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 군의 첫인상은 밝았다. 웃을 때마다 입가에 보이는 보조개가 앳된 외모와 잘 어울렸고 스트레스에 찌든 고3 수험생의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저는 화려한 대외 활동 경력도 없고 그냥 학교만 열심히 다녔어요. 내 이야기가 기삿거리가 될까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군은 무척 쑥스러워하며 말문을 열었다.
데생하며 키운 집중력이 내 경쟁력
초등학교 통틀어 피아노와 미술학원 외에는 일체의 사교육을 받지 않았고 영어공부도 집에서 CD 듣고 동화책 읽은 게 전부였다는 이군. 당연히 선행학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동북중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3등, 그리고 전교 1등으로 졸업했다. 최상위권 성적은 고교 입학 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수학 등 꼭 필요한 과목 외에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한다.
공부 비법은 ‘순간 집중력’. “승민이는 공부에 악착을 떠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대신 책에 몰입할 때는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꿈쩍도 하지 않아요.” 이군 어머니가 귀띔한다. 집중력은 초등학교 때 배운 미술과 피아노가 큰 도움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엄마를 졸라 5학년 때부터 동네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데생만 할 만큼 그림에 몰입했어요.” 세밀화에 특히 능해 고양이, 공룡 등 온갖 정교한 동식물 그림들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끈기, 집중력, 공간 지각력이 길러졌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갈고 닦은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다. 체르니 50번까지 마스터했고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 꿀만큼 음악가를 동경했다. 지금도 울적할 때면 피아노를 치며 기분을 달랜다고. “돌이켜보면 공부에 신경 쓰지 않고 미술과 음악에 빠져 지냈던 초등학교 시절이 감수성과 생각하는 힘을 키우며 ‘인간 이승민’의 기초를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군은 의젓하게 답한다.
해부학 책 따라 그리며 인체에 관심
그림에 대한 애착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학교 만화창작부 동아리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림은 이군의 장래 진로 결정에 큼 영향을 주었다. 중학생 무렵 간호학을 공부하는 누나의 전공서적을 뒤적이다 ‘인체해부학’ 책에 시선이 꽂혔다. 인체의 온갖 내장기관, 온몸을 뒤덮은 섬세한 실핏줄과 근육을 담은 사진에 매료되었고 틈 날 때마다 따라 그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장래 진로를 의예과로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에서 개최한 경희대 약학과 교수님 초청 강연회에서 의학과 전기공학이 결합된 공학수술과 학문간 융복합 트렌드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죠. 시력을 잃은 환자에게 인공시신경을 이식시키는 등 전자공학을 접목시킨 신경외과의사가 내 꿈입니다.”
교내 프로그램 알차게 활용
승민군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내 활동을 100% 활용하고 있다. 학교에서 주최한 연구논문 공모전에 꾸준히 참여 1학년 때 동상, 2학년 때는 금상을 탔다. ‘염색체와 DNA 복제’ 라는 테마를 가지고 3명이 팀을 이뤄 10개월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방학 중에는 상명대 연계 프로그램을 신청, 대학교수들에게 이론을 배운 후 DNA 검출 등 여러 실험을 직접 해보며 논문의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논문에 SF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 팀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40페이지 분량의 글을 완성했어요. 또 심사위원들 앞에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 연구내용을 발표했는데 꽤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토요일 진행하는 방과후 학교의 과학 논술 프로그램도 알차게 이용하고 있다. 물리, 화학, 생물, 수학 교사들 간 팀티칭 형태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논술의 기본기를 착실하게 다지고 있는 중이다.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며 만화 속에 나타난 물리적 오류를 발견해요. 우주 공간에서는 실제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폭발음이 난다든지 하는 ‘과학적 넌센스'' 장면을 찾아내죠. 실생활과 연결시킨 과학 심화 수업이라 재미있어요. 게다가 입시논술에 자신감도 붙었죠.”
자승자강(自勝自强). 그의 방에 붙어 있는 글귀다. “스스로를 이기는 자가 강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문 선생님이 직접 써주신 붓글씨에요. 늘 그 의미를 곱씹어요.” 고교 입학 직후 ‘1등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나빠져 한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그 때의 성장통이 승민군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3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요. 의사란 꿈을 이루기 위한 첫 관문이니까요. 어렸을 때 후두염이 악화돼 인공호흡기까지 달만큼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어요. 당시 인턴들이 ‘혈루가 막혀 큰일이다’ 등 온갖 전문용어를 섞어 말하며 나를 겁먹게 만들었어요.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도 훗날 나는 꼭 환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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