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로 다져 온 동갑내기 부부의 삶

땀의 결실로 맺은 소리없는 봉사와 조용한 내조 돋보여

지역내일 2001-12-26
●송년인터뷰-이정자 여사(김병량 성남시장 부인)
초등학교 교사 시절 만난 교장선생님 댁
큰아들
이정자 여사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김병량 시장을 만난 것도 그 당시의 일이다.
“저희 집은 전주 시내에 있었어요. 사범대학 졸업 당시 병역관계로 남학생들에게 먼저 발령을 내주고, 한 3개월 기다리다가 발령을 받았는데 그 곳이 시내에서는 좀 떨어진 봉동초등학교(전라북도 완주군 봉동면 소재)였죠. 아마 시장님을 만나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 교무주임과 연구주임이 틈만 나면 “중신 설까?”라고 말씀하셔 웃어넘기곤 했는데, 그때 이 여사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하루는 교무주임이 집에 가봐도 되겠냐고 하시더니, 교장 선생님 사모님이 집으로 찾아 왔어요. 너무 놀랬었죠. 알고 보니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눈여겨 보셨더라구요.”
바로 당시 교장 선생님의 장남이 김병량 시장이다.
당시 고등고시를 준비하던 김 시장은 토요일이면 집에 오곤했다.
“하루는 방과 후 혼자 풍금을 치고 있는데, 그 동네에 사는 선생님 한 분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그 친구분의 인상이 얼굴이 선하고 말하는 내용이 매우 똑똑하고 야무져 보인다 싶었죠.” 이것이 이 여사와 김 시장의 첫 만남였다.
교장 선생님 사모님이 집에 다녀간 후 어른들 사이에 자연스레 혼담이 오고 갔고, 우선 약혼식을 올린 후 정식으로 교제가 이루어졌다.
방과 후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에 들어서면 언제 왔는지 김 시장이 빈 교실에 앉아 있었고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배워 나갔다는 이 여사는 옛 이야기를 떠올리며 수줍은 듯 웃는다.
다섯가지 김치가 오르는
아침밥상
이 여사의 하루는 아침식사 준비로 시작된다. 슬하의 3형제를 모두 독립시킨 단출한 살림이지만 성남시 살림을 꾸리느라 바쁜 남편을 위해 이 여사는 한번도 아침 상차림을 거른 적이 없다.
김 시장 댁의 자랑은 김치.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는 기본이고 평상시에도 다섯가지의 김치와 구수한 된장찌게가 상에 오른다.
“평생을 공직자로 살아오며 점심을 거르기가 일쑤였습니다. 특히 시장이 된 후 많이 야위었습니다. 100만 시민의 살림을 꾸리는 일이 힘들고 맘 고생도 많은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괜히 안쓰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침상은 꼭 자신의 손으로 차린다.
시장 당선 된 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정자 여사의 속이 더 새까맣게 탔다. 최근 불거진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에 관한 일련의 언론보도는 이 여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와 체중이 6kg이나 감소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나는 잘못이 없고 투명하니,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 꿋꿋이 생활하라”는 김 시장의 위로가 큰 힘이 됐다.
“동갑내기 남편과 3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남편에 대한 믿음을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한번도 가장으로 아버지로 제 남편으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기에 시장님을 믿고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맞벌이로 마련한 집한칸
김병량 시장이 공직자로 한길을 걸어 온 데에는 부인 이정자 여사의 도움이 컸다.
결혼 후에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남편을 내조했던 이 여사는 72년 서울로 이사오며 퇴직한다. 이때 받은 자신의 퇴직금과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아들 삼형제를 키운 이 여사의 적극적인 내조로 김 시장은 오늘처럼 편안히 시정에 전념할 수 있었다.
“유난히 자신에게 엄격한 편입니다. 내무부 근무시절 아이들이 좋아하는 종합선물세트, 남들이 다 받는 설탕 한포대 쌀 한포대 한번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맞벌이라도 했으니 이나마 집 한 칸이라도 있다”고 말한다. 유난히 효심이 깊었던 김 시장은 시어머니에게 서운한 일이 있을 때면 매번 시어머니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도 단둘이 있을 땐 슬며시 손을 잡곤했다는 김 시장.
“예전엔 남편에 대해 서운함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면 아이들이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유독 제게 잘하는 것을 보면 이젠 참 좋네요”라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모두 3남을 둬 현재 큰 아들은 강남시립병원 신경내과 근무 중 교환교수로 미국에 나가있으며, 차남은 영국에서 금융관련 분야를 공부 중이다. 막내는 현재 국내 모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

조용한 내조 소리없는 봉사
조용한 내조로 유명한 이 여사의 유일한 바깥 나들이는 ‘콩심회’라는 모임을 위해서다.
성남시 공무원 부인들과 함께 하는 이 모임은 자신들의 힘으로 직접 콩을 심어서 메주를 담가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 그래서 모임 이름도 ‘콩심회’.
성남동 4통에 밭을 얻고 농촌지도소의 조언을 받아 정성껏 콩을 심었으나, 토양이 녹녹치 않아 올해엔 고구마를 심었다. 이 고구마는 시 여성복지과를 통해 외국인노동자의 집과 독거 노인 등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또한 이 여사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10여명의 소년소녀가장에게 매월 10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다. 교사 출신으로 아직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남아서인지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한다.
“예전에는 남편과 함께 중앙공원을 산책하곤 했는데 요즘은 영 짬이 안난다”는 이 여사는 요즘 서현동 문화의 집에서 주민들과 함께 일어를 배우고 있다.
많은 얘기들을 두런두런 나누고 싶고 같이 손주들의 재롱도 보고 싶다는 이 여사는 무엇보다 남편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며 “성남시민들이 화목한 연말연시를 맞이하기를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정기·정재은 리포터
miz-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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