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그 아름다운 세상 (3)

지역내일 2012-04-13 (수정 2012-04-13 오전 10:39:39)

아는 만큼 보이고 본 것만큼 사고하고 그 만큼 쓴다. 
우리의 교육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토론식 수업을 하지 않는데 있다. 사실 1994년 학력 고사에서 수학 능력 시험으로 전환된 것은 엄청난 변혁이었다. 토론식 수업을 장려한 수학능력 시험의 영향으로 ‘논리야 놀자, 반갑다 논리야’라는 책을 웬만한 가정에서 다 볼 정도로 당시의 변화는 대단했다. 그런데 수능 제도가 18년이 지난 지금도 극히 일부의 교사들만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교과서의 단원이 끝나고 나면 학습 활동에 앞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토론을 하거나 사고하기의 문제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교사들은 거의 토론을 하지 않는다.

토론식 수업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원래 모든 문화가 발전될수록 제공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변모해 간다. 근대의 계몽주의 소설에서 현대의 사실주의 소설은 그런 원리를 적용해서 변화해 왔다. 계몽주의 소설인 이광수의 무정은 서술자가 독자들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이광수를 비판한 김동인은 사실주의 소설들을 발표하면서 그냥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고 가치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남겨 두었다. 현대시도 이미지즘(주지주의)가 중심이 된 것은 시적 상황을 이미지로 제시하고 독자에게 상상의 기회를 준다. 이것이 현대 문화의 큰 틀이다. 그래서 교사는 이러저러한 상황을 소개하고 그것에 대한 판단을 학생들에게 맡겨 그들이 스스로 토론하게 하는 게 발달된 현대 서구 교육의 큰 틀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 교육은 현대화되지 못하고 근대에 머물러 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수학과 교수를 우연히 만나 한국 교육의 특징을 물었더니 세 가지를 이야기하여 필자를 놀라게 했다. 첫째 ‘Korean students are very polite, and they are very calm, and they are very shy''라고 했다. ‘한국 학생들은 예의바르고 새벽의 고요처럼 정적감이 흐르고 또한 매우 부끄러워 한다.’ 정확한 지적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이 얼마나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강의하기에 가장 편리한 나라가 한국이 아닐까 한다. 독일의 경우는 하버마스와 같은 대 철학자만 주입식 강의를 할 수 있는데 우리의 교육 현장에는 모두가 하버마스와 같은 대철학자다. 주입식 교육은 교실에 교사는 있지만 학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논리적 타당성과 내용의 건전성을 비판받고 비판하는 것이 있어야 학습자는 교육의 주체가 된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풀어내야
  논술을 가르치다 보면 내신 성적만 좋고 수능이나 논술에 취약한 학생을 발견하게 되는데 대부분 선생이나 부모가 좋아할 스타일의 학생이 많다. 말 잘 듣는 범생이는 아무래도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 비판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게 세상을 주어진 여건대로 조용히 사는 것도 삶의 한 방식으로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실존적 자아로 성숙하기 어렵거니와 창의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학생은 논술을 제대로 풀지 못한다. 논술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은 토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토론을 통해서 논의해야만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검토하고 다른 학생들의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 타당성과 내용의 건전성을 지니고 있는지 판단을 할 수 있다. 논술은 분석도 정확해야 하지만 잘 써야 한다. 표현까지 해 내려면 문제 상황을 그냥 이해를 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주입만 받다보니 자기 스스로 아는 것을 표현하는데 무척 힘들어 한다.
 학력고사 시대에는 암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수능과 논술은 암기가 아니라 창발적인 사고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논술은 특히 아는 것을 논리적, 체계적으로 조리 있게 써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암기한 사람, 이해한 사람, 실제 자전거를 타 본 사람 중에 누가 자전거 타는 방법을 설명하거나 자전거 타기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 당연히 타 본 사람이다. 그 원리가 토론식 수업이다. 문제에 대해서 논술 강사가 설명을 다 해주고 이렇게 저렇게 써야 한다고 주입하는 교사는 이 원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수업을 하면 학생은 배운 것만 이해하고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나오면 분석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고 만다. 얼마 전 공공재에 대해서 토론하는데 공공재가 어떤 것이 있는지 말해보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가로등, 도로, 항만 등 교과서에 있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병원’, ‘학교’등을 발표한 학생이 있어 교육과 의료가 공적 기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창의적인 학생은 ‘김태희, 원빈’을 말해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의 충돌을 더 넓게 사고할 수 있었다. 토론식 논술 수업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틀이다. 

이성구 원장




그래서 논술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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