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을 옮길 필요도, 넓은 땅을 살 필요도 없다. 도시농업은 화분 하나에 배추 모종을 심는 것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우리 지역에도 도시농업을 배울 수 있는 강좌들이 속속 열리고 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세계 도시농부 8억 명
도시농업 바람은 세계적으로 거세다. 주말농장의 원조 격인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은 100만여 곳에 이른다. 영국의 얼롯트먼트 30만 곳, 미국 뉴욕의 루프가든 600곳, 캐나다 몬트리올 시티팜 8천 200곳, 일본의 시민농원도 3천 곳에 이른다. 쿠바는 식량위기를 겪으며 수도 아바나에 정책적으로 도시농업을 활성화 해 도시에서 소비되는 식량의 90%를 공급한다. 전 세계 도시농부는 8억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국내 도시텃밭 면적은 2010년에 비해 4.7배 증가해 489ha에 이른다. 참가자도 30만 8,700여 명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텃밭 8천개소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인구의 10%인 500만 명 이상이 도시농업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고양시와 파주시도 시민들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농지를 분양하는 사업을 벌이는데 참여가 활발해, 도시농업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고양시의회도 지난해 10월 도시농업조례를 만들었다. 도시 둘레 빈 땅을 이용해 농사를 지을 경우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시 속 농사 A부터 Z까지 배운다
고양도시농부학교 강좌를 진행하는 이근이 씨는 “도시농업 정보를 얻기 위해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거나 강좌 문의를 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위기의식을 전체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지역에는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파주생태문화원, 김포농업기술센터가 도시농부학교강좌를 3월부터 연다. 모두 협력 텃밭이 있어 실습과 이론 교육을 병행한다. 땅과 작물에 대한 이해, 작물 심기와 관리 방법, 친환경 농약과 퇴비 만들기 등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방법을 안내한다. 김포의 도시농부학교는 기본적인 도시농업에 원예작물의 번식법과 수목관리법, 베란다농법이 추가되어 눈길을 끈다. 파주도시농부학교는 텃밭지도사 아카데미를 거쳐 텃밭 강사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효소와 저장식품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고양도시농부학교는 자급농사와 친환경 토종닭을 키우는 농부의 집을 직접 방문한다. 해충 기피 식물과 풀 활용법, 상자텃밭과 옥상텃밭 만들기도 배울 수 있다.
농사짓고 공동체도 만들고
안전한 먹을거리 공급을 넘어 농사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양지역 도시농부들의 모임인 ‘풍신난 도시농부들’이다. 모임을 이끄는 이근이 씨는 “도시농부들이 혼자 짓기 어려운 작물을 함께 짓고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모임을 거쳐 간 도시농부는 백여 명이다. 봄에는 토종 씨앗을 나누고 가을에는 김장거리 농사를 함께 짓는다. 한 농작물을 함께 기르기도 하고, 직접 기른 농작물로 요리를 만들어 품평회도 한다. 급격하게 도시화된 사회에서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들을 경험하며 도시농부들은 ‘건강’뿐 아니라 ‘공동체’가 주는 즐거움을 맛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겁먹지 말라는 거예요. 도시민들은 대개 어릴 때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이라 농사를 두려워하거든요. 씨앗을 뿌리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리죠. 무조건 도전해 보세요.” (이근이 씨)
‘도시농부 올빼미의 텃밭가이드’ 저자 유다경 씨
나만의 부엌 정원, 텃밭이 있어 행복해요
도시농부 10년 차, 유다경 씨는 텃밭을 설계할 때 마트를 떠올린다. 쌈 채소와 나물, 과채류 코너를 나눠 심는다. 텃밭을 한 바퀴 돌면 바구니 가득 풍성한 반찬거리가 담긴다.
“장보러 가는 것 같죠. 깻잎 한줌, 고추 두 개, 파 한 뿌리, 토마토 몇 개 따와서 며칠 먹어요. 냉장고처럼, 신선한 밭에서 가져오는 거죠.”
