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할머니들이 만든 인형극 한번 보러올래?”
매주 화요일 분당노인복지관 동아리방에 가면 인형극 연습에 삼매경인 7공주(?)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해 1년 남짓한 시간동안 인형을 만들고, 대본을 쓰고, 동화구연에 목소리 연습까지… 맹훈련을 해온 이들 7명의 할머니는 아동성폭력예방 시니어 인형극단 ‘그랜드파파마마’단원들이다.
할아버지들의 참여를 열망해 ‘파파’라는 이름도 넣었지만 아직은 할머니만으로 구성된 단원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공연 나가는 날만 되면 아팠던 몸도 바로 추슬러 일으킬 정도로 막중한 사명감을 불태우는 열혈 시니어들이다. 사회참여의 의미로 순수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는 할머니 단원들의 첫출발은 대개 그렇듯 우연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단다.
“1년 전 복지관 게시판의 공고를 보고 순진(?)하게 발을 들여놨는데 어쩌다보니 이제는 인형극을 가장 최우선에 두고 생활할 만큼 다들 빠져 버렸죠.” 단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변화들.
그래서일까. 친근한 할머니 단원들이 전하는 성교육 인형극은 가는 곳마다 대히트를 기록, 이제는 앞 다퉈 부름을 받는 지역의 유명극단이 되었다.
대사 외우기 힘들어도 사명감은 나의 것
“인형도 하나하나 스펀지 깎아서 만들고, 대본도 직접 쓰고 다듬고, 고치기를 수십 번. 인형 동작 외우랴, 수정된 대본 다시 외우랴, 아주 머리가 빙빙 돌만큼 고생했죠. 지금도 자주 수정되는 대본 때문에 여행지에 놀러 가서도 대본을 외울 정도라니까요.” 전직 교사출신으로 인형극으로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임오희(76ㆍ금곡동)씨의 소회다.
그도 그럴 것이 평균 연령 70대의 단원들이 25분 분량의 대본을 소화하며 약 1.5kg의 인형을 들어 조작하는 일은 진땀이 저절로 나는 고단한 작업.
하지만 여리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욕심에 상처받는 현실을 행각하면 대사 한마디에, 인형을 조작하는 손길 하나하나에 간절한 마음을 담게 된단다.
“성폭력이란 단어가 뭔지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에게 어찌됐건 세상의 나쁜 면을 전해야 할 때 슬프고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좋은 사람도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나쁜 어른도 있다는 것을 전해야 하니까요.” 한춘자(70ㆍ야탑동)씨의 고민이자 단원들 모두의 아픈 숙제.
그래서 더더욱 인형극 공연이 소중하다는 단원들. 말로 전하기 어려운 내용을 친숙한 인형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 정서와 눈높이에 맞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관에서 동화구연을 배운 인연으로 인형극단에 참여하게 됐다는 김경자(68ㆍ구미동)씨 역시 이런 이유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인형극을 준비하고 공연을 나가면서 정말 새록새록 노인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우리들이 작은 힘을 보태 단 한명의 아이라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진 일이에요?”
성남 1호 시니어 인형극단의 억척 공연기
공연에 나가서도 아이들이 그때그때 전하는 호응과 반응에 저절로 신명이 난다는 단원들.
“공연 중에 주인공 민아가 나쁜 아저씨를 따라가려고 하면 되레 아이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안 된다고 뜯어 말려요. 스펀지 같은 아이들이 민아에게 감정이입 되면서 안타까움을 표출하는 거죠.” 아이들의 집중도와 호응을 고려해 수시로 대본을 수정하고 현장상황에 맞게 애드리브도 펼치며 이제야 조금씩 감을 잡고 있다는 곽춘대(71ㆍ정자동)씨의 설명이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총 10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500여 어린이들에게 예방 교육을 펼쳐온 단원들. 이제는 명실상부한 전문 인형극단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지속하고 있다.
“공연이 없어도 저희는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대본 연습과 인형조작연습, 그리고 디테일한 표현 등을 맞춰보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처음엔 무식하니까 용감하다고 얼떨결에 나가서 공연을 했는데 이제는 좀 더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전달을 잘 하도록 말이에요.” 우경자(71ㆍ야탑동)씨와 조금순(63ㆍ야탑동)씨 역시 제아무리 바쁜 일과도 뒷전으로 밀어놓고, 궂은 날씨와도 상관없이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복지관으로 달려와 연습에 임하게 된단다.
“인형도 직접 만들고 콘티도 직접 짜면서 자연스레 애착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아이들을 만나면서는 욕심도 더욱 커졌고요. 우리가 애국자란 생각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요즘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도 인형극으로 전달하면 좋겠다 싶을 만큼. 그건 너무 오지랖인가? 하하하.” 성남1호 시니어 인형극단 7공주 할머니들의 포부는 그렇게 복지관을 넘어 지역사회와 사람을 향해 있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시니어인형극단 ‘그랜드파파마마는?>
최근 사회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성폭력 예방을 위해 분당노인종합복지관 회원들이 구성한 시니어 인형극단이다.
시니어들은 전문자원봉사를 통한 사회참여로 노년기 여가활용의 긍정적 모델을 만들고, 지역 아동들에게는 성폭력에 대한 이해와 대처방법을 인지시켜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한다는 목적으로 지난해 4월 창단했다.
창단 이후 단원들은 전문양성교육을 이수 받고 손수 인형과 시나리오를 제작, 월 2회 지역 내 어린이집 및 유치원으로 찾아가 지속적인 무료 방문공연을 펼쳐왔다. 또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니어 단원들은 보수교육과 자조모임 운영을 통해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참신한 인형극을 꾸준히 업그레이드 한다는 계획이다.
세대 간의 교류가 어려운 시대, 시니어 인형극 방문 공연을 통해 세대통합과 이해의 장을 만들고 있는 시니어 인형극단 ‘그랜드파파마마’의 활동이 앞으로 더욱 주목 된다.
공연 신청 031-785-9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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