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둘(2)이 하나(1)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뜻에서 가정의 달 안에서도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남녀가 사랑에 빠져 상대방의 모든 것이 좋게만 보여 결혼했더라도 살면서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면 상대방의 단점,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 사소한 실수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부부의 삶은 3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사생사사’, 경제문제에 민감해지는 ‘돈생돈사’, 살아온 정으로 사는 ‘정생정사’. 어떤 단계를 살아가든 우리는 갈등을 빚고 또 해소하며 살아간다. 아내가 참기 힘들어하는 남편의 버릇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은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강남서초 내일신문 편집팀
끊이지 않는 술과의 전쟁
남편과 술친구로 만나 결혼했다. 결혼 전 함께 술을 마실 때는 주고받는 술잔에 애정이 흘러 넘쳤다. 술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활기찼고 유머가 넘쳐 늘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제법 마셔도 우리 둘은 필름이 끊기는 법이 없었고 남편은 항상 집까지 바래다주었기 때문에 나는 남편이 술을 마셔도 실수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알았다. 결혼한 후에도 우리는 영원한 술친구이자 정신적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했다.
임신을 해서 나는 열 달간 절주 모드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은 나의 고통을 조금도 함께 해주지 않았다. 연일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고 새벽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때부터 남편의 술 마시는 모습, 취해서 들어와 풍기는 냄새, 아침에 해장국 찾는 넉살 등 모든 것이 밉상이었다. 잔소리를 해도 남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아이가 태어나고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육아는 당연히 분담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때문에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직행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회식자리와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급기야는 음주운전으로 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까지 났다. 차는 박살나서 폐차시켰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운전한 남편은 상처 하나 없었다. 다른 차와 충돌했거나 지나가는 행인을 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두 살배기 아이가 없었다면 그 때 아마 법원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사고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남편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음주운전을 했다. 차 키 박탈권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남편은 술을 끊을 수는 없다고 판단해 차 키를 반납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신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음주운전을 한 적은 전혀 없다. 출퇴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운전은 가족 여행이나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고 있다. 요즘 남편은 서울 근교까지 안 가본 지하철역이 없다. 술자리를 파하면 차라리 택시를 타고 오면 좋으련만 꼭 지하철을 고집하다가 갈아탈 곳이나 내릴 곳을 놓치고 더 먼 곳까지 갔다가 할증까지 붙여 두 배의 택시요금을 내고 귀가한다.
하도 큰일을 겪고 보니 이 정도는 눈감아 줄 수도 있지만 속이 끓어오르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끝까지 함께 가야한다면 분풀이라도 해야지. 술 취해 잠든 남편에게 있는 힘껏 주먹을 날린다. 다음 날 아침 여기저기 아프다며 눈을 뜨는 남편에게 해장국을 끓여줘? 말어?
가족을 배려하지 않는 취미 생활
결혼 후 남편은 15년 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살아왔다. 신혼 초에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남편을 믿었다. 하고자하는 일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고, 일이든 취미든 공부든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을 보고 마는 성격이라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남편이 바쁘게 일할 때는 육아, 자녀교육, 가족의 대소사, 시부모 공양 등 집안일은 모두 나 혼자서 해야 할 일이었고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는 남편이 전혀 신경 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업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IT관련 사업이라 다른 사업에 비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 집안일로는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겪었고 성과의 기복도 있었지만 15년 정도 지나자 열심히 일한 만큼 결실도 뒤따랐다. 지금은 남편의 안정된 사업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부부의 사소한(?) 마찰은 그 다음부터다. 일에 여유가 생기면서 남편은 취미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밴드를 결성한 것이다. 남편은 리드기타를 맡았고 밴드의 대표 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연습실에 모여서 연습을 했고 연습이 끝나면 뒤풀이도 했다. 가끔은 비공식적인 공연도 열었다. 한 번 하면 만족스러울 때까지 파고드는 남편의 성격은 매일 밤 기타 연습으로 이어졌다. 회식이 있어서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한 날도 꼬박꼬박 30분씩 연습을 했다.
사정 모르는 사람은 열심히 일한 중년의 남편이 취미에 열심인 모습이 뭐가 잘못이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일 때문에 바쁠 때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지만 취미 때문에 바쁜 남편은 이기적으로만 보였다. 더구나 고3인 아들이 공부하는 밤에 옆방에서 기타를 치는 남편을 보면 얄밉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남편은 나의 잔소리가 익숙하지 않다. 그동안 나는 배려하는 아내였지 남편 일에 잔소리하는 아내가 아니었다. 남편의 기타 연습 공간을 아들 방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배치하고 소리를 죽여 연습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나는 스스로 불만을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아파도 참지 못하고 한약을 달고 사는 남편
며칠 전 또 한약이 배달됐다. 엊그제 몸살이 난 것 같다고 한의원에 가더니 기어코 또 한약을 짓고 말았나 보다. 남편은 한약을 지을 때 나와는 일언반구 상의를 안 한다. 나는 한약이 배달돼서야 알아챌 뿐이다.
