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순(46, 원미동) 씨 가족은 해마다 정월대보름 아침에 일어나면 말을 하지 않고 머리맡에 놓아둔 부럼을 깨문다. 이렇게 하면 한 해의 복을 얻고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씨 가족이 대보름을 챙기는 이유는 현재 팔순인 시어머니가 해마다 이 날을 습관처럼 챙겼기 때문. 그래서 이들에게 정월대보름은 자연스러운 가족 명절이 됐다.
오는 2월 6일(음력 1월 15일)은 환하게 떠오른 둥근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정월 대보름이다. 예전에는 대보름이 되기 전 날부터 보름쇠기를 시작했다. 일 년의 무사태평을 비는 이 날 인순 씨 가족처럼 휘영청 떠오른 달에게 임진년의 소원을 빌어보기로 하자.
더위팔고 귀밝이 술 마시고
경북 의성이 고향인 김 씨 가족은 대보름 전날인 열나흘이 되면 오곡밥과 아홉 가지 묵은 나물을 해먹는다. 팥과 콩, 수수, 좁쌀, 기장을 섞은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아홉 번 먹어야 그 해의 액운이 사라진다고 해서다. 그리고 대보름날 아침에는 쌀밥에 고깃국과 김을 해먹는다.
어릴 때 김 씨에게 대보름은 신나는 명절이었다. 이 날은 해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났다. 옆집 친구에게 달려가서 이름을 불러 대답이 오면 “내 더위 사가라”고 외쳤다. 이렇게 더위를 팔아야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에서였다. 김 씨는 “친구가 이름을 먼저 부르면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다”며 “도시에 살고부터는 가족끼리 더위를 판다”며 웃었다.
이 날은 귀밝이술도 마신다. 이 날 마시는 술이 눈과 귀를 밝게 한다고 해서다. 이런 풍습 때문에 보름날 아침에는 아이들에게도 귀밝이술을 먹였다. 대보름이 다가오면 마트나 시장에는 땅콩과 밤, 호두, 잣 등의 부럼이 등장한다. 이 날 먹는 부럼은 한 번에 확실하게 깨물어야 종기와 부스럼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 연날리기, 횃불싸움 등의 민속놀이도 있었다. 요즘 시골에 가면 깡통에 구멍을 내서 달집 태운 불씨를 넣고 쥐불을 돌리지만 그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옛날에는 산에서 베어온 소나무와 볏짚으로 달집을 쌓았다. 달집을 태워 연기가 피어올라 보름달이 가려지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했다. 달집에는 소망을 적은 종이를 달고 한 해의 소원을 비는 풍습도 있었다. 김 씨는 “달집이 타오르면 저마다 소원을 빌었고 마을사람들이 꽹과리를 울리면서 농악놀이를 한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부천의 정월대보름 풍습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부천의 각 지역에도 대보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원미구 상동에서는 원미산에 뜬 달을 보고 한 해의 풍년을 점쳤다. 일 년에 한 번 장승제사도 지냈다. 이 날은 당주가 마을사람들의 생년월일을 적고 이름을 부르면서 소원을 대신 빌어줬다. 오정구 여월동에서는 횃불을 밝히고 절을 하며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쥐불놀이도 성했다. 논둑에 불을 놓고 해충을 태워서 논밭의 잡신을 쫓는 행사였다. 또한 원미구 고강동과 원종동에서는 수수깡을 반으로 쪼개고 그 안에 콩 12알을 박아 넣어 묶은 뒤 우물 안에 넣어 뒀다가 콩이 불어난 상태를 보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예견하기도 했다. 부천에서 유일하게 가을 황금들녘이 남아있는 오정구 대장동에서는 보름이 오기 전에 지신밟기를 했다. 그 날은 농악대들이 농악을 하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현재 부천에서는 정월대보름날을 전후하여 동별 척사놀이(윷놀이)가 진행된다. 이 날은 마을사람들이 함께 나와 윷놀이를 즐기면서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부천사람들은 대보름을 어떻게 맞는 지 부천 자유시장을 찾아갔다. 보름나물을 준비하러 왔다는 이창영(74) 할머니는 “예전에 정월대보름은 보름달이 제일 크게 뜨는 두 번째 설날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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