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주부들

깨알 같은 일상, 문학으로 엮는다

지역내일 2012-03-01

“오십대 중반이 되니까 사공이 없는 배를 타고 가는 일상이었어요. 내가 늘 세상에 당당한 줄 알았는데 나이 먹고 보니 표류하는 조각배처럼 절망적인 상태였어요.”
14일 오후, 마두동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읽기와 쓰기(강사 박진규 소설가)’ 교실에서 만난 임순월 씨는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강좌를 듣게 된 이유를 말하는 임 씨의 눈가에 잠깐 눈물이 맺힌 것도 같았다.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중략)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양귀자 소설 『모순』 중에서


중년의 허무함, 글쓰기로 날리다
그의 말을 들으니 오래전 읽은 양귀자 작가의 소설이 떠올랐다. 한 명은 안정된 행복 속에, 다른 한 명은 억척스런 불행 속에 살았던 쌍둥이 자매가 주인공이었다. 결핍 없는 삶에 지친 쪽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이야기였다.
소설처럼 극적이거나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소설 읽기와 쓰기’ 교실을 찾아 온 여덟 명의 주부들도 일상 속에서 하나의 탈출구를 찾아 온 이들이었다.
“이 강좌를 듣기 전에는 불만을 사람을 통해서 해소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하나의 푸념일 뿐, 본질을 통과할 수 없었죠. 글을 쓰다 보니 이게 하나의 배설구예요. 말을 아끼게 됐어요.”
임순월 씨는 “쏟아내 버리면 사람들을 오염시켰을지도 모르는 말을 아끼는 대신 책과, 빈 종이와 대화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문학소녀 친구들’ 만나는 즐거움
“세상 사람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분명 외로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저를 외로운 사람이라는 틀에 넣어 버려요. 하지만 문학을 같이 하는 사람들하고 만나서 외롭다고 하면 ‘나도 외로워’ ‘다 외로워’라고 말하며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코드 맞는 친구들하고 얘기하고 가면 굉장히 시원하죠.”
또 다른 수강생 서옥자 씨의 말이다.
유쾌하다고 했다. 시원하다고 했다. 왕년의 문학소녀들은 굳이 글 솜씨를 뽐내거나 어려운 이론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 비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 나누는 기쁨이 더 크다는 말이다. 엄현숙 씨는 “창작보다 인문학을 배운다”고 했다. 소설을 읽으며 사람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배운다는 이야기다. 글 쓰는 기술은 그 다음이었다.


소설 읽고 습작, 합평회도 함께
우리 지역에는 문화센터, 도서관 등 주부 대상 글쓰기 강좌가 끊이지 않고 진행된다. 작가들을 초대해 듣는 낭독 강좌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수필, 시, 소설, 어린이 문학 등 다루는 분야도 다양하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읽기와 쓰기’ 강좌는 석 달 동안 진행 된다. 첫 달은 국내 단편소설을 읽고 감상한다. 다음 달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발상 연습, 소설 쓰기 설계를 한다. 마지막 달에는 소설을 쓰고 합평한다. 작품이 완성되면 문학지에 응모하고 등단을 하기도 한다.
김경희 씨도 강좌를 들으며 등단한 경우다. 그는 지난해 3월 강좌에 등록해 단편 소설을 한 편 썼다. 5월에 문학지에 응모했는데 당선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부족함을 느껴 계속 강좌를 듣고 있다. 이 강좌에는 김 씨처럼 기간이 끝나도 재수강하는 이들이 많다.


조심스레 등단 꿈꾸기도
“‘아들이 남긴 찬에 밥을 먹는다’고 한 문장에 짧게 끝내는 게 아니라 맥없이 젓가락질 하면서 진짜 맛없게 밥 먹는 모습을 묘사하면 문장이 확실히 살죠. 소재도 충분히 좋고 등단도 잘하면 가능할 것 같아요.”
소설가 박진규 씨의 말에 습작을 써 온 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합평 시간에는 단편 소설을 써 와서 문장을 다듬고 보충할 점을 이야기 한다.
조윤숙 씨는 “선생님이 지적보다는 용기를 주셔서 좋다.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가도 동기 부여를 해주셔서, 전혀 등단을 꿈꾸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날 합평한 소설 속 주인공은 글쓴이와 비슷한 주부였다. 마트에 가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한다. 일상 속에 반복되는 일들이 소설의 옷을 입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은 사뭇 흥미로웠다. 깨알처럼 흩어져버릴지 모르는 일상을 문학으로 엮어내는 즐거움에 동참하고 싶다면 봄 학기 강좌들을 눈여겨 볼 일이다.


미니인터뷰 박진규 소설가
“글쓰기는 마음 들여다보기”
『수상한 식모들』,『내가 없는 세월』의 박진규 작가는 교하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좌를 하며 지역 주민들과 인연을 맺었다. 파주 금촌에 거주하며 일주일에 한 번 문화센터에 나와 아마추어 주부 작가들을 만난다.
“글을 쓰는 일은 거울 보는 일과 같아요. 두려움 없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화장을 고치듯이, 편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죠. 감정의 토로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글쓰기에는 치유하는 기능이 있죠.”
소설을 함께 읽으며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나누다 보면 말이 편하게 나온다. 말이 편해지면 글도 편해진단다.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삶과 일상의 깊은 면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주부 작가들의 장점이라고 했다. 주의할 것은 “주부로 살면서 시야가 좁아지면 소재가 천편일률적일 수 있으니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글을 쓰면 등단에 유리할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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