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장희재양의 24시
“세계무대로 자신의 재능 펼칠 꿈 꿔”
하루를 25시간처럼 … 방학엔, 자기계발
응용공학동에서 1교시 ‘인체생리공학’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강의는 영어로 진행됐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카이스트에 지난해 4월부터 안타까운 자살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카이스트 내에서도 여러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올 들어 또다시 자살소식이 전해져 지난해처럼 연이은 자살로 이어질까 긴장하고 있다.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꿈을 펼치려 노력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무엇 때문에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지 그곳의 하루를 들여다보았다.<편집자주>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장희재(학부 3학년)양은 2009년 가을학기 ‘3차전형(외국에서 2년 이상 거주하고, 현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으로 입학했다.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려고 준비 하던 중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사태로 경제상황이 나빠져 유학을 포기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했다.
장 양은 연구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대덕연구단지 환경을 접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4년6개월 정도 가족이 캐나다에 머물면서 영어에 대한 걱정을 덜었고, 외국생활도 잘 적응했다. 이런 이력 탓에 장 양의 꿈은 ‘글로벌 제약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재능을 펼칠 꿈을 꾼다. 5월 8일 장 양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카이스트 기숙사(아름관)에서 장희재양이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장 양은 카이스트 기숙사(아름관)에서 룸메이트 한 명과 같이 지내고 있다. 지난 밤 늦게(새벽 2시) 잠든 탓에 평소보다 조금 늦은 7시 40분에 일어났다. 평소 기상시간은 7시 전후다. 기숙사엔 층별로 공동으로 이용하는 세면장 세탁실 휴게실 등이 있다.
아침 식사는 시리얼과 두유로 해결했다. 8시 40분 커피 한 잔을 들고 1교시(9시~10시15분) ‘인체생리공학’ 수업이 있는 응용공학동 2202호 강의실로 향했다.
오늘 강의 내용은 뇌의 영역별 기능에 대한 것이다.
1교시 수업 후, 지난주 RCY동아리에서 다녀온 ‘천양원(대전 유성구 소재 고아원)’의 사진과 RCY본부·학교 제출용 보고서, 회계 결산 등을 하기 위해 과 쉼터로 향했다. 장 양은 카이스트 RCY 동아리 창립 회원이며 회장을 맡고 있다.
강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생명화학공학과 과 쉼터에서 RCY동아리 고아원 봉사활동 사진과 보고서 정리를 하고 있다. 고아원 다녀 온 이야기를 하며 장희재양이 환하게 웃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교내 햄버거 가게에 들러 불고기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려는 학생들로 햄버거 가게는 복잡했다. 식사 후 다음 강의가 있는 ‘터만홀’로 10분 정도 걸어서 이동했다.
창의관 터만홀에서는 3교시(1시~2시15분) ‘행복론’ 수업이 있다. 행복론 수업의 내용은 2주전 진행했던 ‘자살 학생에 대한 조별 토론과 발표’에 대한 교수님의 조언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왜 생을 마감하려 하는가?’ 하는 주제 토론에 대해 교수님은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조언이 아니라, 진심어린 이해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것이며 고민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4교시(2시30분~3시50분) ‘공업유기화학’ 수업은 창의관 309호에서 있다. 수업내용은 ‘여러 가지 유기물들의 합성 메커니즘에 관한 것들’이었다. 장 양은 오늘의 마지막 강의를 들으며 “음~ 정말 지루해요. 하지만 필요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장 양은 이번 학기에 최소 학점인 12학점만 신청해 4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 화요일인 오늘 3과목 수업을 듣는다. 나머지 한 과목은 수요일에 하는 ‘암생물학’이다.
장 양은 4시부터 6시까지 초등학교 1, 4학년 자매의 영어 과외수업을 하러 만년동의 A아파트를 방문했다. 장 양은 “언니는 하루하루 실력이 느는 것이 보이고, 동생은 영어말하기 대회에 반대표로 뽑혔다”고 자랑했다.
과외 수업을 마치고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며 어은동(유성구)의 B회덮밥 집에 전화로 식사를 주문했다. 기숙사 옆 잠긴 철조망 문 앞에는 장 양처럼 저녁식사를 주문 한 학생들로 북적였고, 메뉴는 피자 치킨 김밥 등으로 다양했다. 각자 배달 오토바이를 기다렸다 비닐봉지를 들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모습이 진풍경이다. 카이스트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교내에 배달 오토바이 진입을 막고 있다.
저녁엔 기숙사 휴게실에 친구들과 모여 TV로 야구경기를 보며 회덮밥을 먹었다. 바쁜 하루지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피로를 푸는 시간, 장 양은 “치킨에 맥주가 더 좋은데…”라며 웃는다.
저녁식사 후 야구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신성동(유성구)에 사시는 부모님 댁으로 출발했다. 어버이날이라 카네이션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친구들과 야구중계를 시청하며 저녁을 먹고 있다. 저녁메뉴는 포장 배달시킨 회덮밥이다.
카이스트의 학기는 2월에 시작하고 5월말에 종강한다. 6월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카이스트 학생들은 영어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어학강좌를 듣거나 기업 인턴, 여행, 국내외 봉사활동 등을 하러 떠난다. 기숙사에 남아서 계절 학기를 듣는 학생도 있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하는 학생들도 기숙사를 배정받을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체험을 하지만 자기계발의 시간을 보낸다. 장 양은 2학기에 독일 아헨공과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겨울에 돌아올 예정이다.
천미아 리포터 eppen-i@hanmail.net
“영재도 스트레스 받는 영어강의”장희재양처럼 외국생활 경험으로 영어 소통이 가능한 학생이나, 국내에서 초·중학교 영재교육을 받고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에 입학한 학생 모두 힘들어 하는 것이 기초필수과목 이수다.
그 이유는 기초필수과목을 영어로 강의하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1학년 기초필수과목은 미적분Ⅰ·Ⅱ 화학Ⅰ·Ⅱ 화학실험 물리Ⅰ·Ⅱ 물리실험 생물Ⅰ 디자인(산업, 제품 등) 프로그래밍 등이다.
외국 유학생들의 경우엔 영어 강의 이해 능력은 있지만 기초필수과목 이해가 어렵고, 국내 과학고나 일반고 출신 학생들에겐 전문 과목들의 영어 강의가 어렵다. 그래서 장 양도 2010년 9월 휴학을 하고 한 학기를 쉬며 부족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장 양은 “나라에서 뛰어난 인재를 키우겠다고 만든 것이 카이스트이기 때문에 기초필수과목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영어까지 잘해야 하는 영재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며 “개개인을 위해 카이스트가 맞출 수는 없지만, 다수의 학생을 위한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카이스트 학생들의 안타까운 자살소식이 있은 후, 학교의 사후 대책 중 기초과목들의 영어강의 문제가 논의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천미아 리포터 eppen-i@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