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침 8시. 대전 홍도동에 사는 우현(가명·11)이가 엄마손을 잡고 통학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우현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우현이를 미처 보지 못한 자전거가 아이 곁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다 쓰러졌다.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킨 남자는 우현이와 엄마를 향해 모진 독설을 퍼부었다. 우현이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현이는 네 살짜리 아이처럼 행동한다. 지나다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어 오고 5층 아파트 거실에서 방방 뛴다. 엄마 구두를 뺏어 신고 냅다 달리는가 하면 같은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부른다.
우현이는 자신의 세계에 갇힌 자폐아다. 자폐성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기술 발달’ 그리고 ‘행동과 관심’ 부분이 또래보다 부족하다는 특징이 있다. 정확히 규명 된 원인도 없고 치료법도 없다.
우현이가 발달 장애 판정을 받은 것은 2006년이다. 또래보다 언어 발달이 조금 더딘 것이라 생각했던 엄마 이미영(가명·40)씨에게 우현이의 장애 판정은 날벼락 이었다.
“장애를 겪는 아이 엄마들은 마음이 다 똑같아요. 처음엔 받아들일 수 없다가, 분노하다가, 인정하고, 절망하는 거죠.”
그러나 엄마는 아이를 위해 용기를 냈다. 잘 다니던 직장도 버리고 우현이에게 매달렸다. 돌출행동이 심한 우현이 때문에 밤잠을 설치거나 지켜야 했다. 지금까지 우현이를 놓쳤던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엄마가 잠깐 부엌일을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면 우현이가 사라졌다. 내복에 유성매직으로 전화번호와 이름을 써 놓기도 하고 옷섶에 이름표를 바늘로 꿰매 놓기도 했다. 엄마 이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 등에 연락처 문신을 할까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차마 할 수가 없었어요. 오죽했으면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요.” 이 씨의 이런 절박한 마음을 상술에 이용한 사람도 있었다.
방과 후 다니는 복지관에서 치료 수업을 받던 중에 어떤 업체가 돈을 내면 아이 몸에 ‘위치 인식 칩’을 심어준다는 말에 이 씨는 당장 신청서를 작성하고 시술 날짜만 기다렸다. 그러나 사기꾼이었다. 돈에 눈이 먼 장사꾼들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자폐 장애아 부모의 실낱같은 희망조차 이용한 것이다.
지적 장애인은 졸업 후 갈 곳이 없어
17일 오후 1시. 혜광학교(특수학교. 동구 가오동)에서 수업을 마친 우현이는 대덕 복지관 버스를 타고 복지관으로 간다.
4시 30분. 엄마는 복지관 밖에서 우현이를 기다린다. 수업을 마친 우현이의 손을 잡고 이 씨는 대화동 시립체육재활원으로 간다. 이 시간은 우현이가 제일 좋아하는 수영 수업 시간이다.
4년 전 우현이가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이 씨는 차마 아이를 지켜볼 수 없었다. 감각이 예민한 우현이한테 물은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까무러치듯 발버둥치는 우현이를 볼 때마다 엄마 이 씨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우현이는 어떤 영법도 자신 있게 소화한다.
“아이가 싫어하는 언어 학습을 시켰을 때랑 확실히 달라요. 탈의실에서 혼자 샤워하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뿌듯해요.”
우현이가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나면 오후 6시가 훌쩍 지난다. 아이와 함께 이 씨가 귀가하는 시간이다. 이 씨는 아이의 그림자처럼 하루를 보낸다.
정부가 지정한 서비스 제공기관에서 재활치료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바우처를 매달 20만 원 정도 지원받지만 본인 부담금이 만만치 않다. 7세 미만에 잘 치료하면 완치율 50%까지 갈 수 있다는 말에 쏟아 부은 돈이 집 한 채 값이다.
또한 2년마다 인지 테스트를 받아야 장애 등급과 보조금이 나온다. 30만원에 달하는 테스트 비용 역시 본인 부담이다. 자폐아는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장애아동 가족지원사업’의 바우처 제도에도 자기부담금은 족쇄처럼 존재했다. 공공기관의 시설조차 자신들의 가난함을 입증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또한 국가에서 정한 자폐 치료의 종류나 방법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주로 치료를 맡는다. 더구나 치료비 상한가 기준도 없어 부른 게 값이다.
일반 학교에는 장애아를 위한 전문교사가 턱 없이 부족하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은 말할 것도 없다. 전문교사도 부족하지만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이 많아 엄마들의 마음이 더욱 무겁다.
