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속도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실버세대’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는 노인들의 활기찬 삶을 위해 노인 일자리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소위 ‘청년백수’가 넘쳐나는 요즘 60~70대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말 그대로 별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든 일. 이런 현실에서 당당히 구직에 성공한 평균 연령 67세의 할머니들이 있다. 바로 석촌역 8번 출구 지하에 위치한 ‘청춘 주먹밥’의 주인공들이다.
주먹밥 3인방이 모이다
‘청춘 주먹밥’은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송파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한 사업. 사업진행을 위한 종사자를 모집했을 때 40여명의 어르신들이 지원할 만큼 큰 관심을 모은 사업이다. 송파노인복지센터는 신청자의 경력과 의지, 사업 취지에 대한 이해도, 상담사의 의견 등을 수렴해 5명의 종사자와 5명의 예비종사자를 선정했다. 현재 ‘청춘 주먹밥’에는 3명의 할머니들이 일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주먹밥을 만들고 국수를 삶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활력이 느껴진다.
송파노인복지회관에서 일어와 영어, 오카리나, 하모니카 등 다양한 강의에 참석하며 외손자를 봐주고 있던 김유미(67·삼전동) 할머니. 외손자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뭔가 할 일을 찾던 중 복지관 광고를 보고 이번 사업에 신청서를 냈다.
“처음 제가 뽑혔다는 연락을 받고는 걱정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곧 ‘일단 해보자’는 용기가 나더군요. 전업주부가 된 지 40년 만에 제 일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송파동에서 16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다 2008년 11월 은퇴를 감행한 김정숙(67·송파동) 할머니. 식당일에 질려(?) 식당을 그만두고 3년 가까이 집에만 있었다. 그러자 곧 우울증이 찾아왔다. 지난해 학교급식도우미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우울증이 없어졌다.
“다시 일을 한다는 게 정말 좋습니다. 할 일이 없을 땐 매사에 의욕도 없고 마음이 우울했었는데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우울증이 싹 사라졌습니다.”
단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보지 않았던 이유기자(69·문정동) 할머니도 취업을 위한 좁은 관문을 통과했다. 2년 전 대장암 수술까지 받은 상태지만 일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언젠가부터 ‘내 일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꿈을 이루게 되어 정말 좋습니다. 수술로 몸은 좀 피곤하지만 노력으로 충분히 잘 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3인방, 청춘 주먹밥을 만들다
이들 3명은 2월 중순부터 식당 일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위생교육을 시작으로 메뉴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도 가졌으며, 메뉴를 선정하는 데에까지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메뉴가 주먹밥과 잔치국수, 비빔국수이다. 참치와 멸치, 불고기, 스팸 등 다양한 속 재료를 넣어 만든 주먹밥은 제법 커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할 정도. 여기에 국물맛이 시원한 잔치국수와 매콤달콤한 양념맛이 어우러진 비빔국수도 별미다.
김정숙 할머니는 “모든 재료가 국산이고 매일 신선한 재료만 구입해 사용하니 음식은 정말 어디 내놔도 떳떳하다”고 청춘 주먹밥을 자랑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8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직장인 이곳에서 이들은 열심히 청춘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생활의 작고 행복한 변화, 노인 일자리 많은 생겼으면
김유미 할머니는 청춘 주먹밥에서 만든 주먹밥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본다. 또 스스로 생각한 재료를 넣어 더 맛있는 주먹밥을 만들려 노력해보기도 한다. 그 노력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손자.
“주먹밥을 만들어줄 때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치즈나 스팸 등 손자가 좋아하는 것을 넣어 아이 입맛에 맞게 만들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자식들의 만류에도 ‘내 인생을 스스로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김정숙 할머니는 월급으로 손자들 용돈 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하다고.
“자식들은 하지 말라 했지만 주위에서는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손자들 용돈도 제가 벌어 줄 수 있으니까요.”
이유기자 할머니는 월급으로 “노숙자를 위한 일에 후원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직장을 얻고 그 직장에서 큰 만족을 얻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을 부러워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 세대는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살던 그 시절, 고생도 많이 했죠. 또 여자라는 이유로 못해본 것도 많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 그런 자신만의 일을 펼쳐보고 싶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습디다.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좀 늘려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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