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소녀는 빨간 구두를 신고 멈추지 않는 춤을 추었다. 마법은 소녀를 어디까지 끌고 갔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산동구 마두동 어느 지하실 연습실에서 밤늦도록 또각 거리는 만년 소년소녀들을 만나볼 차례다. 탭댄스전문아카데미 탭인탭댄스에서 만난 수강생들이 꾸린 동호회, 리듬홀릭의 이야기다.
아무도 못 말리는 경쾌한 춤바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나 주차장에 걸어 들어갈 때, 버스를 기다릴 때 쉴 새 없이 발목을 움직이며 스텝을 밟는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십중팔구 그들은 춤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리듬홀릭 회원들도 그렇다고 고백한다.
“엘리베이터 타면 소리가 울리니까 연습을 하는 거죠. 딸이 제발 이러지 말라고 해요.”
정안희 회원의 말이다. 그는 “분명히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자 하나가 딱딱 안 나오니까 자꾸 튀겨보는 거”라면서 “딸한테 혼나도 자꾸 연습하게 된다”고 했다.
파트너 없이 홀로 춤출 수 있고 슈즈 하나만 있으면 되니 단출하다. 온 몸을 움직이며 리듬을 타다 보면 활기가 돈다. 또그닥또그닥 따그닥따그닥, 경쾌한 소리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회원 중에는 여자가 더 많다. 남자들은 힘이 있고 소리도 좋지만, 꾸준히 해내는 것은 여자들이다. 누가 감히 이들을 보고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를 깬다’는 말을 떠올릴까. 리듬홀릭 연습실 마룻바닥을 울리는 탭슈즈 소리를 들으면 ‘여자들이 모이니 예술이 된다’는 말을 절로 하게 될 것이다.
춤이면서 악기, 발로 하는 난타
리듬홀릭을 이끄는 이는 단장 임동현 씨다. 한국 탭댄스의 실력파들이 모인 리드미스트라는 팀의 멤버다. 임 씨는 어렸을 때 뮤지컬단체 활동을 하며 탭댄스를 처음 배웠다. 성인이 된 후에도 관심이 이어져 프로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회원들은 ‘우리나라 상위 0.1%의 실력자에게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임동현 단장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춤’ 탭댄스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는 “탭댄스는 춤이라기보다 악기에 가깝다”고 했다. 음악이기도 하고 춤이기도 한 것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한다.
회장 조규은 씨는 “탭댄스는 발로 하는 난타”라고 했다. 보고만 있어도 흥겨운 난타를 직접, 그것도 발과 몸을 움직여 소리 낸다면 얼마나 흥겨울까. 그래서 이들은 “하면 할수록 빠져들고 계속 하고 싶은 매력적인 춤”이라고 입을 모은다.
20대와 50대가 친한 친구?
리듬홀릭 회원은 대학생부터 직장인, 50대 주부까지 연령 폭이 넓다. 그러나 리듬 앞에서 나이는 의미가 없다. 마법의 신발, 탭 슈즈를 신으면 누구라도 친구가 된다. 춤 하나로 20대와 50대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동호회의 매력이다.
리듬홀릭은 꾸준히 발표 무대를 열고 있다. 지난해 가을 고양시 아마추어 스트리트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12월에 고양시청문예회관에서 연말 공연을 열었다.
탭인탭댄스 수강생 가운데 4~5개월쯤 기초반 수업을 들으면 리듬홀릭 회원가입 자격이 주어진다. 회원이 되어도 각자 주 2회씩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회원들은 모여 곡을 연습한다. 자선 공연이나 대회를 앞두면 마음이 더욱 분주해 진단다. 박자 하나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 쉴 새 없이 발을 까닥거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발 까불다 보면 운동 저절로
“옛날 어른들은 발을 까불지 말라고 하잖아요. 복 나간다고. 그런데 탭은 발을 잘 까불러야돼. 친구들 만나 얘기 하다가 나도 모르게 까불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운동이 돼요.” (정안희 씨)
탭댄스에 많이 쓰이는 근육은 정강이, 발뒷꿈치, 허벅지 안쪽, 발등이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부분이라 스텝 하나를 배울 때 근육통을 앓는다. 무서운 건 다리의 통증이 아니다.
“새 스텝을 배울 때마다 아픈 곳이 달라져요. 가장 아픈 것은 마음이에요. 제대로 안되니까요.” (조규은 씨)
아픈 것은 잠시, 탭댄스로 웃을 때가 더 많다. 뮤지컬 42번가를 보고 탭댄스에 반해 가입했다는 이미연 씨는 춤을 추면서 살이 빠지고 몸매가 달라졌다. 50대 정안희 씨는 걱정과 달리 무릎 관절이 더 튼튼해져 놀랐다. 아이들은 탭댄스를 하면서 키가 부쩍 큰다. 무대에 서면서 자신감도 얻는다.
정현정 씨는 딸과 함께 탭댄스를 배우다 리듬홀릭 회원이 되었다. 장난말로 “춤바람 났냐”고 놀려대는 남편은 공연 때마다 보러 오는 든든한 후원자다. 온 가족이 배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탭댄스는 밝고 경쾌하다. 리듬홀릭 회원들은 이 즐거운 중독에서 굳이 헤어 나올 생각이 없다.
리듬홀릭 공연 문의 031-913-3161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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