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대학 입시가 마무리 되고 나면 한 번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학생들이나 재수, 삼수를 해서 가까스로 목표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 모두 큰일을 치른 뿌듯함을 맛보게 된다. 반면에 입시 실패를 맛본 학생들은 일찌감치 재수를 선택하거나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유학을 대안으로 삼기도 한다.
요즘에는 웬만한 국내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국내 대학에 진학해도 어차피 해외 어학연수를 경험하는 것이 기본처럼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힘들게 재수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유학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일단 유학의 길에 들어서면 결코 만만치 않은 적응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신중한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의 재정 위기로 대학에 지급하는 정부 보조금이 삭감되면서 미국 대학들이 유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여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왠지 씁쓸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유학 준비가 미처 안 된 학생들을 위한 미국 대학 진학 프로그램이 갑자기 봇물 터지듯 넘쳐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몇 해 전만 해도 미국 유학 관련 기사를 기획하면서 조건부 입학이나 커뮤니티칼리지를 거쳐 편입하는 방법 등 다양한 유학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다루기도 했었다. 미국에는 아이비리그나 상위권 명문대 등 오랫동안 전략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해서 진학할 수 있는 대학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토플이나 SAT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뒤늦게 유학을 결심한 학생들도 의지만 확고하다면 미국 유학의 장점을 취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오히려 미국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제의 기사를 기획하게 됐을 정도로 너무 다양한 유학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다. 미국 유학, 과연 쉽게 선택해도 될까.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면 늘 절박한 심정의 엄마들이 조심스레 상담을 요청해오곤 한다. 수능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그 성적으로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차라리 무리를 해서라도 미국의 이름 있는 주립대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엄마들이 많다. 쉽게 입학할 수 있는 미국 대학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이때 ‘무리를 해서라도’라는 말의 바탕을 냉정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이 감당해야할 경제적인 무리만을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따져볼 점은 바로 아이의 의지와 능력, 성향이 유학을 떠나기에 무리가 없는가이다.
미국 캔자스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조지아 공대에 합격한 김수범군은 8장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로 부모님을 설득해 결국 유학 허락을 받아낸 경우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했음은 물론이다.
강남 일반고에 다니면서 사교육이나 유학원의 도움 없이 혼자 유학 준비를 해서 미국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에 합격한 유하림씨. 그 역시 자신의 의지로 유학을 결심했기에 대학 진학 후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로 2년 만에 최연소 수학조교가 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성공적인 유학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의지가 아닌 아이 자신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흔히 부모들은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유학 기회를 주었으니 아이가 새롭게 도전해서 성공적으로 적응하기만을 기대한다. 내 아이가 유학 성공 사례에 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사실 그동안 없었던 의지가 솟아나 완전히 다른 아이로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지금까지 부모가 알아서 모두 챙겨주는 바람에 부족함을 느낄 새도 없이 자란 아이가 갑자기 달라질 수 있을까. 물론 100퍼센트 자신의 의지로 유학을 선택한 후 요즘 아이들 최대의 장점인 무서운 열정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우선 내 아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적응해나갈 자세가 돼 있는지부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영어능력이 충분히 갖춰진 상태가 아닐지라도 부족한 실력을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할 의지가 있는지, 평소 그런 성향을 보인 아이인지 따져봐야 한다. 토플 점수조차 없는 학생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어학과정을 이수하더라도 미국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가 결코 쉽지 않기에 그만큼 강한 의지와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유학에 대한 의지를 보이더라도 단순히 재수 등 국내 입시 현실을 피하기 위한 결심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유학생 부모들을 만나면 유학비용에 대느라 빠듯하게 산다는 얘기가 공통적으로 나온다. 부모들마다 각자 자신의 경제력에 맞춰 자녀의 유학 국가와 대학을 선택했으니 그럴 수밖에. 이렇게 부모가 힘들게 유학비를 대고 있더라도 아이가 부모의 바람대로 유학생활을 잘해내고 있다면 힘든 줄도 모르고 뒷바라지를 하게 되는 것이 바로 부모다. 그런데 만약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경우 부모는 알게 모르게 아이를 원망하게 되고, 아이는 부모가 힘들게 뒷바라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자신의 문제를 터놓고 의논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유학을 안 보낸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부모들 세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나라까지, 세계 곳곳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들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에 한 몫을 단단히 하리라는 생각에 뿌듯하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것이 요즘 부모들 사이에 최대의 화두이지 않은가.
조기유학이든 대학유학이든 해외 경력을 쌓을 기회를 준다면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큰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유학이 부모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냉정하게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
평소 실력에 비해 입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일 때 아이가 의지를 보인다면 유학이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아이와 가정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니 유학만큼은 부모의 의지가 아닌 아이의 의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 스스로 유학생활에서 부딪치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응할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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