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기를 매각하기로 하고 계약금 및 중도금을 받았음에도 이를 다시 제3자에게 매각한 사건이 있었다. 최초의 매수인은 매도인을 배임죄로 고소하였고 검찰에서도 배임죄로 기소하였다. 1심에서는 2차 매도를 하면서 1차 매수인이 매매대금을 지급하면 제2매도를 무효로 하고 돌려받기로 하였기 때문에 배임죄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동산의 이중매매는 무조건 배임죄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배임의 고의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대법원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렸고 전원합의체로 회부되었다. 다수의견은 항소심과 같이 배임죄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고 5명의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내면서 배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대법원에서 의견이 나뉜 이유는 부동산의 이중매매와 관련이 있다. 대법원은 부동산을 매도하고 중도금까지 수령한 경우에는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 이전등기를 해야 하는 타인 사무의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이를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면 배임죄가 성립된다는 일관된 판결을 해 왔기 때문에 부동산이 아닌 인쇄기와 같은 동산의 이중매매도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하는지 문제가 되었다.
대법원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동산은 부동산과 달리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판례는 부동산 이외에 면허권·허가권, 채권 등의 이중양도의 경우에도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고 있는데 유독 동산에 대하여만 배임죄가 되지 않고 단순한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관 5명이 반대의견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이나 동산이나 모두 재산의 매매행위이고, 동산이라고 하더라도 가격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기계가 있기 때문에 매도인의 배신행위를 처벌할 필요성은 동일하기 때문에 동산의 이중매매도 배임죄를 처벌하여야 한다는 것이 반대이유의 요지였다.
매매계약을 하더라도 가등기를 하지 않으면 잔금을 지급하고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교부받기 이전까지는 소유권 이전을 확실하게 보장 받을 수 없다. 가등기를 잘 하지 않는 우리나라 거래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매도인이 중도금까지 지급받았음에도 이중으로 매도하는 배신행위를 한 경우에는 부동산이나 동산 모두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매도인의 배신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할 필요성도 매우 높다. 판례에 의하면 동산의 이중매매는 처벌할 수 없다. 고가의 동산매매를 할 때 미리 계약금과 중도금을 지급하지 말고 중간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인도를 받을 때 한꺼번에 지급되도록 하는 에스크로우 제도를 이용하면 이중매매로 인한 손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이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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