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임진년 특별인터뷰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
“굴절된 역사 바로잡아야 올바른 국가관 정립”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철학 재조명해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소장 =
1961년 충남 아산출생. 교수 및 역사학자. 숭실대사학과 졸 동 대학원에서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 2009년 조만식언론인상을 수상.
주요 저서 =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50여권(개정판 포함)을 출간. 대표작 ‘조선왕 독살사건(1?2)’은 <누가 왕을 죽였는가>를 개정한 것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개정증보판에서는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다수의 인물을 ?독살’이란 프레임으로 왕권보다 강한 신권의 나라 조선을 그렸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사도세자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 노론과 소론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사도세자의 필연적인 죽음을 해석한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은 송시열과 노론 추종 세력으로부터 사문난적과 역적으로 몰려 사형 당해 철저하게 금기시된 윤휴의 삶을 추적했다.
여인열전을 개정증보한 ‘세상을 바꾼 여인들’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등을 저술했고, 총 판매부수가 100만부에 이른다.
출간을 앞둔 ‘내 인생의 논어’는 좌절과 아픔을 겪은 공자의 논어가 처세술만이 아닌 고뇌하는 공자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역사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굴절된 역사관을 정확한 근거와 관련사료를 바탕으로 뒤집어 나갔다. 우리 역사의 쟁점들을 30여권의 역사비평서를 통해 명쾌하게 정리했고,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자칭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는 이 소장을 재야역사학자로 분류했다. 정작 그는 주류냐 재야냐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1차 사료적 근거와 팩트가 전제된 논리를 부정할 수가 없다.
많은 독자들은 이 소장이 주장하는 ‘한국의 근현대사 왜곡’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노론계열 친일극우파 세력이 철저히 왜곡했다는 것이다.
도발적이고 때로는 파격적 역사학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이덕일 소장을 만나 우리역사에 대한 수정이 왜 불가피한지 들어봤다.
-. 이 소장은 한국역사서 서술의 질적 전환을 이뤄낸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재야로 분류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은데
비판자들은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을 옹호하는 사람들, 이렇게 딱 두 부류다. 길게 보면 300여년, 짧게 봐도 100여년 동안 기득권을 누린 세력들인데 쉽게 포기하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사료적 근거다. 사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인데, 문제는 노론사관이나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사실을 조작한다는 점이다.
한 예로 모 정당 공천을 받았다가 취소된 사람이 ‘독립군은 테러단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는 실언이 아니라 일본 극우파 사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역사교육을 잘 못 받아 생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학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의도적이라고 봐야 한다.
최근 퇴임한 김용섭 교수가 자서전에 ‘여긴 아직도 총독부 세상이군’ ‘이병도는 광복 이후에 일본의 초청을 받아 천리교 도복을 입고 일본국교인 천리교 행사에 참석했다’고 썼다.
친일 식민사관을 두둔하는 세력들의 이론이 아직도 한국역사학계의 주류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이다. 내가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틀린 역사관을 반박하니까 나를 비난하고 재야로 분류하는 것이다.
-.저서 ‘조선왕 독살사건’을 보면 핵심주류가 노론이다. 노론을 반대하는 길을 걸었던 왕과 왕족들이 젊은 나이에 독살됐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효종이 송시열과 독대한지 한 달 만에 갑자기 죽었고, 현종도 정권을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꾸려다 34살에 죽었다. 소현세자는 귀국한지 두 달 만에, 장희빈 아들 경종도 30대 중반에,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서, 정조역시 재위 24년 만에 죽었다. 모두 의문사를 당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과 왕족이 사망하는 일정한 패턴이 나타난다. 노론편에 서거나 맞서지 않은 사람들은 제 수명을 누렸고, 노론과 맞선 사람들은 일찍 죽었다는 것이다.
내 주장이 아니고 실록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내용들이다. 책 내용이 흥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미약한 왕권과 강한 노론 정치집단이 어떤 사안을 두고 대립하다 왕이 갑자기 죽는 것으로 정리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독살이란 프레임을 가지고 조선 후기 정치사를 한번 바라볼 수 있겠다 해서 쓴 책이 ‘조선왕독살사건’이다.
