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역 내일신문 ‘장애인의 날’ 공동기획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정책 따로 현실 따로 … 장애인 정책, ‘시혜’가 아닌 권리로 인정해야
김정호(32·가명)씨는 큰 맘을 먹어야 외출이 가능하다. 비장애인이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김씨한테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도움을 받으려면 주변사람들 눈치를 봐야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을 꺼린다.
척추장애 1급인 김씨는 요즘 TV에서 산과 들에 활짝 핀 꽃을 보고 마음이 뒤숭숭하다. 밖에 나가 꽃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꿈에 불과했다. 집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이 그에게는 세상과의 싸움이다. 장애인 이동권을 중심으로 장애인 정책과 현실을 들여다보았다.
천안교육지원청은 제32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지난 18일 ‘장애인식개선행사’를 마련했다.
이날 류광선 교육장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며 장애인의 불편한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사진제공 천안교육지원청>
◆ 정책은 우수, 현실적용은 빈약 =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올림픽과 함께 개최하는 장애인올림픽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장애인복지예산이 년 50억원이던 시절, 장애인올림픽에 배정된 예산은 약 200~300억원에 달했다.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 박광순 회장은 “당시 장애는 하늘이 내리는 형벌로 인식할 정도로 장애인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점차 깨지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활동지원법 등 많은 관련법이 제정됐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책과 현실의 부조화가 문제다. 법은 현실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2008년 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세계 세 번째로,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가 어떻게 느끼는지 여부다.
한빛회 이연경 사무국장은 “비장애인의 ‘시혜’적인 시각에서 만든 정책은 장애인들 가슴에 닿지 않는다”며 “정책 하나라도 제대로 시행돼야 하는데, 나열식 정책만 만들어 10점짜리 성적표 10개를 내놓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장애인문화협회 강용규 본부장은 “이번 4·11총선 투표장소만 해도 장애인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곳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 사람이 누려야 할 최소한 권리 ‘이동’ =
장애인들은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중 시급한 것은 ‘자립’과 ‘이동’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과 ‘장애인활동지원법(활동지원법)’ 등을 제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한 상황이다.
교통약자법은 1~2급 장애인 200명당 특별교통수단차량 1대가 필요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천안시의 경우 장애인 5497명(2011년 7월 현재 기준)이 등록된 상태다. 이에 따른 차량이 28대로, 현재 휠체어 이동에 필요한 장애인콜택시 11대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콜택시 12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8시간 근무조로 나누어 운영하다 보니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점심이나 저녁시간은 운영하지 않는다. 장애인단체에서 운영하는 15대의 차량이 그나마 불편함을 줄여준다.
차체 바닥이 낮고 휠체어를 쉽게 실을 수 있는 저상버스 운행도 요구하고 있지만 벽은 높다.
현재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3899대(2011년 기준)로 12%에 그치고 있고, 천안시는 2009년 충남도에서 최초로 저상버스를 도입해 현재 15대를 운행 중이다. 시는 올해 3대를 추가 구입, 2014년까지 14대를 더 확보한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는 ‘교통약자편의증진 5개년 계획’에 따라 2016년까지 41.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천안시청 관계자는 “저상버스는 일반버스에 비해 연비가 떨어지고 보험료가 높아 비용이 더 드는데도, 정부는 구입 당시 일반버스 대비 초과 비용의 50%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떠넘긴다”며 “구입비용을 충남도와 시에서 지원하지만, 운영비용은 버스업체 몫이니 업체들이 저상버스를 꺼린다”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저상버스 운행에도 어려움이 많다.
충남장애인단체연합회 황화성 상임대표는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서는 교통시설을 비롯해 도로 건축 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이러한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지 않으면 관련법 실행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 박광순 회장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시혜’가 아니라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하고 장애인 가슴에 와 닿는 정책을 수립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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