도시 텃밭은 다품종 소량생산
텃밭 초보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 하나, 한 가지 작물을 잔뜩 심어 처치 곤란에 빠지는 일이다. 유다경 씨의 말처럼 20~30종의 작물을 번갈아 기르면 날마다 밭에 가도 지루하지 않다. 마트에 갈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유 씨는 “도시민의 텃밭은 전업농의 축소판이 아니며 다품종 소량생산이 기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마트에 가서 고구마만 사오지 않잖아요. 텃밭이 5평이면 20종은 지을 수 있어요. 전업농하고는 농법도 달라요. 한꺼번에 수확하기보다 조금씩 끈질기게 달리는 것이 좋아요.”
고추는 다섯 그루면 네 식구 먹기에 충분하다. 피망은 한 두 그루 심어도 20~30개는 따 먹는다. 오이도 눈 내릴 때 까지 길러 따먹을 수 있다. 아욱, 근대, 양상추, 가지, 파프리카, 깻잎, 토마토, 파, 오이에 갖가지 허브까지 심어 기르면 식탁이 풍성해 진다. 다양한 종류를 조금씩 먹으니 상해서 버릴 일도 없고 병충해 피해도 비교적 적다.
텃밭은 어른 위한 체험학습장
“농사는 좋은 취미예요. 나 혼자 좋고 마는 게 아니죠. 농사지은 것으로 요리를 하면 가족들이 다 먹고 영향을 받아요. 파급력이 크죠.”
유다경 씨는 10년 전 서울에서 경기도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처음으로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도시 생활에 맞는 텃밭 설계와 경작 법을 찾아냈다. 네이버 파워 블로그 ‘올빼미화원(blog.naver.com/manwha21)''에서 나눈 텃밭경작 경험을 살려 『도시농부 올빼미의 텃밭 가이드』를 펴냈다. 육묘부터 갈무리까지 농사짓는 순서에 따라 내용이 배치된 것이 독특하다. 그는 또 매주 화요일 KBS1라디오 ’농수산오늘‘ 코너에 출연해 생생한 텃밭 경험을 나누고 있다.
“작물은 곧 거울이에요. 실물로 텃밭지기의 상태를 보여줘요.”
성공의 경험으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실패로 교훈을 깨우치기도 한다. 유 씨는 텃밭은 어른을 위한 체험학습장이라고 했다.
내면 치유하는 텃밭의 힘
“도시 농부들은 생계가 아니라 내면의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 때문에 농사를 선택하는 거예요.”
유 씨의 블로그에 가면 수많은 텃밭지기들이 농사를 하며 경험한 내적인 변화의 기록을 엿볼 수 있다. 우울증이나 가족 간 불화, 인내심 없는 기질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이들이 흙을 만지며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유 씨는 “농법에 연연해하지 말고 즐겁게 농사를 지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른데 무조건 유기농이나 비닐 없는 농사를 지으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흙을 통해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지혜와 용기, 실천력과 자신감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르고 수확해서 요리하고 먹으면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고, 여유를 찾으면 자연과 환경은 절로 생각하게 된다.
Tip. 주말농장 초보 농사꾼이 저지르는 실수들
1. 농사 절기 무시하기 - 씨앗 뿌릴 철에 모종 사다 심어 놓고 일등이라고 즐거워한다. 서리를 맞아 모두 죽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한다.
2. 고구마만 잔뜩 심기 - 고구마, 감자, 옥수수만 잔뜩 심으면 주말농사가 몹시 지루해 진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경작해야 즐겁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3. 모종은 100원이라도 저렴한 것으로? - 맛 좋은 품종은 모종 값도 비싸기 마련. 푼돈 아끼려다 수확 철에 울지 말고 모종 값에는 과감히 투자하라.
4. 퇴비는 무조건 풍성하게? - 퇴비가 필요한 땅이 있고 너무 많은 땅이 있다. 작물에 따라 덜고 더해야 할 영양소가 다르니 도시농업센터에 의뢰해 무료 토질 검사를 받은 후 대처할 것.
우리지역 주요 주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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