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입맛을
믿지 마세요
한국인은 대부분 자신의 입맛에 자신한다. 내가 맛있다고 여기는 음식이 보편적으로 혹은 절대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쉽게 던진다. “내 입에 맛있으면 되지 뭐.” 그렇게 살아도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좀더 진지하고 재미나게 살려면 자신의 입맛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인간의 입맛이란 게 너무나 허술하여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
맛을 느끼는 감각에는 미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각, 촉각, 시각, 청각도 동원된다. 그중에 입안에 음식을 넣는 순간부터 식도로 넘기는 것까지만 따지면 미각, 후각, 촉각이 특히 많은 영향을 준다. 미각으로 알 수 있는 것, 즉 혀로 느끼는 것은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 감칠맛 정도다. 촉각은 음식의 조직감과 관련이 있는 데, 그렇게 복잡한 감각은 아니다. 음식의 맛을 느끼는 데는 후각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냄새가 음식 맛을 알아차리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는 초등학교 실험 시간에도 나온다. 코를 막고 먹으면 그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실험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일시적으로 미각을 잃어버리는 비과학적인 스토리가 등장하는데, 장금이가 축농증에 걸린 것으로 나왔으면 훨씬 더 ‘리얼’한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냄새를 풍기는 물질은 분자물로 되어 있다. 이 냄새 분자물은 과학적으로 분류가 안 될 만큼 그 종류가 많다. 자신의 입맛을 믿지 말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냄새 분자물의 복잡성에 있다. 이 분자물에서 비롯하는 냄새를 맛의 기호로 낱낱이 분류하는 일은 밤하늘에 보이는 모든 별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후각은 오감 중에 가장 쉽게 피로를 느끼는 감각이라는 사실도 자신의 입맛을 믿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래식 화장실의 지독한 냄새도 그곳에 몇 분만 앉아 있으면 견딜 만해지는 것이 그 이유다. 후각이란 워낙 민감하다 보니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냄새를 못 느끼게 하여 몸의 피로도를 줄이도록 인간이 진화해온 결과다.
부엌에서 요리할 때 특히 자신의 입맛을 믿지 말아야 한다. 요리할 때 처음에는 음식 재료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여 입에 침이 돌며 식욕이 자극될 것이다. 그러나 5분, 10분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 재료의 냄새는 점점 흐릿하게 느껴지고, 어느 때는 악취로 다가오기도 한다. 마침내 음식이 완성되어 내놓을 때면 “너희나 먹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리하는 동안 후각이 지칠 대로 지쳐 식욕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문 요리사는 사정이 심하다. 하루에 몇 시간이고 음식을 하는 그들에게 ‘평상의 입맛’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요리사를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의 입맛을 믿지 마세요.” 그러면 많은 요리사들이 화들짝 놀라거나 언짢아한다. 요리사는 일반인보다 자신의 입맛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훌륭한 요리사는 자신의 입맛을 믿지 않는다. 똑같이 된장찌개를 끓였여도 어제 맛이 다르고 오늘 맛이 다른 게 음식이 달라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상태에 따른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요리사들은 자신의 입을 믿지 않고 머리를 믿는다. 수많은 식재료의 맛을 머릿속에 데이터로 저장하고, 조리 과정에 따라 그 맛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배합일 때 어떤 맛들이 충돌하고 비켜가는지 머리로 그리면서 요리한다.
아이를 대하는 일이 음식과 비슷하다. 한 아이의 성징은 쉽게 바뀌지 않을 텐데, 어느 때는 착한 아이, 어느 때는 멍청한 아이, 또 어느 때는 나쁜 아이로 대한다. 착하고 멍청하며 나쁜 마음이 내 마음을 들락거리기 때문이다. 늘 의심하고 살펴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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