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선생님의 색다른 국어 수업
스스로를 ‘딱따구리’라 소개하는 배성우 교사(39세). 장난기 서린 동안 얼굴에 유머스러운 입담이 인터뷰가 깊어질수록 ‘딱따구리’와 꼭 닮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교사, 학생 모두 수업이 즐거워야 한다. 학생 스스로 지식을 쌓아나갈 줄 알아야 한다. 실생활과 밀접한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국어 교사 10년차인 그가 자신만의 ‘수업 3대 수칙’을 맛깔나는 설명을 곁들여 들려준다.
‘생각과 표현’에 집중된 국어 수업
햇병아리 교사 시절. 뼛속부터 문자 세대인 교사와 모니터 화면 속 텍스트에 영상과 소리가 어우러져야 반응하는 디지털키드인 학생들 사이에는 마치 화성인, 금성인처럼 ‘소통’이 어려웠다.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아이들 언어’를 공부했습니다.” 가수 루시드 폴의 노래 ‘사람이었네’, 애니메이션 ‘공각기공대’, 영화 ‘괴물’ 등 다양한 소재를 국어 시간에 풀어놓았다. “내 성격상 지루하고 재미없는 건 못 참아요.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 등 다양한 매체 속에 무궁무진한 수업 소스들이 널려 있었어요.” 가령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정체성을 ‘뮬란’에서는 여성성 코드에 주목해 아이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는 식이었다. 색다른 국어 공부를 위해 그가 수업준비에 쏟는 공력은 상당하다.
‘생각해 볼 문제 제기-매체 감상-대화와 토론-글로 정리하기-발표’는 그의 수업의 기본 패턴. “3월 첫 수업 때는 학생들이 당황해요. 교사가 말해주는 대로 받아 적는 식의 수업에 길들여져 다들 ‘필기 도사’들인데 자꾸 생각해서 말하기를 주문하니까 힘들어하죠. 하지만 모둠끼리 토론수업에 적응이 되면 아이들의 사고력은 쑥쑥 성장해요.” 학생들이 공동 창작한 소설문집, 시를 배운 뒤 감상을 플래시로 제작한 영상물을 보여주는 배 교사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묻어난다. “문제집 많이 푼다고 수능시험에서 언어 점수가 올라가지는 않아요. 생각하는 힘부터 길러야 합니다.” 각종 시험 문제 출제와 검토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그만의 독특한 국어 수업에 노련하게 녹아나 있다.
그가 도입한 ‘매체를 통한 국어교육’은 전국 각지의 국어교사들 사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각종 교사 연수에 강사로 나갈 때 마다 외장하드를 들고 다니며 그동안의 노하우가 담긴 수업자료를 파일 째 몽땅 복사해 주고 와요. 교사들끼리 서로 공유해야 토론 수업이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교사들 사이에서 ‘튀는 존재’였던 그는 혁신학교인 선사고 개교 소식을 전해 듣고 곧바로 학교를 옮겼다. 선사고에는 배 교사와 뜻이 통하는 배짱 좋은 교사들이 많다. 지난 1년간 토론수업, 학생들이 주축이 된 논문발표와 포럼진행 등 실험적인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교사들이 앞장 서 열정을 보이니까 아이들도 바뀌어요. 은연중에 ‘우리 학교’라는 단단한 결속력이 생겼고 교사와 학생 간에도 무척 친해요.” 그에게서 선사고 교사라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26살의 늦깎이 대학생, 교사 꿈 이뤄
배 교사는 초중고 모두 송파 지역에서 다녔다. 학창시절의 꿈이 선생님이었냐고 묻자 싱긋 웃으며 파란만장하게 보낸 자신의 십대시절을 들려준다. “중고교 시절엔 공부와 담 쌓은 ‘노는 아이’였어요. 고등학교 때 성적은 반에서 꼴지를 맴돌았지요.” 당시 ‘학생 금지 구역’을 두루 섭렵하며 원 없이 놀았고 수업시간에는 ‘딴 짓’을 했다. “공부는 죽어라 안했지만 소설, 사회과학서 등 온갖 책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어요. 그때의 ‘독서 경험’이 살면서 많은 힘이 되고 있어요.”
고교 졸업 후에는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경험했다. “호텔 서빙, 뷔페식당 직원, 차선 긋기 아르바이트, 나중엔 용접 기술을 배워 전국의 공사판을 전전했어요.” 용접 기술자가 되면서 돈도 꽤 벌었지만 마음 한쪽이 늘 허전했다.
‘앞으로 뭘 하고 살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어린 시절 꿈을 더듬어 보다 불현듯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일단 대학부터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바로 재수학원에 등록해 미친 듯이 공부했다. 수능 공부 3개월 만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합격했다.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뒤늦게 ‘학문의 재미’에 빠져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공부에 몰입, 임용고시를 거쳐 서른 살에 그토록 원하던 ‘선생님’이 되었다.
‘당당하게 살라’ 제자들에게 강조
“고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공부 꼴지를 하면서도 늘 자신감이 넘쳤어요. 문제아였던 탓에 우리 어머니에게 혼도 많이 났지만 ‘너는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늘 세뇌 당하듯 듣고 자랐기 때문인 듯해요.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내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해요.” 범상치 않은 10대를 보낸 덕분에 그는 ‘문제 학생’들과 코드가 잘 맞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든든한 선생님’이 되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의 명함에는 ‘실천하는 지식으로 사고하는 행동으로’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학생들 앞에 서기 전 늘 마음속에서 외는 주문이다. ‘선사고 선생님’인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하는 배 교사는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늘 자정 무렵에 퇴근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쳤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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