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고등학교 기숙사’ 탐방

인문계고의 이색 도전 ‘스스로 학습 도와주는 영동일고 기숙사’

지역내일 2012-05-23 (수정 2012-05-23 오전 9:48:00)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영동일고의 기숙사.  현관문을 들어서자 로비를 겸한 인터넷 라운지가 보인다. 4인1실인 기숙사방 안에는 이층 침대 두 개와 옷장이 놓여있다. 공용 세탁실과 샤워실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습실.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진 지정 좌석마다 참고서, 문제집이 빼곡히 꽂혀있다. 평상시에는 새벽 2시까지, 시험기간 중에는 24시간 오픈한다.
 “친구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은연중에 경쟁심이 생겨 마음을 다잡죠. 시험기간 중에 암기과목은 여럿이 질문하고 답하며 공부하니까 효율이 높아요. 기숙사의 엄격한 규율 때문에 집만큼 편하지는 않죠. 그래도 어차피 공부 하겠다 마음먹고 내가 선택해 들어왔으니까요.” 2학년 변엄지양이 기숙사 생활의 이모저모를 들려준다.


교사들이 발 벗고 나서 기숙사 오픈
 영동일고는 서울의 인문계고 가운데는 드물게 2011년 4월 기숙사를 오픈했다. 사교육 바람이 거센 잠실에서 공교육만으로 아이들의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 기숙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곧바로 교사들이 TF팀을 구성해 전국 각지의 기숙학교와 사설 기숙학원까지 꼼꼼히 답사했어요. 이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짜고 기숙사 운영 방침을 마련하는 등 많은 공을 들여 오픈했습니다. 교사들이 똘똘 뭉쳐 애착을 갖고 운영한 덕분에 1년이 지나자 성적 향상이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권용란 교장의 얼굴엔 자부심이 묻어난다.
“자기주도학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속빈강정이에요. 진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배운 것을 곱씹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겁니다. 기숙사 운영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김영호 교감의 설명이다.
 현재 영동일고 기숙사에는 남녀학생 55명이 생활하고 있다. 사감교사 1명이 24시간 상주하고 방과후부서 교사 7명이 학생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 대다수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지식의 인풋은 많이 하는데 아웃풋은 적어요. 숙제를 내주고 진도를 체크하는 사람이 없으면 뭘 해야 할지 당황해 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아요.” 윤희태 교사가 학생들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기숙사생들 스스로 공부법 훈련

 교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습관’을 기르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기숙사에 입소하면 우선 책상 앞에 앉아 혼자 공부하는 훈련부터 받는다. 학생의 의지, 끈기 뿐 아니라 교사의 지속적인 격려가 필수적. 공부 습관이 바로잡히면 학습 계획표를 짠 후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노하우를 교사들에게 1:1로 코칭 받는다.
 “기숙사생 가운데 이번에 장학금 받고 성적우수상을 탄 학생들이 여럿 있어요. 성적이 수직상승한 성공모델도 여럿 나왔지요.” 기숙사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박애나 부장교사가 말한다.   
 기숙사 오픈한 뒤 줄곧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3 김은성군도 화제의 주인공 중 한명. 입학당시 전교 41등 성적을 1등으로 끌어 올려 주목을 받고 있다. “24시간 학교에서 지내다 보니 시간 절약이 많이 되요. 컴퓨터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데 기숙사에서는 인터넷 강의 시청 외에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어요. 집에서는 게임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죠. 선생님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어 참 좋아요.” 김군은 기숙사 생활에 만족감을 나타낸다.
 학교에서는 기숙사생들을 위한 별도의 방과후 교실을 운영 중이며 헬스, 배드민턴, 탁구, 등 체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공부의 기본은 체력이죠. 여럿이 어울려 땀 흘리면서 끈끈한 유대감도 생기고요. 단합을 위해 기숙사생 전원이 참가하는 체육대회도 열어요.” 박 교사가 귀띔한다.
“생일 맞은 친구를 위해 여럿이 케이크를 준비해 깜짝 파티를 열어준 게 특히 기억에 남네요. 크고 작은 이벤트가 생활의 활력소지요. 지금 고3인데 졸업한 뒤에도 많이 생각날 듯해요.” 최해웅 군이 기숙사 생활의 낭만을 들려준다.




‘삼촌, 이모’ 같은 선생님
 사춘기 남녀학생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데다 학업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지도교사들은 늘 긴장해야 한다. 개인생활은 포기한 채 늦은 밤까지 학생 상담도 마다하지 않는 열혈교사들이 여럿 있다. “엄마, 아빠 대신인 셈이죠. 어떨 때는 안전요원까지 되고요. 넘어져 다리를 다치거나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는 학생 등 예기치 못한 일 때문에 응급실에 여러 번 달려갔죠.(웃음) 성적 고민이 많은 아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그러면서 아이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요.” 윤 교사가 속마음을 내비친다. 실제 학생들 가운데는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진로, 친구 문제 등의 고민을 교사들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꽤 많다.    
  영동일고의 기숙사 도입은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를 위한 의미 있는 실험이다. 뜻있는 교사들의 열정, 학교 측의 물적?인적 지원, 학생과 학부모의 호응이 어우러지면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다른 학교에서 벤치마킹을 위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성적 향상.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혼자 힘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아이들의 성장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그 보람이 무척 커요.” 담당교사의 진정성 담긴 한마디가 울림으로 다가왔다.



※ 영동일고 기숙사 특화 프로그램
 기숙사생들은 진로 상담교사와 1:1 면담을 통해 수시전형, 입학사정관제, 정시지원 등 다양한 대입제도 가운데 본인에게 맞는 전형방법을 선택한다. 또한 국영수 주요 과목 외에 독서 토론, 논술, 과학실험까지 14개의 방과후 프로그램이 별도 운영된다. 논문 쓰기 등 대학 진학에 필요한 개인별 포트폴리오 만들기도 지원해 준다.
 기숙사비 15만원, 식비, 방과후 수업료 등을 합쳐 학생 1인당 평균 월 40~50만원을 부담한다. 학생 선발은 신청자 가운데 성적, 학업계획서, 담임교사 추천 등을 고려,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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