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되면 엄마들은 ‘담임선생님이 누구일까? 우리 아이가 어떤 친구랑 같은 반이 될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어디까지나 운명(?)이다. 좋든 싫든 적응해야 하는 것이 순리. 그 순리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지금, 학교는 반장선거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아이가 아무리 비주류라도 한번쯤은 살짝 기대해 보는 반장선거. 요즘은 선거에 나가지 않는 아이가 더 적다는데···. 아이 반장선거에 연설문 쓰는 엄마, 피자에 콜팝 쏘기까지 다양하다. 반장선거에 얽힌 이런 저런 사연들 속에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뒤돌아 봐야 할까?
김부경·이수정 리포터 thebluemail@hanmail.net
비주류 엄마는 주류 아들을 원하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소극적인 성격으로 남 앞에 나서길 싫어했던 주부 신은희(41·수영동)씨. 아들만큼은 활발하고 적극적인 남편을 닮았으면 했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리 뜻대로 되나···. 아들 또한 적극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번 학기 반장 선거에서 아들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고 싶었던 신씨. 반장만 되면 팍팍 밀어주리라 생각했지만 아들은 관심조차 없다. 비주류 아들 한 번 주류로 만들고 싶었던 엄마 속만 상하는 새 학기다.
남편은 온갖 모임에 참석해 가는 곳마다 주류다. 주류 남편 지켜보는 것도 이제 힘들다는 신씨. 주류 되라는 아들은 왜 늘 비주류인지···.
“제가 소심한 성격이라 사회생활에서 좀 고생을 했죠. 아이만큼은 활발하고 적극적이길 간절히 원했는데···. 온갖 사회생활에서 주류로 뛰는 남편 보는 것도 지겹고 어리벙벙한 아들 보는 것은 더 괴로워요. 이런 아들 반장되길 바란 게 엄마 욕심일까요?”
“애살 많은 아들 덕에 고생 좀 했죠.”
평소 느긋한 성격에 사람들 살뜰히 챙기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진숙(43·남천동)씨. 남들 앞에 나서기 꺼려하는 자신과는 달리 애살 많은 아들은 항상 친구들을 리드하면서 챙기는 성격이었다는데. 그런 김씨가 아들 덕에 팔자에 없는 감투를 쓰게 됐다.
“6학년이 되더니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이 되더라고요. 이제껏 학교 일이라고는 전혀 안 해왔는데 눈앞이 깜깜해졌죠. 게다가 회장 엄마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 잘못하다가는 주부인 제가 완전 뒤집어쓰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아주 야무진 엄마를 총무로 영입(?)했어요.”
초등학교 행사가 학부모 몫인 경우가 많아 일 년 내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는 해요. 일은 당연히 빈틈없이 처리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결국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게다가 학교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다른 엄마들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게 됐죠. 그동안 무관심했던 것도 반성했어요.”
걱정과는 달리 바쁜 회장을 도와가며 한 학년 살림을 잘 꾸려나갔던 김씨. 이제 학교 일이 두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발 아들이 대표는 맡지 말았으면 한다는 속내를 비쳤다.
아들, 딸 반반 섞었으면···
6학년 아들과 3학년 딸을 둔 양숙지(40·민락동)씨는 성격이 정 반대인 자녀들 때문에 고민이다. 매사에 소극적인 아들과 너무나도 적극적인 딸을 키우다보니 부딪힐 때가 많단다.
“평소 내성적인 아들의 성격을 좀 바꿔보려고 반장이나 회장 선거에 도전하길 권유해봤지만 묵묵부답이에요. 오히려 3학년인 딸이 벌써부터 회장이 되겠노라 다짐을 할 정도죠. 학원을 등록할 때도 아들은 무조건 싫다하고 딸아이는 무조건 시켜달라 하니 난감할 때가 많아요.”
첫째인 아들이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한다는 양씨는 아들과 딸아이의 성격을 반반 섞었으면 좋겠단다. 어릴 때부터 늘 적극적이었다는 양씨는 딸을 보면 자신을 보는 듯하다. 반대로 아들은 남편 성격을 닮았다. 휴일이면 놀러가는 장소를 정할 때도 양씨와 딸, 남편과 아들 두 편으로 의견이 나뉜다고.
“남편과 저의 성격을 골고루 섞은 합작품(?)이었으면 얼마나 멋졌을까요? 하지만 남편도 적극적인 저와 살다보니 성격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아들도 곧 우리의 세계에 물이 들겠죠?”
개구쟁이도 모범생 만드는 ‘반장’
초등 4년생 학부모 박희진(39·용호동)씨는 얼마 전 아들 반 반장 선거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후보가 10명 나왔는데 그 중 한 아이가 반장이 되면 한 달에 한 번씩 콜팝을 사겠다고 말해 몰표를 받았다고 한다. 은근히 반장이 되고 싶어 연설문까지 준비한 아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아이들 선거지만 좀 문제가 아닌가 생각했던 박씨는 아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난감했다고 한다.
반장 선거 일주일 후, 아들은 “우리 반 반장 원래 개구쟁이였는데 요즘 완전 모범생 됐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반듯하고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반장하던 것도 이제 옛말이다. 자리가 사람 만든다고 ‘반장’이라는 완장에 개구쟁이가 모범생이 될 수도 있다.
“엄마는 조금 부담스러워도 아이 인생에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금품(?)으로 선거 유세는 하지 말아야겠죠?”
“나 이제 편안하게 공부하고 싶어.”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이지영(45·좌동)씨. 중학교 내내 반장을 지낸 딸이 당연히 반장선거에 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거 전날 딸 아이가 “이번엔 반장 선거 안 나갈 거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부터 입시에 좋은 스팩이 될 수 있는데···. 이런저런 말로 딸을 설득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딸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나 이제 편안하게 공부하고 싶어”였다고.
막상 딸이 반장이 안 되니 섭섭하고 뭔가 손해 보는 기분까지 들었다는 이씨. 하지만 예전에 비해 여러모로 편안해 하는 딸을 보며 느낀 바가 많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리더하는 반장으로 배운 점도 많겠지만 딸아이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요즘은 자율학습시간에 편안해서 너무 좋다는 딸아이 말에 안쓰럽더군요.”
이씨는 엄마가 욕심을 버리면 아이가 더 많은 걸 얻는다고 말한다. 덕분에 이씨도 신경 쓸 일 줄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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