엔 유람선 규모지만 둘만의 로맨스를 강조하기 위해 나룻배라고 해두자) 하나가 유유자적 지나갔다. 평소 같으면 별 감흥도 없었겠지만 뱃길 따라 그려지는 물길이 제법 운치를 더한다. 남편도 내심 좋아하는 눈치다. 연애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 배 한 척을 인증사진으로 남기고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시골의 정취 

부여터미널 주변은 꽤나 번잡스럽다. 편의시설뿐 아니라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박물관과 문화재 단지가 밀집해 있어 관광객들이 바글댄다. 사람을 벗어나야 진짜배기 시골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양화면 송정1리에 위치한 ‘송정그림마을’을 첫 여정지로 잡았다. 

이정표를 따라 가니 송정3리가 먼저 나왔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 송아지와 어미 소가 경계 반 호기심 반의 시선으로 큰 눈을 끔뻑이며 낯선 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녀석들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리니 수수한 들풀과 이름 모를 꽃들이 시골길의 정취를 더한다. 

길에서 만난 또 하나의 정취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나무’다. 키 맞춰 나란히 서 있는 네그루의 애기나무가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뭘 보고 웃느냐며 궁금해 하는 남편에게 “연애 할 때처럼 나무만 봐도 좋다” 하니, 대답대신 슬그머니 손을 잡는다. 낭만이 가득한 시골길을 따라 걸으니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송정그림마을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찾아간 송정그림마을. 송정3리에서 차로 30여 분을 더 달려 도착했다. 마을을 지키는 고목과 아기자기한 이정표가 송정그림마을임을 나타내 준다. 부여 최초의 벽화마을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마을 전체가 한 폭의 그림이라는 소박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담벼락 갤러리를 따라 벽화를 감상하던 중 사람냄새 나는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끙’이라는 벽화다. 오직 한국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이 기발한 표현에 소싯적 화장실 유머가 떠올라 한참을 웃었다. ‘이봐, 뫠씨’를 부르는 염소도, 담타는 고양이도, 권정생의 ‘강아지똥’도 모두 시골 정취가 오롯이 느껴지는 벽화들이다. 

마을 규모는 자그마하다. 작품 수만 따지면 고작 10여 점이 전부니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끌리는 이유는 도시인들을 향해 ‘美~소’를 날리는 벽화 속 소 때문이리라. 덕분에 옛 시절을 되새김질 시키는 추억의 여물을 먹으며 남편과 꽤 오랫동안 담소를 나눴다. 추억은 현재를 잇는 또 하나의 사랑이렷다.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에 연애할 때처럼 마음이 콩닥거린다.


Story2. 장터가 있는 풍경

여행일이 부여 5일장과 맞아 떨어져 제대로 된 ‘시골의 맛’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북적거리는 시골 장터에서 찾은 옛날식 별미도 있고 물어물어 찾아간 숨은 별미도 있다.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는 곳은 일단 제외. 세월의 때가 묻어 허름한 곳일지라도 시골의 맛을 믿어보기로 했다.


부여 5일장

매월 1일과 5일이 낀 날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부여 5일장. 칼 가는 할아버지도 흥정하는 할머니도 모든 것이 정겹다. 시쳇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으니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파리 끈끈이나 메주 덩어리마저 신기할 따름이다. 

부여 최대 규모의 5일장이라 고작 한 바퀴만 돌았는데도 금세 허기졌다. 아니나 다를까. 먹성 좋은 남편이 어느새 족발 앞에 서서 연신 입맛을 다셨다. 시골장터의 묘미는 ‘주전부리’라며 뭘 좀 먹어야겠다는 신호였다. 못 이기는 척 따라가 족발 한 점 맛보려던 찰나 옆에 계신 아주머니가 막 튀긴 어묵도 먹어보라며 팔을 잡아끈다. 꽈배기와 시골사탕은 먹어 봤느냐며 직접 만든 두부와 묵은 안 사가냐며, ‘이짝 저짝’ 장터의 먹을거리를 안내하니 작정하고 허리띠를 풀 수밖에. 밭에서 갓 따온 맛보기 참외까지 후식으로 먹고 나니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역시 여행은 먹는 게 남는 거라더니, 장터 주전부리에 이어 남편의 식탐이 본색을 드러냈다.


부여의 맛 굿드레 

잘 먹는 포동이 남편과 입 짧은 말라깽이 아내의 조합이니 맛집 선정은 당연히 남편의 몫. 다만 관광 음식점보다는 시골 맛집을 찾아다니자는 게 우리 부부의 의견합일이었다. 부여 여정 동안 총 네 곳의 음식점을 들렀다. ‘장원막국수’, ‘삼정식당’, ‘그집에 가면’, ‘시골통닭’. 세 곳은 굿드레 음식특화거리에, 시골통닭은 인근 중앙시장에 위치해 있다. 사실 부여 주민들에게 물어 몇 군데를 찾아갔지만 손님 하나 없는 음식점에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빙빙 돌다 찾아간 곳이 음식특화거리였다.

굿드레 나루터 끝자락에 위치한 장원막국수는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다. 막국수 육수는 조금 달달한 편이고 수육은 다소 뻑뻑한 편. 삼정식당 냉면은 뽀얀 사골육수 국물이 색달랐고, 그집에 가면의 보리밥은 옛날식 된장찌개와 어우러져 시골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시골통닭에 가면 통닭 한 마리는 반드시 포장해가시라.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브랜드 치킨 저리가라다. 맥주 안주로도 손색이 없으니 숙소에서 오붓한 만찬을 즐겨도 좋다. 캔 맥주에 닭다리 하나씩 뜯고 나니, 고급 레스토랑보다 백배는 더 낭만적이라는 게 우리 부부의 닭살 경험담이다.


여행 후일담

시골 탐방으로 마무리한 이번 여행은 어느새 또 하나의 추억이 됐다. 누군가는 리포터의 여정을 따라 시골길을 찾을 테고, 또 누군가는 역사 탐방 차 이곳을 찾을 게다. 어디를 가든 대한민국 모든 곳이 아름답지만, 만일 부여를 택했다면 두 번의 여정을 계획해보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역사의 도시 부여와 부부가 단 둘이 떠나는 사랑의 도시 부여를! 

피옥희 리포터 piokh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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