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아있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붕괴사고, 지난해 서울 강남 지역을 강타한 우면산 산사태, 그리고 2010년 1월 섬나라 전체를 초토화시킨 아이티지진......
이 모든 사고와 재난현장에 전덕찬(58·송파구 석촌동)씨가 있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일’만 터졌다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재난현장을 찾은 전덕찬씨. 그는 아마추어 무선통신사다.
집 없는 거지에게 담요 덮어주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의 어려움을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중학교 때였다. 길을 가다 집 없이 떠도는 또래 아이들을 보게 됐다. 워낙 어렵고 힘든 시절이라 마땅히 그 아이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어려서 돈도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집에 있는 물건을 몰래 가져오는 것이었다.
“군용담요를 식구들 몰래 가지고 나와 그 아이들을 줬지요. 그리고 길바닥에서 잠도 같이 잤어요. 어머니가 아무 말이 없으셔서 제가 담요를 훔쳐 나온 걸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아시면서 모르는 체 하셨더라고요.”(웃음)
남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은 세월과 함께 더 커져만 가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현재 WDRO(세계재난구호회) 긴급구조단 재난통신지원팀장을 맡고 있는 전씨의 1년은 봉사활동을 중심으로 채워지고 있다. 전씨의 아침은 TV뉴스채널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고속보는 없는지, 폭우나 폭설로 인한 피해는 없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밤새 무슨 일이 생겼다면 잠시 후 어김없이 사고 중심에서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게 된다.
무선통신의 중요성 깨닫다
그가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시작한 것은 1994년.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아 취미로 시작한 것이 국가자격증을 따게 됐고. 실제 재난사고 지역에서의 통신역할 중요성을 실감하면서 이를 통한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됐다. 같은 해 대한적십자사 산하 아마무선봉사회장을 맡으면서 ‘봉사’는 그에게 생업보다 더 중요한 생활로 자리 잡았다.
“재난이 발생하면 기존통신으로는 통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선통신은 자체발전기를 갖추고 주파수만 맞추면 가능한 것이지요. 때문에 재난 현장이나 고립지역에 들어가 바깥과의 교신을 맡는 저희가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고베지진이나 천안문 사태 등을 가장 먼저 세계에 알린 것도 언론이 아니라 저 같은 아마추어 무선통신사이지요.”
때문에 무선통신사들의 활동은 재난현장에서 시신발굴이나 철거, 복구 등 다양한 기술지원활동의 지지대가 된다.
AP통신, 전 세계에 그를 알리다
요즘 그는 WDRO활동에 큰 힘을 쏟고 있다. 많은 활동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WDRO 긴급구조단을 이끌고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아이티에 가서 펼친 활동이다. 열악한 환경과 참담한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시신을 발굴하고 수습하는 장면은 AP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제까지 활동 중 가장 큰 보람을 느낀 필리핀 ‘사랑의 집짓기’봉사활동 역시 WDRO활동을 통해서이다.
“6·25참전용사를 위한 사랑의 집짓기 활동이었어요. 지금은 백발인 된 필리핀 참전용사가 제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하는데 정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적은 수의 인원으로 꾸려진 WDRO 긴급구조단의 활동은 전문적이면서 거침이 없다. 대부분의 단원이 3~4개의 자격증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소수정예구조단인 것. 전씨 역시 산악안전, 응급처치, 심리적 지지 등 취득한 강사자격증만 5개에 이른다.
구조현장에서도 그들의 활동은 큰 인정을 받고 있다. 처음엔 ‘저렇게 적은 인원이 뭘 하려고...’라는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그들의 활동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곤 한다. 폭설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에 급파된 WDRO 긴급구조단의 활동을 눈여겨보던 강원도 지역자원봉사센터와 재난체결을 맺은 것도 모두 이런 이유에서다.
봉사, 기부문화 확산됐으면
지난해 그는 ‘2011 송파구자원봉사자 한마음축제’에서 누적봉사시간 1만 시간 이상 봉사자에게 주어지는 소나무 금상을 수상했다. 그의 열정적인 봉사활동은 그의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파되어 부인 송은미씨도 10년 전 무선통신사 자격증을 따고 봉사활동에 합류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자녀들 역시 남을 위하는 마음가짐이 따뜻하기만 하다.
“둘째딸이 미술을 전공하는데, 전시회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한다고 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미쳤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봉사는 미치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 명의 봉사가 릴레이 봉사활동으로 이어지고, 기부문화 또한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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