어렵게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한다 해도 자폐 장애인이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곳이 없다. 그래서 엄마는 ‘건강까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가장 부럽다.
“부모가 더 이상 보호할 수 없을 땐 시설(정신요양원)밖에 갈 곳이 없어요. 하루라도 내가 더 살아서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어요. 저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이 씨는 우현이가 음악치료수업 때 배운 노래를 흥얼거릴 때 함께 흥얼거린다. 엄마의 목소리에 우현이는 자신이 갇힌 세계에서 조금씩 빠져 나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치료 수업을 받을수록 우현이의 증세는 좋아졌다. 글도 읽고 두 살 위인 형이 가르쳐 준 구구단도 외운다. 이 씨는 ‘자폐는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장애’라고 설명한다. 우현이를 끌어안고 만 번도 더 울었지만 엄마는 ‘엄마’이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이 씨는 우현이가 갇힌 세상에서 밖으로 나올 때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침사랑 안마지압원’ 이시환 원장의 더불어 사는 것
눈을 잃은 것보다 ‘직업’을 잃은 것이 더 힘든 삶
후학들, 안마사를 직업으로 인식해야
대전시 대덕구 중리동에 위치한 ‘침사랑 안마지압원(이하 안마원)’에 들어서면 이시환 원장과 민윤희 부원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시각장애인 부부다. 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안마원 중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 원장이 맹아학교 후배 20명을 돌보며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돈을 벌기 위해 직원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맹아학교 후배들이 퇴폐업소에 가지 않고 안마사를 직업으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대전 맹아학교와 MOU를 맺고 지속적으로 후학들을 도울 생각이다.
귀로 듣고 진료하는 ‘AMS’ 직접 개발
안마원에 처음 방문하면 체중과 키 혈압 등의 개인기록 체크를 하는데 이 원장이 직접 개발한 ‘AMS(청진 기계관리 프로그램)’가 도와준다. 이 원장은 시각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귀로 듣고 환자를 진료 ?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상인의 도움 없이 안마원을 운영한다.
이 원장은 “눈을 잃은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산업재해로 실명하기 전까진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는 유능한 ‘자동화설비 프로그래머’였다.
이곳을 자주 이용하고 있는 정은숙(41?유성구 어은동) 씨는 “지인의 소개로 안마원을 찾았는데, 처음엔 시각장애인이 침을 놓는다는 것에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며 “그런데 만성 어깨 결림과 두통이 사라지고 신기하게도 마음까지 편해졌다”고 말했다.
처음 산업재해로 실명했을 때 이 원장은 맹인 안마사를 ‘하찮은 일’로 여겼다.
그러다 생각이 변한 것은 스스로 체험한 과정 때문이다. 실명 후 스트레스로 온몸에 마비증상이 왔을 때 맹인 안마사한테 침과 시술을 받고 치유한 경험이 이 원장을 맹아학교로 이끌었다.
이 원장은 일을 하기 위해 1997년 맹아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 3년 과정을 1년만에 끝냈다.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동의보감 등 한의학 관련과목과 어려운 의학 관련 과목들을 공부했다.
이 원장이 학교 다니면서 제일 싫어한 것은 방학이 돼 집에 가는 것이었다. 집에 가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학교에 숨어 있다가 선생님들이 교문을 잠그고 가면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공부했다. 그 후 산성복지관에서 3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고, 2003년 자신이 운영하는 현 안마원 문을 열었다.
시각장애인 고용하는 일반기업에 지원해야
이 원장은 “시각장애인이 기업을 창업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한다.
지금 안마원안에서 일하고 있는 8명은 앞으로 전국 맹인 안마원 창업을 위해 거점으로 활용할 중요한 인재로 키우고 있다.
또한, 12명 출장 안마사들은 국가 바우처사업으로 지원받아 일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 원장이 경제적인 손해를 보면서 고용하고 있다. 국가 바우처사업으로 지급되는 지원금은 후배 안마사들에게 고스란히 내어주고, 출장 나갈 때 안내원과 세금 등을 이 원장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보건복지부에의 장애인지원 사업에 장애인고용공단이 ‘장애인지원 장려금’을 지원 하지 말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일반기업에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의 가족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잠을 잔다.
“일반인들은 불을 끄면 잠을 자지만, 우리 가족은 배위에 점자책을 올려놓고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며 웃었다.
천미아 리포터 eppen-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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