-.심환지가 정조를 죽였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심환지는 정조를 땅에 묻고 난 다음날부터 남인들을 공격했다. 실록에는 ‘모든 형벌을 심환지가 주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선왕께서 저승으로 떠나시던 당일로 선왕을 배신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조가 죽고 나자 어의를 죽였다. 조선 전체 역사에서 왕이 세상을 떠났다고 어의가 처형된 예는 딱 두 번인데 효종, 정조 때뿐이다.
심환지가 독살 혐의를 벗으려면 정조 사망 이후에 개혁정책을 조금이라도 유지하려다 유배를 간다거나, 파직 또는 좌천되는 정치적 불이익을 조금이라도 당했어야 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나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선조와 이순신의 묘한 관계를 엿 볼 수 있다.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이견이 있는데 당시 정치상황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친명사대주의를 신봉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끝났다고 판단했고, 명나라에 가면 제후 대접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수많은 노비들과 백성들이 자진해 왜군에 투항했다. 이는 조선의 신분제도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한번 노비면 영원히 자자손손 노비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이 아니었나.
당시 유성룡이 면천법을 만들어 노비가 왜군 머리를 베어오면 노비의 멍에를 벗기고 신분을 상승시켰다.
이 법을 비롯한 여러 개혁안을 유성룡이 주도하면서 나라를 살렸다. 그러나 선조와 사대부들은 히데요시가 죽고 왜군이 철수하자 유성룡을 끌어내리려 했다.
이순신은 유성룡이 조정에 없으면 자기 또한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조가 이순신을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썼나.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무군지죄’라는 죄목을 들이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성룡과 남인들이 겨우 구해서 ‘백의종군’ 한 것이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한 날짜와 유성룡이 파직된 날짜가 같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실록에는 이순신이 전사했다고 보고하니 선조는 어떻게 죽었는지 묻지도 않고 ‘알았다’고만 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의병장 조경남이 쓴 기록에 ‘노량해전 때 이순신이 빨간 융복을 입고 진두에 서서 북채를 쥐고 지휘했다’고 되어 있다. 이는 이순신의 ‘자살설’을 암시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무장이 아닌 인간 이순신은 어떤 고뇌와 철학을 가슴에 품었을까
이순신은 글을 잘하는 선비적 소양이 강한 무관이었다. 그러다보니 목이 좀 뻣뻣하지 않았을까. 파직당하고 강등될 때마다 유성룡이 잡아 끌어줬다. 징비록을 보면 유성룡이 율곡이이와 만남을 주선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나하고 본관이 같아 오해소지가 있으니 만나지 않겠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당시 무관의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조차 만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많은 백성들이 울고불고 했다는 기록을 보면 백성들한테는 따뜻하고 겸손했던 위인으로 보인다.
정읍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형의 자식들을 데리고 가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일찍 죽은 형이 가난해 조카들을 키울 수밖에 없다며 거둔 것인데, 그런 부분들이 이순신의 인간적인 매력이 아닐까.
이순신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점지해준 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시험에도 번번이 떨어졌다. 이순신은 처음부터 위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으며, 스스로 노력해서 위인이 된 사람이다.
-.백의종군의 길을 떠나는 이순신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순신은 시대와 맞지 않는 비운의 영웅이었다. 선조시대는 쟁쟁한 인물이 많이 등장했을 때다.
선조는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가차 없이 죽여 버렸다. 아무 실체도 없는 정여립 사건 때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선조는 전쟁 때 도망 다니느라 바빴고, 나라가 살아난 것은 명나라 덕분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켰다. 반면 이순신은 공을 세워 백성들의 우상이 됐다. 선조의 눈에는 당연히 가시였을 것이다.
선조는 강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했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죽였다.
선조가 ‘무군지죄’의 죄명을 앞세워 죽이려 했을 때, 백의종군의 길을 떠나는 이순신은 자기가 곱게 죽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서애연보에 보면 이순신이 ‘시국일이 왜 이렇게 한결같이 이 모양으로 흐르느냐’고 한탄한 대목이 나온다.