남편은 건강염려증이라고 할 만큼 조금만 몸에 이상이 느껴져도 못 견뎌 하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몸살이 나면 며칠 쉬면 낫겠지라고 생각하면 되는 데 남편은 절대 그러지 못한다. 큰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당장 병원이나 한의원으로 달려가야 직성이 풀린다. 집에 있는 비타민도 잘 챙겨먹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한약은 물론 각종 건강보조식품들도 아주 철저하게 챙겨먹는다.
결혼해서 13년 동안 남편에게서 한결같이 변함없었던 점을 꼽는다면 바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데는 죽기 살기로 덤빈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학원비가 모자라 쩔쩔매건, 대출금 때문에 생활비를 아끼느라 속이 타건 말건 그는 아프면 한약이든 시중의 건강식품이든 뭐든 먹어야 한다. 아마도 남편이 건강에 쏟아 부은 돈만 모아도 집 한 채를 사고도 족히 남을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이런 점에 불만이 많았다. 지금도 완전히 불만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래, 사연이 있으니 어쩌겠는가.”하며 혼자 삭히며 산다.
남편은 어릴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 다리에서 떨어져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서 헤매다 깼다고 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 후 후유증으로 온갖 병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때는 후유증으로 2년간 학교를 쉬면서 요양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 남편은 몸에 조금만 이상이 와도 자연히 긴장이 되고 불안감이 몰려오는 듯싶다.
이런 남편이 요즘은 부쩍 내 건강을 챙긴다. 덜 아플 때 약도 먹고 치료도 받아야 한다며 돈 때문에 주저할 때 남편은 아낌없이 투자할 것을 권한다.
집안 경제 사정은 아랑 곳 없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불사하는 우리 남편, 남들은 건강에 무관심한 남편보다 낫다고 하는 데…. 전 그들에게 “이런 남편과 한번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작은 서랍장까지 칸칸이 정돈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
나는 무척이나 털털한 성격이다. 집안 살림도 털털한 성격답게 널부러지면 널부러진대로, 아이들이 장난감을 어질러놓으면 어질러놓은 대로 대충 정리해 놓고 지내는 타입이다. 지금도 정리정돈의 필요성을 못 느끼며 어질러진 집안에 전혀 불편을 못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다. 나와는 정반대인 남편은 거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하고 정리정돈에 목숨을 건다. 유독 남편은 책과 서랍장 정리정돈에 유별나게 깔끔을 떤다. 나는 아이들의 눈과 손이 닿는 데면 방이든 거실이든 화장실이든 어디든지 책을 놓아둔다. 그런데 남편은 꼭 책은 정해둔 책꽂이에 꽂아놓아야 마음이 편하단다. 책상 위의 작은 서랍장까지 칸칸이 나눠서 종류별로 일사분란하게 분류해서 정리해 놓는다. 나나 아이들이 서랍장의 물건을 쓰고 대충 넣어 뒀다가는 여지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예를 들어 서랍장 귀퉁이 몇 번째 칸에서 풀을 꺼내 썼다면 꼭 그 자리에 넣어야 하는 식이다.
내가 마음먹고 청소를 해도 남편은 “그것도 청소한 거냐.”고 매번 타박이라 애간장이 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닦을까 말까 하는 구석진 곳의 먼지를 손으로 싹 쓸어 보이며 “이것도 청소한 거냐.”고 호통을 치는 데 할 말을 잃는다. 언제부턴가 남편의 퇴근시간이면 헐레벌떡 신발정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가끔 놓칠 때가 있다. 그러면 어김없이 신발정리부터 하면서 들어오는 남편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런 것 때문에 신혼 때부터 참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작은 문제 같지만 결혼생활에서 이런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불씨가 돼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큰 문제로 비화되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런 남편의 취향에 맞춰보려고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정리정돈과 무관한 나는 좀처럼 남편만큼 깔끔하지도 정리정돈도 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언제부턴가 남편도 좀 포기하는 눈치다. 단 자신의 방만큼은 지금도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하게 정리정돈하고 지낸다.
