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에서 철 지난 영화나 틀어주는 것 아니야?"
2년 전 멀쩡하던 문예회관을 고쳐서 영화관을 만든다고 할 때 주위 반응은 냉랭했다. 인구 2만3000여 명에 불과한 시골에서 영화를 보러 다니는 주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우려가 앞섰다. 타 지자체 관계자들도 매년 들어가는 영화관 운영비를 어떻게 감당하려느냐며 냉소를 보냈다.
전북 장수군의 문예회관인 ''한누리전당''에 영화관이 들어선 지 1년, 상황은 반전됐다.
지난 1년간 2만3120명이 한누리시네마 관객으로 다녀갔다. 초대장이나 초청장으로 오는 공짜손님이 아닌 5000원(일반영화. 3D 8000원)짜리 티켓을 끊고 입장한 순수 관객이 군민 수 만큼이다. 관람료만 10억8300여만원에 달한다. 시큰둥하던 타 지자체 반응도 달라졌다. 강원도에서, 전남에서 산골영화관을 배우겠다며 달려오고 있다. 전북도는 장수군의 모델을 참고해 올해 도내 농촌지역에 2개의 작은 영화관을 만들 계획이다.
◆ 도심과 같은 개봉작 상영관 =
장수군은 지난 2010년 11월 문예회관 1층을 영화관으로 개조했다. 2007년에 완공한 문예회관은 수영장과 헬스장, 실내체육관이 포함된 군 유일의 문화시설이었다. 장수를 포함한 전북 동부산악권에 영화관이 전무한 실정과 ''개봉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주민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규모를 줄이되 편안한 관람석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6억원을 들여 36석, 54석의 2개 상영관과 3D 등 첨단 영상장비를 갖췄다. 전기요금 등 공공운영비는 군청이 책임지는 대신 영화관 위탁업체엔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운영을 맡은 ''글로벌미디어테크''는 도심 영화관과 같은 개봉작 상영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개봉작 상영관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관람객이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61편의 개봉작을 상영했다. 2주마다 3편의 신작이 내걸린 셈이다. 장수군민 뿐 아니라 인근 남원시나 전주에서도 여행 삼아 극장을 찾는이들도 생겼다. 물론 관람료 5000원에서 저작권료로 배급사에 넘겨야 할 3000~3900원과 기금, 세금 등을 제하고 나면 수익을 낸다고는 볼 수 없다. 글로벌미디어테크 김선태 대표는 "수익보다는 불모지에 영화관을 늘린다는 취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영화시장을 키우고 영화불모지를 바꾸는데 월 50~100만원 정도의 손실이라면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문화소외지역이 영화1번지로 =
무엇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도시와 똑같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었다. 단체 모임 후 뒷풀이로 영화를 보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전국 86개 군 단위 지자체 사정이 그렇듯 저소득층의 문화활동을 위해 연간 5만원에 지원하는 ''문화바우처''를제대로 쓸 곳이 생겼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서점이나 공연장이 주 사용처지만 농촌지역에선 쓸 곳이 마땅찮다. 청소년들이 인터넷 음원사이트에서 노래 내려받는데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영장이나 체육관 이용을 돕기 위해 장수군 8개면을 나눠서 순회하는 군청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와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는 생활이 가능해 진 것이다. 전북도 문화예술과 최영만 과장은 "농촌지역이라 해도 일정소득 이상 계층은 도시로 나와 영화를 보고 문화생활을 즐기지만 저소득층엔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뜻이 있어도 볼 수 없었던 주민들에게 기회와 선택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장재영 장수군수는 "지금까지 반응으로 봐선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면서 "시골의 작은 영화관이 문화에 대한 군민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돼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장수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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