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사단 훈련병들에게 국수를 삶아 주는 구암사 북천스님. 24년 동안 국수를 삶아 매주 봉사를 했으니 ‘국수달인’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북천스님은 “요즘 군대가 예전처럼 배고픈가요? 주린 배를 채워주려는 것이 아니라 긴장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러 가는 거지요”라며 웃는다.
하필 왜 국수냐고 물으니 27년 전 논산훈련소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훈련소에서 자대배치 받기 위해 기차타고 용산역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 그때 장교부인회에서 커피와 호빵을 나눠줬는데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픈 게 훈련병이다. 커피와 호빵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부처님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스님은 제대하면 훈련병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는 봉사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과자나 커피, 빵을 구입할 돈이 없었다. 대안으로 생각한 품목이 국수였다.
자원봉사 도움 없이는 불가능=
대전시와 유성구청 국방부 등에서 스님의 국수봉사에 감사패 전달을 시도했다. 하지만 스님은 극구 거부하고 국수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스님은 “80여명의 봉사단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서 자원봉사자가 받는 게 당연하다”며 “자원봉사자들의 마음과 정성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런데 3~4년 전부터 스님의 모습이 유성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주 토·일요일에 두 번 유성장이 서는 날을 제외하고, 노인들을 위해 국수를 삶기 시작한 것이다.
스님이 노인들 곁으로 다가간 것은 구암사에 대전시 요청으로 ‘시범 납골당’을 운영하면서부터다.
북천스님은 “우리 부모세대들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음에도 자녀들에게 제대로 효도를 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님은 ‘유성구 시니어클럽’을 빌려 국수판을 벌인다. 국수만 내놓기 미안해 떡과 과일도 함께 곁들인다. 비용은 뜻을 아는 신도들의 후원과 스님의 쌈짓돈을 털었다. 유성시장 국수판을 찾는 노인은 일주일에 500명 정도다.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오는 노인들도 있다. 스님은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정이 그리워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명당 문화, 납골 문화로 바꿔야=
한국은 산림녹화가 된 OECD 국가 중 묘지를 만드는 유일한 나라다. 스님은 “명당에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될 때부터 납골당을 시작했다. 스님은 구암사를 찾은 대전시장에게 세 가지 조언을 했다. 그중 하나가 납골 문화 정착이다. 1998년부터 시범 납골당을 위임받아 운영했는데 처음에는, 자기 땅 1평 가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만 찾았다.
당시만 해도 조상이나 가족을 납골당에 모시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3년 뒤 SK그룹 고 최종현 회장이 “화장해라”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납골 문화의 기폭제가 됐다. 지금은 전국에서 좋은 사례를 찾아 구암사를 방문한다.
스님은 “가족을 납골당에 모신 분들이 슬픔을 이기고 행복한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한다”며 “납골당에 모셔진 납골이 2000기니까. 구암사에는 대가족이 살고 있다”며 합장하며 웃었다.
천미아 리포터 eppen-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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