지름신 남편, 1년에 한 번 생일선물로 잠재워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굶는 한이 있어도 사고야 말았던 남편.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번 돈도 모두 그렇게 써버렸다. 사실 남편은 평소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 아니다. 돈을 찾을 때도 타 은행 ATM기기 수수료가 아까워 두 정거장도 불사하고 걸어 다닐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은 물건 앞에선 물 쓰듯 돈을 쓴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늘어가는 육아비로 고민하던 어느 날, 남편 앞으로 연이어 택배가 도착했다. 당시 남편이 산 것은 하나에 수 십 만원을 호가하는 프라모델 로봇 시리즈들이었다. 이후에도 남편은 헬스기구와 MTB 자전거, 캠핑장비, 홈시어터 등 고가의 물건들을 풀세트로 구입했다. 분유 값을 걱정하는 아내 입장에선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택배 상자를 뜯고 있는 남편을 멍 하니 바라보았다. 흘끔흘끔 내 눈치를 보던 남편이 “담배를 피우지도, 술을 마시지도, 유흥을 즐기지도 않는데 솔직히 남들에 비해 쓰면 또 얼마나 쓰냐”며 항변을 했다. 듣고 보니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건 그래”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때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얼떨결에 남편의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우리 부부는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매년 생일 날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것 한 가지만 선물해 달라”며 “대신 다른 것은 일절 사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남편의 생일이 다가온다. 아직 두 달이나 남았지만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선물 고르기에 여념 없는 남편을 보며, 새삼 부부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조금씩 맞춰가는 것. 그게 바로 부부라는 이름의 살가운 행복이 아닐까. 그 생각에 이르니 왠지 선물을 고르는 남편의 뒤통수마저 정겹게 느껴진다.
“여보, 밉다밉다 해도 내 본심은 아니라는 거 알지? 난 당신의 지름신까지도 사랑한다구!”
정반대 성격인 남편, 변화시키고 나도 변하고
결혼 전, 남편은 늘 내 얘기를 웃음 띤 얼굴로 묵묵히 들어주던 편안한 남자였다. 바로 그런 남자다운 과묵함에 반해 결혼을 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급한 성격인 나와 정반대인 남편이 조금씩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화를 하다가, 아니 거의 나만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다가 질문이라도 던지면 대답이 나오기까지 남편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면 겨우 “에~” 하며 마치 마을 이장님이 동네방송을 하듯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책 읽기를 좋아해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한데, 묻기 전에는 말을 안 하니 답답할 수밖에.
그러니 부부싸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나 혼자 화가 나서 잔소리를 쏟아내고 남편은 눈만 끔벅거리다가 어렵사리 “미안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우리 집 부부싸움 풍경이었다. 그래도 비록 말로 내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하지만 출근한 후에 꼭 “밥 먹었어?”라며 전화를 해서 나를 챙겼다. 그런 작은 배려에서 나를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늘 제풀에 화가 풀리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타고난 성격이라고 해도 평생 함께 살아 나가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성 심리까지 설명하며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반드시 대화로 해결할 것’을 요구했고, 성격 급한 나를 위해 ‘빨리 빨리 대답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래도 처음 몇 년간은 여전히 말로 풀기보다 말없이 장미 꽃다발을 내미는 걸로 대신했다.
그렇게 한해 두해가 지나면서 남편은 조금씩 말수가 늘었고 요즘에는 나보다 더 얘기를 많이 할 때가 있을 정도로 변했다. 반면에 나는 과묵한 남편과 함께 살면서 물이 들었는지, 아니면 때론 말을 안 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인지 화가 나면 말수가 줄어든다. 남편도 변하고 나도 변하니 서로 극과 극이었던 성격이 어느 정도 닮아 이제야 편해졌다.
이혼 협박으로 멈추게 한 남편의 지나친 우정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친구들을 마치 큰형님처럼 챙기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따르는 친구들이 많을 수밖에. 다른 친구들보다 비교적 빨리 결혼을 한 편이었기에 신혼여행을 다녀 온 후부터 “애들 불러다 밥 한 번 먹여야 한다”는 남편의 성화에 매주 집들이를 해야만 했다. 그 후에도 친구들이 수시로 신혼집에 밥을 먹으러 왔음은 물론이다.
거기까진 사람 좋은 남편을 만났으니 어쩔 수 없다며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밥뿐만 아니라 돈까지 빌려주고 떼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난 후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 혼자 월급으로 빠듯하게 살던 처지였는데 적지 않은 돈을 날려 버렸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남편의 다짐을 받고 넘겼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 번은 아파트 주차장에 새 차가 한 대 서 있을 테니 나가보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자동차 세일즈맨인 친구가 사정이 급하다고 도움을 요청한 결과였다. 멀쩡하게 잘 타고 다니는 차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당장 다시 끌고 가라고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마지못해 그 차를 돌려보냈다. 어떤 손해를 감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밖에도 보험설계사로 새롭게 출발하는 친구의 실적을 위해 가입한지 몇 년이 지난 종신보험을 해약하기도 하는 등 사고(?)가 끝이 없었다. 그러더니 결국 한 친구의 재정보증까지 서준 것이 아닌가. 집으로 날아온 우편물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보증보험 제도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어쨌든 남편의 이런 지나친 우정을 중단시키기 위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이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제야 남편은 그 친구에게 내 얘기를 전하고 취소를 했다. 늘 남편 친구들 사이에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셈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그렇게라도 해서 가정을 지켜야 했으니.
단호하게 ‘이혼’이라는 카드를 내밀고 나니 남편도 어느 정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눈치였다. 게다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절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는 큰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 물론 내가 모르는 사건이 분명히 더 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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