-.독립운동에 관한 깊은 연구와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독립운동사를 재정립할 때가 됐다. 현 정권은 건국원년을 1948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아주 위험한 이야기다.
1919년 민중들의 주도한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나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도 충격이 컸다. 민중 스스로 그렇게 일어설 줄은 몰랐던 거다.
3.1운동은 ‘한국이 이렇게 하면 확실히 독립하겠구나’하고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다. 그 결과 1919년 4월에 상해 임시정부를 세웠다.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1919년을 임시정부 원년으로 봐야한다. 당시 독립신문에도 보면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썼다.
1948년도를 건국년도로 삼겠다는 것은 독립운동의 전통과 맥을 부정하겠다는 것인데, 일본 극우파의 논리와 같다. 당시 상해임시정부에는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가 존재했고, 실제 활동을 하는 병력과 행정부 의회가 존재했다. 사법부와 군대, 관할 한인들에게 세금도 받는 등 사실상 준 정부역할을 한 셈이다. 또한 국내진공 작전도 계속 펼쳤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동북아역사재단은 200여억원의 정부지원을 받는 단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역사재단 홈페이지에 한사군을 대동강 유역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잘못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라는 것인데 엉뚱하게도 중국이 주장하는 ‘한강이북은 중국 영토였다’는 내용에 동조하는 꼴이다.
초기에 ‘고구려연구재단’으로 시작한 명칭부터 잘못됐다. 예를 들면 ‘한국상고사연구재단’으로 시작하는 게 맞다고 본다.
프랑스의 경우로 보면 프랑스역사기관이 ‘나치만세’하는 것을 그냥 써놓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중국정부는 조직적으로 역사전쟁을 하는데 정작 국고를 지원받는 곳에서는 동북공정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론집단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와, 바로잡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그들은 수백 년 쌓아온 노하우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공부를 하고 통찰력이 있어야 ‘이 말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20여년 옥살이를 했던 독립군 출신 정이형 선생은 제헌헌법을 만들 때 친일파에 대한 신체적 형벌은 최소화하고, 공민권과 피 공민권은 광범위하게 제한하자고 주장했다.
정이형 선생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정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그렇게 됐다. 친일파들이 이승만과 손잡고 독립운동가들을 억압하고 거꾸로 다시 살아났다. 이승만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이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라는 책에 ‘한일합방 공로 수여자들의 본관과 소속당파목록’을 적어 넣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교과서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들어간 게 유신헌법 때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한 지배질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치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일본 극우파에서 출발하는 파시즘의 논리로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말이다.
-.교과서에 역사왜곡 흔적들이 있는데, 청소년들이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려면
교과서에 중상주의 실학을 노론출신들이 한 것으로 되어있다. 중상주의 실학의 선구자는 유수원인데, 그렇게 되면 유수원이 노론이 된다. 그런데 유수원은 노론한테 사형당한 소론 강경파 아닌가.
남인들이 중농주의 실학을 했으니까 노론은 중상주의 실학을 한 것처럼 왜곡해서 교과서에 넣은 것이다. 내가 문제제기 했더니 교과서 개정 때 노론문제를 빼면서 남인이 중농주의 실학을 했다는 내용도 함께 삭제해 버렸다.
노론이란 정치집단은 망한 명나라를 부둥켜안고 청나라를 거부한 세력이다. 중상주의 실학은 청나라를 배우자는 것인데 노론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이해가 안 되니까 무턱대고 외울 수밖에….
청소년들에게 가치를 추구하는 삶,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바로잡는 역사공부를 하다보면 어떤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역사공부가 철학공부도 되는 셈이다. 우리역사도 이제 서론 본론 결론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청소년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청소년용 역사책을 다시 쓰겠지만 우선 ‘장군과 제왕’을 권하고 싶다. 당나라에서 활동했던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다.
‘위대한 전쟁’이라는 책은 원 제목이 ‘오국사기’인데 삼국통일 전쟁에 대해 동아시아 넓은 개념으로 서술한 책이다. 삶의 기록인 역사가 재미있다고 생각이 들면 외국인들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가 어떤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 설명할 정도의 역사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 =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