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눈에 보일까말까 하는 가느다란 실뱀장어가 꼬물거리며 밀물에 몰려들었다. 가을에는 갯고랑에 팔뚝만한 망둥어가 뛰었다.
물 빠진 갯벌에서 칠게 농게 맛조개를 쫓다보면 하루해가 짧았다. 저녁 무렵, 철새 한 무리가 붉은 해를 배경 삼아 그림을 그리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봄이 오면 실뱀장어가 걸매리 앞바다를 채울 겁니다.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것도 재미나지요”
신명이 난 박용규((62·아산시 인주면) 어촌계장은 갯벌자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박 계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아산시가 인주면 걸매리 갯벌을 매립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이 마을 어민들은 근심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16일 복기왕 아산시장은 걸매리 갯벌을 매립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복 시장은 이날 갯벌의 보존가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걸매리 갯벌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황해경제자유구역에 포함시키고 주민들의 삶터와 우량농지를 제외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아산시가 한국연안환경생태연구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걸매리 일대 갯벌은 이미 오염이 심해 갯벌의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주면 어민들과 아산시 시민단체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개발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갯벌 매립에 따른 부작용이 얼마나 클지 정확하게 검토하지도 않고 급하게 매립부터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용규 어촌계장은 “죽은 갯벌에 어떻게 실뱀장어가 찾아오고 숭어, 망둥어가 뛰겠느냐”며 “살아 있는 갯벌을 왜 자꾸 죽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걸매리 갯벌 매립추진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아산시는 2007년 10월 대림산업(주)과 손을 잡고 갯벌을 매립해 석유화학, 비금속, 금속가공 등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시민단체의 반대에 떠밀려 사업을 유보했다. 하지만 걸매리 갯벌을 매립하겠다는 아산시 정책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 갯벌의 무한한 가치 재조명해야 =
매립에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다. 경제가치를 높이고 지역개발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에 찬성하는 쪽이다.
하지만 어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매립을 통한 경제적 이익보다 개펄을 활용해도 경제적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 어촌계장은 “걸매리 개펄이 보령개펄보다 부드럽고, 조개나 갯벌 생물이 많아 아이들 체험활동 장소로 적합하다”며 “바다가 주는 자연환경을 활용해도 경제가치가 충분한데 왜 자연을 훼손할 생각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박 계장은 “아무리 돈이 좋아 개발을 한다지만 살아있는 자연을 죽이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걸매리는 아산시에 남아 있는 마지막 갯벌이다. 1970년대 아산방조제와 삽교방조제가 들어서면서 황폐해졌던 곳, 하지만 갯벌은 30여 년의 긴 시간을 지내며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왔다. 심호흡 끝에 이제 조금씩 고른 숨을 내쉬려는 찰나, 갯벌은 다시 위협받고 있다.
“걸매리 갯벌은 어민들의 삶입니다. 매립은 주민들의 삶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박 어촌계장과 어민들의 마음이 갯벌 앞에 걸린 붉은 현수막에 내걸려 펄럭였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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